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유품에 담긴 그날의 이야기, 글과 사진으로 본다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떠난 이는 말이 없다. 누군가의 입을 빌려 추억될 뿐이다.
이미 곁을 떠난 소중한 누군가를 기억할 때. 그를 떠올릴 가장 좋은 매개체는 아마 그만의 '물건'일 테다.
허은실과 고현주, 두 작가는 이를 잘 안다. 그래서 직접 나섰단다. 제주4·3 희생자 유품에 담긴 이야기를 증언할 유족을 만났고, 새롭게 조명하겠노라 결심했다.
신간 '기억의 목소리'에는 두 작가가 손수 채록한 이야기가 담겼다. 허은실 시인, 고현주 사진가 두 작가가 직접 쓰고, 찍은 시와 사진도 함께다.
사진가는 사진을 찍기 전 기도를 했고, 시인은 시를 쓰기 전 삼배를 올렸다. 제주4·3이라는 참혹한 진실의 무게에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한마디라도 더 듣지 않으면 4·3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들을 기회를 영영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가까이, 더 깊이 아픈 역사를 추적했다.
그렇게 탄생한 책 한 권. 첫장을 열면 동백꽃으로 둘러싸인 붉은 색 저고리 사진이 있다. 다음 장으로 넘기면 '프롤로그', 고현주의 글이 등장한다. 하얀 종이 정가운데는 붉은 실이 있다. 봉인된 시간의 기억은 동백처럼 붉은 빛이었고, 책에는 온통 그러한 이야기로 뒤덮여 있다.
"우리집에 50년도 넘은 멀구슬나무가 있었어요. 그걸로 궤를 짜고 있는데 느닷없이 군인들이 들이닥쳤어요." /윤만석(1943년생)
두 작가가 만난 제주4·3 희생자 유족 윤만석 씨는 그날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궤 짜는 일을 하던 윤 씨 아버지의 유품은 오래된 '궤' 한 짝. 궤를 보고 있으면, 그날의 기억을 오늘 일처럼 상기할 수 있다. 아프지만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될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다.
"물려받은 것은 / 텅 빈 퀘 하나와 기일뿐이어서 / 죽은 이들 먹이기 위해 / 산목숨 이어온 시간이었다." /허은실 시인, '몰쿠실낭 궤' 일부.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고古가구로 보이겠지만, 윤 씨에게 이 '궤'는 아픔이자, 사랑의 남은 징표일 테다.
이처럼 신간 '기억의 목소리'에는 사물에 스민 제주4·3 이야기가 담겼다. 윤 씨 아버지 유품을 포함해 22점의 희생자 유품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담담하게 비극을 회상하는 유족이기에, 더 구슬픈 시과 사진들. '역사'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 철저히 외면당해 온 이들의 이야기에 이제 우리가 귀 기울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