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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년, 경찰에 폭행·고문 당했다" 4.3 재심청구인 진술 이어져
"10대 소년, 경찰에 폭행·고문 당했다" 4.3 재심청구인 진술 이어져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1.12.15 1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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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당시 일반재판 피해자·유족 30여명 재심청구사건
12/14, 2차 심문기일 "고태명 씨 등 5명 청구인 증언"
20일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제4차 4.3 피해 재심 청구인들과 제주4.3도민연대 양동윤 대표(사진 오른쪽 끝)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지난 5월 20일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제4차 4.3 피해 재심 청구인들과 제주4.3도민연대 양동윤 대표(사진 오른쪽 끝)가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의 왼쪽에서 일곱 번째,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사람이 고태명 어르신이다. ©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판사님, 제가 지금 억울한 것은 다름이 아니고, 너무 어릴 적에 잡혀가서 경찰관에게 무리한 고문과 취조 등을 많이 당한 것입니다. 그러니 판사님이 최선의 판결, 엄정한 판단으로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주 4.3 당시 죄 없이 경찰서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다는 고태명(89) 어르신의 법정 진술 중 마지막 발언이다.

12월 14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장찬수 부장판사)는 오후 2시 201호 법정에서 4.3 당시 억울한 누명으로 목숨을 잃거나 고문을 받은 피해자 및 유족 등 재심 청구인 30여명에 대한 두 번째 심문기일을 열었다.

특히 이날 법정에는 총 다섯 명의 청구인이 진술자로 나서 직접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날 법정진술자로 나선 고태명 어르신은 1948년 6월 28일, 그가 경찰서로 끌려갔던 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할머니의 제삿날, 제사를 위해 집에 있던 그는 밤 10시경 옆집을 찾게 된다. 한밤 중 옆집에 “누가 왔다”라는 말을 듣고, 아무 생각 없이 집을 나섰다는 것이다.

비극은 그렇게 시작됐다.

옆집에는 이웃인 신춘도 씨와 신 씨의 어머니, 그리고 “산에서 왔다”라고 말한 하도리 사람. 이렇게 세 사람이 있었다. 고태명 어르신까지 하면 총 네 사람이다.

그렇게 네 사람이 잠시 대화를 하고 있던 중, 돌연 경찰 두 명이 들이닥쳤다.

“경찰 한 사람은 아는 사람이었고, 한 사람은 잘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경찰 두 명이 갑자기 찾아와서 우리 네 사람을 다 잡아갔어요. 왜 잡아가는지는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고, 그냥 잡아갔습니다.” /고태명 어르신

고태명 어르신과 두 이웃, 그리고 산에서 내려왔다는 하도리 사람. 네 사람은 포승줄로 묶인 채 당시 관덕정에 있던 제주경찰서로 끌려가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모진 고문을 당한다.

“제가 당시 동네 여성들에게 한글 가르치는 야학을 했었습니다. 한글을 가르친 것 뿐이지 아무것도 (위법하거나 특별한 행위를 한 일은) 없었는데. 경찰은 제가 여성동맹위원장을 교육했다고 하면서, 자백하라고 때렸습니다” /고태명 어르신

고태명 어르신은 당시 동복리장의 간청을 거절하기 어려워, 한글을 가르치는 야학 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남을 돕기 위해 한 한글 교육 활동이 그를 ‘빨갱이’로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것이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경찰이 때리면서 이야기하니 ‘네, 했습니다’라고 말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경찰이 하는 말에 ‘네, 네’만 했습니다.” /고태명 어르신

그는 약 일주일 동안 경찰서에서 모진 폭력과 고문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각목으로 온몸을 두들겨 맞거나, 전기고문을 받는 일이 일주일 내내 이어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 경찰은 그의 종아리에 막대를 끼운 채 막대를 즈려밟는 악랄함을 보이기도 했다.

“일주일 동안 매일 고문을 받았어요. 제가 안 한 것도 했다고 (말하라고) 해서, 고문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힘들어서 ‘했다”고 하니까 고문을 멈췄습니다.” /고태명 어르신

고태명 어르신에게 가해진 고문은 그가 거짓 자백을 털어놓고 나서야 멈췄다고 한다.

이후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반재판. 그는 자신이 고문에 시달려 거짓 자백을 했다는 사실을 당시 법정에서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재판부와 변호인, 검찰 측 모두 “맞아도(고문을 받아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한다. 거짓 자백을 하면 안 된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그의 말을 진정 믿고, 억울함을 알아주는 이는 없었다. 결국 그에겐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집행유예는 ‘무죄’가 아니다. 죄가 있으나 죄질이 무겁지 않으니, 형의 집행을 유예하고 두고 본다는 뜻이다.

그렇게 그는 할머니 제삿날 난데없이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고, 죄인이 됐다.

당시 고태명 어르신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재판부의 판결문에는 그가 저질렀다는 죄의 기록들이 남아있다. 예를 들면, 그가 “남조선 단독정부가 수립되면 김일성 정부의 부하 20명이 남하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다녔다는 식이다.

하지만 고 어르신은 판결문에 나온 그의 죄명이 모두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당시 만 15세 소년이었고, '김일성 정부'나 '남조선 단독정부'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고 어르신의 고통이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아픔은 더 있었다. 당시 수많은 제주 사람들이 경험한 '연좌제'의 아픔이다. 

그는 ‘죄인’ 혹은 ‘빨갱이’라는 낙인으로 꿈마저 포기해야 했다.

"경찰이 되고 싶었습니다. 경찰이 되면 앞으로 안전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경찰 시험을 봤고, 합격통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경찰이 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제주지법에서 집행유예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합격 취소가 된 겁니다.” /고태명 어르신

고 어르신은 현재 걸음거리가 편치 않다. 그는 이것을 "너무 어린 나이에 모진 고문을 겪어서 온 후유증"으로 본다. 

고 어르신은 '빨갱이', '죄인'이라는 이유로 경찰 합격 취소 통보를 받은 후, 지금까지. 안정적인 직업을 갖지 못한 채 살아왔다. 몸이 성치 않아 궂은 일을 오래 하기 쉽지 않았단다.

2021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일인 4월 3일, 비바람이 몰아치는 4.3위령제단 뒤로 무지개가 걸려 있다. ⓒ 미디어제주
2021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일인 4월 3일, 비바람이 몰아치는 4.3위령제단 뒤로 무지개가 걸려 있다. ⓒ 미디어제주

이와 관련, 이번 재심청구 사건에는 30여명 재심청구인이 겪은 저마다의 아픔이 담겼다. ‘죄인’의 낙인을 벗기 위해, 70여년 세월이 흐른 지금이라도,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법원의 문을 두드린 청구인들의 사연이다.

특히 이번 사건 중에는 피해자의 직계가족이 아닌, 조카가 청구한 사건도 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피고인의 조카는 재심 청구권을 가질 수 없지만, 개정된 4.3특별법에 의하면 경우에 따라 제3자도 재심청구를 할 수 있다. 이에 조카가 재심 청구한 사건에 대한 재심 개시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상황.

이에 각각 사건들에 대한 재판부의 개심 여부가 앞으로 “4.3 관련 재심청구권을 누구에게까지 허용할 것인가”를 결정할 판례로 남을 수 있어, 시선이 몰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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