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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지 않은 제주 여성도 역사의 주류랍니다”
“기록되지 않은 제주 여성도 역사의 주류랍니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10.29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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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성 생애를 담는 스토리AHN 안현미 대표

<제주여성 허스토리> 제작하는 등 영상 채록에 ‘온힘’

제주 도내 곳곳 돌며 ‘마을이야기’ 담는 작업도 꾸준

“80대 중후반 여성들의 이야기는 곧 사라질 수 있어”

제주MBC를 통해 방송된 10부작 '제주여성 허스토리'의 한 장면. 스토리AHN
제주MBC를 통해 방송된 10부작 '제주여성 허스토리'의 한 장면. ⓒ스토리AHN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세상의 반은 여성이란다. 그렇다면 여성의 이야기는 세상의 반을 채우고 있을까. 답을 하자면 “그렇다”보다는 “그렇지 않다”에 기울어진다. 이유는 가진 자는 남성이고, 그들은 여성을 뺀 ‘남성의 이야기’를 역사에 담아왔다. 기록이 온전하지 못한 이유가 된다.

제주도라는 섬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제주도는 여성의 섬이라고 부르지만 역사적 기록은 여성을 대접하기에 소홀하다. 어쩌면 입으로 전하는 구술을 만날 때라야 여성이 등장한다. 제주에서조차 기록에서 빠진 여성. 그런 여성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이가 있다. 그 자신도 여성이면서, 30년 넘게 방송작가로 활동하는 스토리AHN의 안현미 대표이다.

안현미 대표는 올해 제주MBC를 통해 방영된 10부작 <제주여성 허스토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제주여성 허스토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4·3과 한국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은 제주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그는 제주 여성도 주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보통은 남성의 역사가 주류였어요. 제주도는 여성의 역할이 지대하지만 그들의 역할이 기록되지 않더군요. 그걸 보면서 영상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하고 됐어요. <제주여성 허스토리>는 평범한 여성의 일상을 생애사로 정리를 했어요.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죠. 주변에서 너무 잘하는 기획이라고 얘기를 해준 분들이 많았답니다.”

그는 1990년대 후반, ‘4·3 증언’ 프로그램을 하며 여성들의 생애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가 제주 도내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만난 여성들은 기록되지 못한 이들이었다. 기록되지 않았기에, 결국 구술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다.

“구술은 한 사람의 기억이기에 역사적인 신빙성에는 문제가 될 수 있겠죠. 근데 그걸 보완해주는 게 영상이라고 생각해요. 살아계실 때 자신의 입으로 얘기했기 때문에 그것만큼 중요한 증거는 없다고 생각했죠. 문자를 통한 기록도 중요하지만 영상 채록은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를 기록하기에 중요한 기록이라고 봐요.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다 보면 나중에는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지고, 그게 나중엔 역사로 남게 되겠죠.”

문자화된 기록만 역사는 아니다.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역사는 곧 인물이다. 여성이라는 인물을 영상으로 담는 그는, ‘역사를 만드는’ 일을 하는 것과 같다.

제주 여성의 역사를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는 스토리AHN의 안현미 대표. 미디어제주
제주 여성의 역사를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는 스토리AHN의 안현미 대표. ⓒ미디어제주

“영상으로 만드니 사람들이 위안을 받더군요. ‘나는 이렇게 살아왔어’라며 가족들에게, 마을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하더군요. ‘마음의 부자’가 중요하다며 정소지 할머니가 얘기를 해주셨는데, 아드님이 전화를 와서 마을사람들이랑 경로당에서 그 영상을 틀고 싶다고 하더군요.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영상을 채록한 건)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었어요.”

일제강점기 때 제주 경제는 여성들의 몫이 컸다. 그 이후도 그랬다. 물질을 하며, 밭일을 하며 집안 경제를 지탱해준 이들은 바로 제주 여성이었다. 안현미 대표는 그들의 생애를 좇는다.

“내년에도 이 사업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공모 사업이 안되더라도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서라도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뛰어난 족적을 남긴 분들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의 삶도 드라마 못지않은 인생이라고 봐요.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분들은 80대 중후반인데, 이 분들이 사라지면 제주 여성의 모습은 다시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어요.”

구술 채록을 하고 있는 안현미 대표. 스토리AHN
구술 채록을 하고 있는 안현미 대표. ⓒ스토리AHN

그가 영상으로 제주 여성의 이야기를 남기는 이유는 사라질 역사이기에 그렇다. 그의 말마따나 80대 중·후반에 이른 제주 여성의 숱한 이야기는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들이 나이 아흔이 된다면 기억 자체가 희미해지고, 오류도 생길 수 있어요. 더 늦기 전에 영상으로 남겨야죠.”

사라질 위기의 기억을 그는 붙잡으려고 한다. 동시에 그는 제주 마을에 대한 이야기도 만들고 있다. 제주 여성의 생애를 붙잡는 것도 흔치 않고, 마을 이야기를 그리는 것도 흔치 않다. 그는 왜 흔치 않은 작업을 할까.

“제주만이 할 수 있는 게 뭘까라는 고민을 해봐요. 그게 마을 프로그램이 아닐까요. 제주의 마을은 마을마다 특장점이 있어요. 그래서 마을 곳곳을 다니며, 마을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요. 마을공동체가 살아야 제주가 살아나죠.”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오래된 미래>를 통해 라다크 마을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개발은 사람들의 삶을 통째로 바꾼다는 교훈을 <오래된 미래>는 말한다. 안현미 대표도 제주 마을의 변화를 보면서, 마을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가 ‘지금’이라는 순간을 영상으로 남기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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