올해 처음으로 ‘맛있는 책 읽기’에 참여
놀기에 앞서 책을 읽도록 동기를 부여
“책을 읽을수록 줄거리 정리 더 잘해”
“내 방의 벽에 붙은 책꽂이들이 마치 저절로 채워지는 듯한 모습을, 손에 땀을 쥐고 부들부들 떨면서 밤마다 지켜보던 젊은 시절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마침내 책꽂이에는 빈 공간이 전혀 남지 않게 되었다. 바닥과 구석, 침대 밑, 책상 위 등 내 주변 어디에서나 책들이 점점 높이 쌓여가며 공간을 부생식물 숲으로 바꿔놓았는데, 숲에서 뻗어나온 줄기는 나까지 몰아낼 지경이었다.”
- 알베르토 망구엘의 ≪밤의 도서관≫ 중에서
‘책의 수호자’로 불리는 망구엘은 책은 물론, 도서관의 옹호자다. 그에게 책은 공간을 차지하더라도 ‘친구’이지 ‘괴물’은 아니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책이 공간을 잡아먹더라도 기분 상하지 않는다. 책은 친구여서 그렇다. 지금 글을 쓰는 기자의 방도 책이 공간을 잡아먹고 있다. 공간 부족으로 버리는 친구들은 어쩔 수 없이 생기지만, 새로운 친구들이 또다시 ‘내 공간’이라며 비집고 들어오기 일쑤이다.
올해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 프로젝트에 참가한 신지혜·정훈 가족은 놀기에 앞서 책을 잡는다. 몸에 밴 습관처럼 책 읽기를 우선 순위로 정했다. 엄마 박연진씨는 지혜와 정훈이의 책 읽기 습관을 놀이에 앞서 진행하도록 했다.
“정훈이 친구들이 집에 와서 핸드폰을 하고 싶다, 놀고 싶다고 그러잖아요. 친한 친구가 정훈이까지 셋인데, 책 한권 씩 골라오라고 해요. 그러면 책을 읽고, 읽은 내용을 말하라고 해요.”
놀이에 앞서 책을 무조건 읽도록 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그랬다. 초등 3학년인 정훈이는 3년째 이런 규칙을 지킨다. 초등 5학년인 지혜 역시 그런 규칙을 지키며 책을 읽곤 했다. 지혜·정훈 집 풍경만 그런 건 아니다. 정훈이가 다른 친구 집에 놀러 가도 그렇다. 엄마·아빠가 정한 규칙은 정훈집은 물론, 다른 이웃의 집에서도 적용된다. 만일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졌다. 3년째 그런 규칙에 익숙해진 정훈에게 물어봤다. 줄거리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서 책을 다시 읽은 적도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엄마는 왜 그랬을까.
“아이를 놀게만 할 수는 없었어요. 우리가 그러니까 다른 집 엄마들도 함께 하게 됐어요.”
이렇듯 지혜·정훈 가족에겐 책 읽기 습관이 몸에 잘 배 있다. 올해 ‘맛있는 책 읽기’에 참가하고부터는 짧은 책이 아닌, 글자가 많이 든 긴 책도 읽는 습관이 배기 시작했다. 지혜는 올해 읽은 책 가운데 ≪잊을 수 없는 외투≫를 기억에 나는 책으로 꼽았고, 정훈이는 ≪기막힌 효도≫를 꼽았다. 지혜는 ≪잊을 수 없는 외투≫를 읽으며 자신의 힘든 때를 떠올렸고, ≪기막힌 효도≫는 정훈에게 효도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우는 책이었다.
책은 지혜·정훈 가족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책은 왜 중요한지 지혜·정훈 가족에게 들을 수 있었다. 엄마 박연진씨는 책이 지닌 강점을 다음처럼 설명했다.
“최근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 접해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죠. 책을 통해 미리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아이들은 어떨까. 지혜는 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알려주는 게 책이란다. 정훈에게는 새로운 단어를 알려주는 역할도 해준다. 모르는 건 엄마와 아빠에게 묻곤 하는데, 전혀 몰랐던 이야기를 책을 통해 먼저 만날 수 있다는 점을 아이들은 장점으로 꼽았다. 지혜는 책을 통해 칭찬받은 이야기도 꺼냈다.
“책에서 읽은 내용이 학교 수업에 나온 일이 있어요. 그 내용을 발표했더니 선생님이 잘 했다면서 칭찬을 해줬어요.”
지혜·정훈 가족의 집엔 커다란 세계지도가 벽에 붙어 있다. 공부하면서 노는 일에 숙달된 지혜·정훈 가족에겐 지도 역시 놀잇감이면서 공부를 하는 재료도 된다. 세계지도는 마치 보드게임판과 같은 놀이판으로도 거듭난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아이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왔는데 마냥 놀게 할 수는 없고, 또 책만 읽으라고 하기도 그럴 때는 지도를 활용해요. 수도를 보고 나라 찾기도 하는 등 게임을 하기도 해요.”
놀면서 배운다? 서로 달라 보이지만 지혜·정훈 가족에겐 아주 익숙하다. 놀기 위해서는 책을 읽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책을 자주 접하면서 더 달라진 점은 또 있다. 책에 대한 느낌을 전달하는 수준이 눈에 띄게 달라진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줄거리를 더 잘 전달한다고 한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했다. ‘온가족 맛있는 책 읽기’를 하며 몸에 밴 습관은 이들 가족에겐 다른 종류의 책을 붙잡게 만드는 동력이 되곤 한다. 앞으로 읽어보고 싶은 책이 있는지 물음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실생활에 필요한 책이나, 내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는 그런 책을 읽어서 마음을 잘 움직이고 싶어요.” (지혜)
“내게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도 도울 수 있는 그런 책을 읽고 싶어요.” (정훈)
책을 읽으며 아이들은 쑥쑥 커간다. 생각의 폭도 넓어지고, 이야기를 하는 깊이도 더 생긴다. 이게 바로 지혜·정훈 가족에게 주는 책의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