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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텍스폰’과 ‘개척농가’
제주 ‘텍스폰’과 ‘개척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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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2.0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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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20년 12월호] ISSUE
이용규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1960년대의 제주, 맥그린치 신부 그리고 ‘텍스폰’

‘테쉬폰(Ctesiphon)’은 현수 아치(현수선:Catenary)가 연속된 파곡(波谷) 모양의 쉘 구조 건축 구법을 말한다. 이 구법은 현수 아치의 형틀 비계 위에 섬유 거푸집을 설치하고 철근 없는 시멘트 몰탈만을 입혀 자연스러운 처짐을 만들어낸다. 구법 고안자는 아일랜드 구조 기술가 제임스 윌러(James Waller, 1884-1968)이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왕실 엔지니어로 그리스에서 근무하던 중 텐트 위에 쌓인 시멘트 먼지가 경화되어 강성을 발휘하는 것을 보고 ‘Nofrango’라는 특허를 출연하게 되었다. 이후 1922년 페르시아 지역의 도시 크테쉬폰의 타끼키스라(Taq- i Kisra) 아치를 보고 이 구법을 발전시켰으며, 1942년에는 ‘Ctesiphon Hut’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등록하였다.

제주와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이국의 테쉬폰 구법이 제주로 유입된 것은 (故) 패트릭 제임슨 맥그린치(P.J Mcglinchey, 한국명 임피제) 신부 개인에 의해서였다. ‘1954년’ 그는 아일랜드 콜롬반선교회의 사제로 당시 25세의 젊은 나이로 제주시 한림 본당에 부임하였다. 푸른 눈의 젊은 사제에게 한국전쟁과 4·3사건을 거치며 황폐하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제주인들의 모습은 생경했을 것이다. ‘1954년’은 공교롭게도 한라산 금족(禁足)이 해제되고 소개되었던 중산간 마을의 복구 및 재정착 사업이 재개된 해이기도 했다. 그의 고향 아일랜드의 초원과 닮은 제주의 중산간을 보며 그가 목축의 꿈을 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맥그린치 신부에게는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두 번의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부임 후 7년 만에 찾아온 안식년(1960년 4월), 고향 아일랜드로 귀국한 그는 더블린 신학교 내의 테쉬폰 구법 모형을 발견하게 된다. 구조적으로 견고했으며, 비숙련자도 쉽게 지을 수 있는 시공 성능을 갖추고 있었다. 더구나 값비싼 철근 없이도 저렴하게 시공할 수 있는 점은 가난했던 이국에 부임한 사제에게는 큰 매력이었을 것이다. 그는 친형과 함께 자신의 집 차고를 직접 테쉬폰 구법으로 지어 보며 몸소 그 가능성을 시험했다.

‘Pl480’은 미국이 과잉 생산된 잉여 농산물 특히 옥수수를 외국에 원조하는 법이다. 1961년에 이 법이 개정되면서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민간단체도 원조가 가능해졌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늘 손을 벌려야만 했던 그에게 또 다른 기회였다.

미국으로 향한 그는 최선을 다해 미국정부를 설득했고 결국 수혜 대상에 선정되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피그말리온(Pygmalion)’이었을까? 당시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미국 최초의 아일랜드계 출신 가톨릭 신자 대통령이었다. 테쉬폰을 익히고 제주로 돌아온 그는 이시돌 목장(1961년)에 다양한 형태와 크기를 가진 테쉬폰 구법의 숙소와 돈사를 지었다. 물론 지역 주민들과 함께였다. 이들은 전문가가 아니었음에도 당시 사진과 영상 속 테쉬폰 구법 건물들은 높은 수준의 기술력으로 구현되어 있다. ‘롱텍스폰’으로 불리던 돈사는 마구리가 반원의 부채꼴로 처리되어 있다. 성실하고 솜씨 좋은 주민들이 맥그린치 신부와 함께했던 것이야말로 그가 꿈을 이루는 데 있어 가장 큰 기회였을지 모르겠다.

‘테쉬폰 헛’, 테쉬폰 구법을 제안한 제임스 윌러가 지은 이름이다. ‘이시도레하우스’, ‘삼안식’ 1963년 대한 주택공사의 수유동 시험 주택으로 제주에 도입된 테쉬폰 구법을 소개한 기록에서 발견되는 이름이다. 1961년 제주에 도입된 테쉬폰 구법 건축물을 기억하는 이들이 불렀을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텍스폰’ 또는 ‘택스폰’이라 증언한다. 당시의 건축물 관리 대장과 이시돌 목장 내부 문건에서도 ‘텍스폰’으로 기록되고 있다. 테쉬폰의 단순 오기일 수도 있고, 제주식 발음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좀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건축적으로도 제주의 텍스폰(특히 주거)은 파곡(波谷)면을 주향으로 삼는다. 서양의 건축처럼 마구리 방향을 주향으로 하는 다른 테쉬폰 구법 건축들과는 구별된다. 필자는 제주에 지어진 테쉬폰 구법 건축을 그들이 부른 ‘텍스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를 희망한다. 제주 ‘텍스폰’의 독창성뿐만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했을 젊은 사제의 수고로움을 기억해 주는 일이 될 것이다.

 

개척농가 ‘텍스폰’ 의 대량생산

‘개척농가’, 제주 중산간의 유휴지를 매입하고 이를 활용해 지역주민들의 지속 가능한 경제적 자립을 도모했던 지역개발사업(1963년부터)이다. 미국의 잉여농산물 제2관(제주 사료사업 협정) PL480은 사업의 소중한 재원이었고, 테쉬폰 구법은 단시간 내에 필요했던 대규모의 주택과 창고를 지을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었다. 이시돌 목장에서 용도에 맞춰 수공예로 짓던 텍스폰과는 적용 방식이 달라야 했다.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수의 집과 창고가 필요했다. 규모와 크기도 분양을 위해 규격화되었다. ‘텍스폰’의 대량생산 시대라 하겠다. 맥그린치 신부는 이를 위해 서울 교구에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대표로 있던 주식회사 공영건업이 이를 맡았다. 당시 이시돌 농촌사업 개발 협회 서무계장이었던 강한문(1969)은 개척농가 사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이 사업으로 농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보면 I.D.A(Isidore Development Association, 재단법인 이시돌 농촌산업개발협회) 중앙실습농장에서 일정한 교육과 실습을 거쳐 전형에 합격한 자를 회원으로 계약케 하여 소정의 혜택을 받게 되어 있는데, 개척농가 회원의 경우를 보면 주택 18평, 창고 20평, 돈사 4평, 분뇨탱크, 싸이로, 울타리시설 및 토지 10정보 (약 3만평)를 신용대부하며 사료, 자돈, 비료, 농양, 농자, 면양 등을 현물융자 하여 주고 트랙터를 배치 개간을 하여 준다. 토지 10정보는 주식공물 1정보, 사료작물 3정보, 목야지 6정보로 구분 경영케 하며 목야지는 목야개량을 하게 되어 있다. 대부분 시설물 및 토지는 연 3부 5리 이자로 10년간 연부 상환하며, 현물융자는 월 1부리로 1년 상환으로 되어 있다. 상환이 완료되면 I.D.A는 즉시 회원명의로 이전등기를 하여 주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은 규모의 농가 10호 이상으로 1개 단지를 조성하게 되어 있는 것이 개척농가이다. 그 외 비육돈농가회원으로서 도내 일반농가 중 희망농가로 하여금 회원자격을 취득케 하여 개척농가와 동일한 조건과 상환방법을 적용, 돈사 4평과 분뇨탱크를 시설하여 주고 자돈 20두를 대부하여 비육시킴으로써 농가경제 구조 개선을 원조한다는 내용이다.”

아파트같이 집과 땅의 크기가 일정하고 금융상품이 함께 판매되는 일이야 오늘날 너무나 당연하지만 1960년대 그것도 제주라는 상황을 고려해 보면 흔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더구나 집과 땅을 분할 받기 위해서는 마치 학생처럼 수업을 듣고 시험까지 치러 합격해야만 했다. 그래서일까 “금악 개척농가 입주자들은 제주보다 육지 출신이 훨씬 더 많았다”고 증언한다. 중산간 개척이 최종 목적이라면 굳이 왜 시험이라는 불편한 상황을 고집했던 걸까? 현재 이시돌협회의 이사장인 ‘마이클 신부’의 증언에서 그 해답을 엿볼 수 있었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생전 맥그린치 신부에게 제주의 ‘텍스폰’이 사라져 가는 것이 아쉽지 않은지 물었다고 한다.

맥그린치 신부는 전혀 아쉽지 않다며 텍스폰이 사라지면 오히려 잘 살게 된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제주의 땅과 집이 투기의 목적이 되는 오늘날, 사람 키우는 일을 목표 삼아 중산간의 땅과 텍스폰을 이용했던 개척농가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두 겹으로 지은 텍스폰’

현재 공식적으로 알려진 텍스폰은 23개 동이 있다. 그 중 개척농가 주거용 텍스폰은 대량생산시기에 지어진 만큼 많이 정형화되어 있다. 폭이 좁고 길이가 긴 세장형 형태이고 파곡(波谷)면에 주출입구를 두어 주향으로 삼는다. 개구부는 처짐부(汨) 외피를 들어 올려 곡면 캐노피가 돋보이도록 한다. 내부 공간은 횡으로 구분된 겹집 구조로 종 3열로 구획된다. 외형만큼이나 전형적인 특징을 지녔다 하겠다. 이 외에도 외피가 3계층의 시멘트 몰탈로 되어 있음에도 두께가 고작 40~45mm 정도로 얇다. 시공의 편의성과는 별개로 얇은 두께의 외피로 인해 집안으로 비가 새고 추위와 더위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당시 거주자들은 증언한다. 그리고 그들의 증언처럼 ‘제주도’ 제46호 표지에 컬러로 나온 개척농가 텍스폰들은 누수를 보수하기 위해 검은 ‘에폭시’로 도장한 모습으로 촬영되고 있었다.

“두 겹으로 해서 지은 텍스폰이 하나 있어요”라는 2019년 11월 이시돌 목장 박용근 사무국장(과거 이시돌 목장 시설담당)의 증언에 수차례 되물어야만 했다. 월평의 개척농가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았던 텍스폰이 1970년대에도 지어졌다니, 그것도 두 겹의 외피를 가졌다니 솔직히 쉽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 “‘세레나 목장’에 가면 있었어요. 지금도 있나?” 구체적인 목장 이름이 등장하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박용근 님의 오랜 기억 속 장소를 간절한 바람으로 찾아 나섰고 거짓처럼 ‘두 겹으로 지어진 텍스폰’이 고맙게도 아니, 감사하게도 시간의 무게를 견뎌 ‘잘’ 있어 주었다.

그럼 언제, 누가, 어떻게 지었을까? 무엇보다 왜였을까? 궁금함은 더해 갔고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질문을 이어갔다. ‘세레나’는 개척농가의 주인이었던 고숙정 님의 세례명이었다. 세레나 목장은 금악 개척 농가 단지에 마지막으로 입주한 24호 목장의 별칭이었고, 길가에 접한 다른 개척 농가들과 달리 목장은 길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외딴 곳에 있었다. 고숙정 님은 땅 모양이 이형이고 돌도 많아 제일 마지막에 분양받았다고 했다. 언제쯤 지어진 것일까? 1979년에 촬영된 항공사진에서 텍스폰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용근 님은 이시돌 목장 시설담당으로 있던 1973년에서 1979년 사이에 지은 것으로 기억했다. 고숙정 님도 결혼한 해인 1973년으로 기억했다.

질문은 계속됐다. 누가 지었을까? 그리고 왜였을까? 박용근 님은 다음과 같이 맥그린치 신부와 이시돌 목장의 주민들 주도로, 기존 주거용 텍스폰 단점을 개선하고자 벽체 중간에 공간을 두는 지금의 ‘중공벽’과 같이 외피를 시공했다고 증언한다.

“(맥그린치)신부님이 이거 비도 새고 결로도 생기고 하니 혼자 고민 고민 몇 년 하다가 ‘세레나’가 농장을 하니까 거기에다 텍스폰을 져라 해서 제가 그때 인부 데리고 이렇게 한 것이에요.(중략) 이때는 사람들이 텍스폰을 싫어할 때였는데, 임신부님 고집에 한 번 비 안 새게 해보자 해서 세레나 목장에 만드니 이중으로 해봐라 해서 했던 거죠.(중략) (한 겹) 여기에다 벽돌 쌓고 다시 한 번 천을 치고 공간을 띄어서 만든 집이 하나 있어요. 24호 일거에요. 한 집 우리 동네만”.

세레나 목장 주거용 텍스폰은 단지 외피만 이중으로 된 것이 아니었다. 파곡면이 아닌 마구리면을 주향으로 삼아 남서향 배치를 하고 있었다.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이다. 파곡면에는 어떠한 개구부도 없었고, 양측 마구리로만 창과 문이 나있었다. 주향이 바뀐 결과 형태도 세장형에서 정방형(7,055㎜×6,852㎜)으로 변화되어 있었다. 내부공간 역시 파곡 방향이 아닌 마구리 방향으로 겹집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중의 외피가 온전히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기존의 공간 계획방식도 철저하게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현재 발견된 세레나 목장 텍스폰은 마구리면 양쪽으로 증축이 되어 있었다. 당시 거주자 고숙정님의 협조를 얻어 증축 과정과 텍스폰에서의 생활상을 조사하고 있다. 삶의 모습이 어땠을지 조금 더 접근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1961년 이종(異種)으로 처음 제주 중산간에 유입된 ‘텍스폰’이 이시돌 목장에서 수공예적 정착과정과 개척농가의 대량생산 시대를 거치며 그 가능성을 시험받았다면, 이중 외피를 가진 ‘텍스폰’은 이후에도 제주의 기후와 주거문화에 순응한 ‘살아있는 기술’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진화를 계속한 ‘텍스폰’을 연구하는 일은 역설적으로 근대 제주 주거문화의 열성과 우성을 이해하는 가치 있는 과정이 될 것이다.

 

월평 개척농가와 제주첨단과학단지

제주에는 텍스폰으로 집과 창고가 지어진 3곳(금악, 월평, 선흘)의 개척농가가 알려져 있다. 선행 연구자들의 노력 덕분에 개척농가의 많은 실체가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월평의 개척농가에는 1개의 텍스폰만이 확인되고 있다.(제주특별자치도, 2019). 한편 향토학자 고영철(2017)은 월평 개척농가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월평동에 있는 테시폰 건물은 선흘2리와 같이 이시돌협회에서 추진한 개척농가로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나 자세한 유래에 대해서는 미상이다. 원래 마을이 있었던 곳이 아니라 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새로 조성한 양돈단지로 보이며 지금은 일부가 돈사로 운영되고 있을 뿐 버려져 있거나 울창한 숲에 가려 있어 건축 장소를 확인하기도 어렵고 정확히 몇 채가 있는지도 확인하지 못하였다. 주택으로 지은 건물과 축사로 지은 건물이 있다. 월평동 향토지에는 1962년부터 1963년까지 2년 사이 월평목장에 텍스폰식 콘크리트 건물 20세대가 신축되었고 입주는 40명이었다.”

해당 글을 근거로 보면 적어도 1960년대에는 약 40여 동의 ‘텍스폰’이 월평의 개척농가에 존재하고 있었을 것으로 거칠지만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체를 규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런 면에서 사진은 추정이 사실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항공사진’은 비행 중인 항공기에서 고성능 사진기로 지상을 찍은 사진을 말한다. 다행히 필자는 1967년 제주시 월평 지역을 촬영한 항공사진을 통해 월평 개척단지로 추정되는 곳에 최소 16곳의 개척농가와 32동의 텍스폰 존재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2020년 6월 주거(7개동)와 창고용(6개동)의 텍스폰 13개동(기존 3개동 포함)이 현존하고 있음을 답사를 통해 밝혔다. 현재는 관련 연구가 진행 중에 있으며, 머지않아 조금 더 구체적 실체에 접근할 수 있으리라 희망한다.

월평 개척농가가 있던 곳에는 현재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가 중첩하고 있다.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는 ‘제주 산업구조의 자립도 향상과 지역산업 활성화’를 목적으로 조성되었다. 그 결과 국내 굴지의 IT·BT 기업을 비롯해 관련 공공 및 민간연구소가 입주해 있고 주거시설과 생활시설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단지’는 주택, 공장, 작물 재배지 따위가 집단을 이루고 있는 일정 구역을 의미한다. 오늘의 첨단과학기술을 유치하고 그들이 집단을 이뤄 제주 산업의 자립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60여 년 전 ‘목축’이라는 어제의 첨단과학기술을 매개로 집단을 이루고 제주의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모색했던 개척농가와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물리적 공간인 ‘장소’가 역사와 전통을 갖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억만금이 있다 하여도 시간을 물리적으로 취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시간은 그만큼 강한 힘을 지닌다. 시간이 더해진 매력적인 건축공간 하나가 쇠퇴해가던 도시를 살리는 사례는 일일이 예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렇기에 오늘의 첨단과학기술단지가 어제의 개척농가와 시간을 달리하며 같은 장소를 온존하고 있는 것은 큰 축복일 것이다.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 2단지가 조성되면 월평의 개척농가에 있던 현존 텍스폰 일부는 사업 대상지 안에 포함되며, 일부는 이웃해 위치하게 된다. 텍스폰은 매력적인 자산으로 계승될 수도 있고 반대로 개발압력이 더해져 사라질 수도 있다. 선택의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우리 모두 자문해야 할지 모른다. 오늘 우리에게 ‘텍스폰’은 어떤 의미일까?

 

참고문헌

- 박철수(2018), 주거박물지, .
- 김태일(2019), 건축자산 기초자산 보고서, 제주특별자치도
- 양영철(2016), 제주한림이시돌 맥그린치 신부, 박영사
- 권기혁, 박철수(2014), 테쉬폰 구조의 유입과 변형, 한국건축역사학회.
- 권기혁, 박철수(2015), 수유리 시험주택 B형과 제주 테쉬폰 구조물 추적·조사 연구, 대한건축학회논문집.
- 김호선, 김태일(2000), 제주지역 근대주택의 특징에 관한 기초적인 연구제주대학교 산업기술연구소 논문집.
- 강한문(1969), 이시돌축산개발사업, 지방행정 16(192).
- 박철수(2014), 수유리 시험주택 B형과 제주 테쉬폰 주택의 상관성 유추대한건축학회논문집.
- 이용규, 최호석, 오성훈(2020), 제주 주거용 테쉬폰의 기술적 변용에 관한연구, 대한건축학회논문집 36(8).
- 이용규, 양성필(2020), 제주 개척농가 테쉬폰의 배치 특성에 관한 연구,대한건축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논문집 40(2).
- http://www.jejuhisto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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