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03-07 18:44 (일)
바다도 땅처럼 건축적으로 들여다볼 수는 없을까
바다도 땅처럼 건축적으로 들여다볼 수는 없을까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02.04 16: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제주건축가다] <15> 건축가 현혜경

 

기획 나는 제주건축가다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 건축에 대한 이야기와 제주라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기획은 모두 3개로 나눠진다. 건축가가 꼽은 땅에 대한 이야기, 건축가와 나누는 대담, 자신을 이끌어 준 건축 관련 책을 담는다. 대담은 문답식으로 싣는다.

이번에 소개할 건축가는 건축사사무소 더현의 현혜경 대표이다.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내려온지 얼마 되진 않았다. 그는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리 출신으로, 그가 태어난 땅을 좋아한다. 그 땅은 제주사람이 부르는 바당이다. 소개한 책은 이탈로 칼비노가 쓴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다.

 

 

# 바다 – 뭍과 마찬가지로 땅이다

‘바당’은 바다의 제주 이름이다. 제주사람에겐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가 곧 바당이다. 바당은 배고픈 제주사람들의 배를 채워주는 곳간이기도 했다. 예전 수만 명에 달한 물질하던 여성을 기억하는가. 좀녜 혹은 좀녀, 좀수로 불리던 해녀들의 밭이 바로 바당이었다.

제주사람에겐 이처럼 귀한 바당이지만, 사람이 사는 곳으로서 바다는 존귀 대상은 아니었다. 옛 사람들의 풍수엔, 바다는 저 먼 귀퉁이에 있는 작은 먼지일 뿐이다. 배산임수의 그 ‘수(水)’는 바다가 되지 못한다. 적어도 풍수지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려면 조용하면서 운치가 넘치는 강이나 호수를 끼고 있어야 한다.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를 보더라도 터의 기준은 “산을 등지고 호수를 내려다보는 지형이야말로 가장 빼어난 곳이다”고 평했다. 서유구는 아울러 훤히 트여야 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고 보면 바다가 주거지로서 높은 점수를 받은 일은 별로 없다. 눈앞에 보이는 바닷가에 수도를 정한 나라도 많지 않다. 바다는 진출의 선봉이면서, 공격을 받는 입장이 된다면 역습을 처음 마주해야 한다. 삶보다도 죽음이 훨씬 가까워 보이는 지점이 바로 바다에 면한 지역이다.

사진은 남원포구. 바다 경관은 자주 바뀐다. 매립되면서 예전 모습을 잃는 건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건축행위가 잇따른다. 사진을 보면 포구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보인다. 때문에 포구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답답함 그 자체이다. 미디어제주
사진은 남원포구. 바다 경관은 자주 바뀐다. 매립되면서 예전 모습을 잃는 건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건축행위가 잇따른다. 사진을 보면 포구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보인다. 때문에 포구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답답함 그 자체이다. ⓒ미디어제주

그나마 제주도는 바닷가를 바로 끼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바닷가에 솟아나는 용천수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그들은 태풍의 난리 속에서도 낮게 몸을 낮추며 바람을 이겼다. 아주 빠른 배를 만들어서 먼 바다를 오가던 이들의 삶도 바닷가에서 시작된다.

배산임수는 ‘면배(面背)의 안온함’을 강조한다. 즉 뒤엔 산이 있고, 앞은 물이다. 게다가 안온함을 느끼려면 바람도 덜해야 한다. 그렇다면 배산임수는 제주 바닷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풍수여건이라는 말이다. 시대가 바뀌면 사고도 달라진다. 텍스트로 풍수는 그대로이겠지만, 지금은 예전과 달리 바다 풍경을 지니는지의 여부가 재산가치로는 매우 중요하다. 배산임수의 ‘배산’은 저 멀리 뒤에 있는 한라산이며, ‘임수’는 곧 눈에 보이는 제주바당이다.

시대가 바뀌고 바다를 보는 관점도 달라졌기에 바당을 건축적으로 받아들이는 일도 필요하다. 서귀포시 남원리 출신인 현혜경 대표는 ‘바다 역시 땅’이라고 부른다. 땅이라고 불릴 바당은 많다. 물이 넘나드는 조간대를 비롯해 널린 곳이 땅이면서 바다이다. 그런 제주바당은 마구잡이로 건축행위가 이뤄지고, 파괴도 강행된다. 귀가 얇은 행정을 탓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 생각 없이 바닷가에 철제다리를 만들기도 한다.

바다는 이제 개척의 영역이 아닌, 삶의 영역이다. 삶은 건축활동을 비롯한 인간의 모든 게 포함된다. 건축도 예외일 수는 없다. 남원포구는 옛 모습과는 다르다. 포구 일대는 ‘진갱이’라고 불렸고, 진갱이 서쪽은 ‘생이부리’라는 이름을 지닌 곳이다. 하지만 매립이 지속되면서 ‘진갱이’가 어디인지, ‘생이부리’의 원 모습은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렵게 되었다. 더구나 해수풀장이 생기면서 눈을 가리는 다리까지 등장하고 말았다. 제주바당도 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처럼은 되지 않았을 일인데.

 

[대담] 건축가 현혜경을 만나다

 

건축사사무소 더현의 현혜경 대표를 만났다. 기획을 하며 처음으로 마주한 여성 건축가이다. 건축사사무소 이름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보지 못했다. 어진 능력()을 더한다는 의미로 더현일까로만 알았다. 받고 본 명함엔 ‘THE;이라고 나온다. 품었던 생각이 틀렸음을 그제야 알았다. 건축은 하모니도 중요할텐데, 서로 다른 것의 조합이 ‘THE;에서 읽힌다. 대명사 (THE)’와 새미콜론(;), 거기에다 한자 검을 현()’. 서로 다른 물상을 어떻게 하나로 녹여낼까. 건축에서만 보이는 안과 밖, 빛과 그림자. 그걸 하나로 만드는 건 건축가의 몫이다. ‘더현에 대한 나름의 해석은 이번도 틀렸을까.

 

소개해 준 책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읽기는 쉬운데 해석하기가 힘들더라.

1998년과 1999년 서울건축학교를 다닐 때 추천도서 형태로 접했다. 처음엔 읽히지 않았다. 서울건축학교는 설계보다는 도시를 읽고, 도시를 탐색하는 스튜디오가 대다수였다. 도시적 접근을 하는 스튜디오였고, 도시를 읽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우리는 논리적으로 도시를 보기도 하는데, 그런 걸 떠나서 감각적이고, 비논리적이면서도 상상에 의존해서 도시를 읽으면 그 도시의 속내를 더 보게 되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서울건축학교에서 배운 도시는 어떤 도시인가.

튜터마다 성향은 다르지만 도시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을 공통적으로 강조했다. 서울대 교수로 가 있는 김승회 교수와도 1년 넘게 스튜디오를 했는데, 그 분은 경계면을 파고든다. 이쪽과 저쪽 영역 사이에 끼어있는 경계면을 소홀하는 경우가 많은데, 경계면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둘의 관계는 달라진다. 그래도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분은 조성룡도시건축의 조성룡 선생이다.(조성룡 선생은 1996년부터 2003년까지 서울건축학교교장을 지내기도 했다.)

 

조성룡 선생과 함께했던 작품으로 뭐가 있나.

도시건축엔 2002년 입사했다. 그때 4·3평화공원을 하게 됐다. 내가 제주출신이라서 맡아보라고 했다. 입사한지 두석달 밖엔 안됐을 때였다. 조성룡 선생이랑 제주도에 와서 자료조사도 하곤 했다.(4·3평화공원은 아쉽게도 당선작이 아닌 2등이었다.)

 

건축가 현혜경은 서울건축학교를 통해 도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게 됐다고 말한다. 조진희
건축가 현혜경은 서울건축학교를 통해 도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게 됐다고 말한다. ⓒ조진희

- 4·3평화공원을 구상하면서 구현하려 했던 건 무엇이었나.

조성룡 선생은 공부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다. 현상설계나 프로젝트를 할 때 관련 자료를 찾고 공부를 하는 게 절반이다. 방송국에 가서 4·3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다. 4·3평화공원은 추모를 하고, 어떤 것을 기리는 장소인다. 뭔가 상징적인 걸 구현하는 게 아니고, 과도한 제스처를 쓴다고 위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최대한 땅에 면해서 추모공간을 집중시키려 했다.

 

건물을 도드라지게 하지 않으면서 추모하는 게 값질 수 있을텐데, 4·3평화공원에 가면 눈에 띄는 게 건물이다.

도시건축은 4·3평화공원을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로 접근했다. 평화공원은 건축이 메인이 아니라 희생된 분들이 어떻게 위로되고, 어떻게 화해하는지 고민하는 곳이다. 그때 4·3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

 

- 조성룡도시건축에 있으면서 구현된 건축물 가운데 아쉬운 게 있다면.

파주출판단지 계약부터 감리까지 1년의 모든 과정에 관여했던 조경사 사옥이 있다. 공사를 급하게 할 건물은 아니었는데, 급하게 짓게 돼버렸다. 너무 조형적으로 나왔다. 비례감은 좋은 건축물이었지만 너무 반듯하게 나왔다. 너무 도드라졌다. 지금도 작품활동을 하면 그런 편이다. 덜 조형적이면서, 덜 모던한 걸 하고 싶다.

 

눈에 띄지 않는 건축물을 말하는가.

조금은 더 자연스러운 건축물을 말한다. 하지만 작업을 하다 보면 각이 살아난다. 수련하고 배운 게 모던한 디자인이었다. 좀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서울에서 작품활동을 하다가 왜 고향으로 내려 왔나

처음엔 사무실을 오픈할 생각이 없었지만, 사무실은 어디가 좋을까 생각해봤다. 고향에서 한다면 내 색깔을 찾는 계기가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내려오기 5년부터 제주를 자주 들렀다. 올레길을 걷고 오름도 올랐다. 나는 왜 이처럼 좋은 제주를 등돌리고 살았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와 보니 안타까운 건 제주를 도시로 표현하는데 있었다. 과연 도시가 맞을까. 제주도는 조금만 나가면 촌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도시로 부른다.

 

서울은 건물이 들어간 상태에서 작업을 해야 하고, 여기는 숨통이 터 있다. 오히려 생각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보이는데.

서울에서는 지목이 대지인 곳에서만 설계를 했다. 제주도는 과수원도 많다. 행정적인 걸 떠나서 막막하다. 컨텍스트를 읽어야 하는 게 막막하다. 말 그대로 땅을 읽는 게 쉽지 않다. 서울처럼 주변에 건물이 있으면 모티브가 되고, 높이에서부터 스케일이나 재료가 무엇인지를 파악되지만 제주도는 다르다.

 

그런 면에서 제주도는 창작욕구를 불러일으키지 않나?

앞서 말했듯이 튀는 건축을 좋아하지 않는다. 건물은 10년 있다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처음엔 반짝하다가 10, 20년 지나면 건물로 인해 경관공해가 되곤 한다. 오래가는 건축물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한다.

 

책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굉장히 빨리 읽은 책이다. 읽다 보니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공간도 느껴진다. 그러나 대체 보이지 않는 도시가 뭘까. 도시는 눈앞에 보이는데, ‘보이지 않는 도시라는 게 쉽게 와닿진 않는다.

이 책은 어떤 사람이 읽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진다.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부분이 더 생긴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땐 관심이 가는 곳부터 읽었다. 어렵게 읽으면 어렵게 읽히고, 쉽게 읽으면 쉽게 읽힌다. 읽을 때마다 새롭다.

도시를 알려면 시장을 가보라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보면 골목길로 데려다주는 느낌이다.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책엔 땅을 밟지 않는 얘기도 나오는데, 상상을 자극하긴 한다. 그래도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관심을 두는 땅이 있다면.

땅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 할지 고민되더라. 건축을 하는 이들은 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너무 일반적인 이야기로 풀릴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집은 남원이다.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공간이다. 집 마당은 바당이었다. (바다와 육지 사이의) 경계였다. 그야말로 엣지에 살았다. 어릴 때만 해도 마당이 있고, 돌담 너머는 바다였다. 밀물 때는 수영하면서 놀고, 썰물 때는 진흙에서 야구를 하기도 했다. 거기는 경계면이었다.

우리는 바다를 땅으로 생각지 않는다. 서울에 있을 때 고향 남원에 해수풀장이 생긴다는 얘기를 듣고 기대를 했다.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바닷가에 설계한 해수풀장이 생기길 상상했다. 그런데 웬걸? 알록달록 미끄럼들이 등장하고, 방파제를 연결하는 다리가 남원에 생겼다. 이 정도 밖엔 안될까? 브릿지 하나로 시야가 막히게 된다. 바다를 보는 경관이 훼손됐다.

바다에 면한 곳은 경게면이지만, 바다 쪽으로는 개발이 한창 이뤄지는 곳이기도 하다. 항만 개발을 보면 건축가들은 소외된다. 그런 부분도 우리의 일이고, 바다 역시 땅이라고 생각을 했으면 한다. 밀물 때 물이 들어있다가 썰물 때 물이 빠지면서 드러나는 곳. 그 바다도 땅이다.

 

제주도는 남북이 다르다. 남원에서 살았다면 여름철에 고생했겠다.

맞다. 태풍이 크게 일어 피신을 가기도 했다. 어릴 때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방파제를 해둬서 그때보다는 드물지만, 태풍이 온다면 바리바리 싸서 윗집으로 피신을 가곤 했다.

 

상대적으로 제주도 북쪽에 사는 사람들은 겨울이 힘들다. 겨울철 북서풍 때문에. 남쪽은 집짓기가 편한데 북쪽은 힘들다. 바다를 봐야 하는데 향의 문제가 생긴다. 그걸 어떻게 풀어볼까.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을 때 공동주택은 어떻게 지어야 할까. 가끔 강의를 나가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학생들은 그거 잘 모르더라.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으면 매우 불리한 조건이다. 이걸 잘 해결한다면 제주지역에 맞는 공동주택이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북쪽 바닷가에 살기에 겨울철을 잘 안다. 그런데 종종 북쪽 겨울철에 살기 힘든 건축물을 바닷가에서 만나곤 한다. 건물주가 육지 사람일 수도, 건축가가 육지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제대로 읽어야 한다. 하루 이틀로 될 일은 아니다. 조사를 해야 하고, 그렇지 않고 지어진다면 잘 쓰이지 않을 수도 있다. 건축가라면 리서치를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육지 출신들은 바닷가의 그런 집을 보곤 ~”한다. 그럴 때 겨울철에 살아봐야 한다고 말한다. 왜 그런 건축 행위를 할까? 지역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라는 느낌도 있다. 제주도 건축가들은 지역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학교 다닐 때 배운 지역성. 육지 살 때 지역성. 내려와서 느끼고 있는 지역성을 말해달라.

내려와서 느낀 지역성을 먼저 말하고 싶다.

제주는 도시가 아니다. 도농복합 지역이라는 데 포커스가 맞춰져야 한다. 촌은 아니지만 조금만 가면 도시적 서비스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라면 어떤 식으로 건축을 해야할지 고민해야 한다.

건축이 구현되는 스케일, 재료, 형태 등 여러 가지이다. 그 가운데 재료적 측면을 봤으면 한다. 제주건축을 보면 대게 드라이비트라는 단열재를 바르고, 징크 지붕을 씌운다. 조금은 덜 모던하면서도 덜 조형적인 재료를 찾고 연구하면 어떨까.

 

새로운 재료를 찾아내야 하나?

지역을 다니면서 조사할 필요가 있다. 가공의 가능성이라든지,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해보면 좋겠다.

 

학창시절과 서울에서 살 때의 지역성을 말해본다면.

학창시절엔 토속적인 지역성 의미를 배웠다. 안거리와 밖거리 등 제주민가 배치 등을 배웠다. “이건 제주에만 있다고 배웠고, 단독주택을 설계하면 일부러 안팎을 두고, 골목은 올레길이라고 했다. 그런 지역성의 이해가 전부였다.

타지에서 제주의 지역성을 바라보면 그런 것들의 장점을 부각시키면 좋으리라 생각든다. 육지에서 가장 신기하게 생각하는 게 제주의 가족제도이다. 같은 마당에 가족들이 살지만 부모세대는 독립적으로 산다. 안팎 사는데 밥을 따로 했다.

서울 사람들은 이해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 게 나쁜 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이 그랬다. 그렇다면 거기에 맞는 걸 찾아주면 된다. 그것도 지역성이 될 수 있다. 그런 요소들을 찾아내서 그걸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 좋겠다.

 

여성으로서 첫 인터뷰이다. 여성 건축가라는 장점도 있을텐데.

힘든 게 많은데(웃음). 건축 분야는 남성의 문화였다.

강점이라면 여성 건축주들이 편하게 생각한다. 집을 지을 때 디테일한 부분까지 봐야 하는데 사소한 것까지 이야기할 수 있어서 여성 건축주들이 편하다고 한다. 수시로 연락하기도 편하다고 하며, 여성 건축주들이 이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면서 말하는데 더 편하게 느낀다.

 

건축계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제주도청의 공공건축가랑 도교육청 학교공간 혁신사업의 촉진자 활동을 하고 있다. 공공건축가 활동은 아직은 초반이고, 촉진자인 경우는 바로 투입되곤 한다. 촉진자 생활 7개월 중 2개월은 학교에서 학생이나 학부모를 대상으로 워크숍을 한 뒤에 그걸 베이스로 설계를 한다. 일련의 과정이 바로바로 이뤄진다.

현재 제주도교육청 촉진자로 홀동하는 건축가는 모두 12명이다. 다들 순수하게 열심히 한다. 하지만 촉진자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선생도 모르고, 학생도 몰랐다. 그걸 설명하면서 부딪히는 게 힘들었다. 학교를 상대하다 보면 용역발주도 일반 용역으로 아는 경우가 많다. 촉진자 관련 사업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건축에 대한 이해도가 전반적으로 떨어진다. 어릴 때부터 건축에 대한 교육이 잘못돼 있고, 부모 세대도 건축을 잘 모른다. 건물을 짓고 그냥 부동산 가치로만 생각한다. 아이들도 나는 아파트 몇 평에 살아”. 이렇게 따진다. 건축문화 이해를 높이려면 뭐가 좋을지.

학교공간 혁신사업이 좋은 점은 두달 과정의 워크숍에 있다. 그 과정을 통해 공간에 대한 이해를 시킨다. 건축가는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 내가 작업한 것을 보여준다. 건축을 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학생 때부터 달라지는 계기가 된다.

 

다시 땅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제주라는 땅은 귀중하다고 한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어떤 면에서 가치가 있을까.

뭐니뭐니해도 자연환경이다. 타지에 있다 보면 제주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보존론자는 아니다.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의 문제를 다룰 때 자연환경을 빼고서는 얘기할 수 없다.

특히 바다와 한라산이라는 포인트가 있다. 거기에 맞게 건축을 해야 한다. 서울에서 내려올 때마다 느끼는 게 있었다. 도로만 늘어난다는 점이다. 읍면 단위 바닷가에서 보면 50미터나 100미터 사이로 도로가 계속 생긴다. 차도 별로 다니지 않는데 도로는 계속 만들어진다. 건축을 하는 사람들의 최대 과제라는 생각도 든다.

 

필요 없는 도로임에도 주민 요구라면서 개발을 강행하곤 한다.

마을의 밀도와 스케일, 인구와 이용형태에 맞는 계획을 하면 된다. 그걸 놔두고 도로를 만들면 실제 하루에 차량이 몇 대 다니지 않는 도로를 만들게 된다.

 

그러고 보면 제주 전체를 도시라고 봤을 때, 사람 위주보다는 차량 위주이다. 사람 위주라면 사람이 걸어다니는 길을 편안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사람 위주의 도시를 만들려면 뭐가 필요할까.

제주에 와서 깜짝 놀랐다. 이면도로 주차는 흔하다. 아무렇지 않게 골목길 주차를 한다. 해결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고, 방치한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상황에서 보행을 논하기 힘들다.

 

제주사람들은 잘 걷지 않는다.

연북로는 인도가 있어도 걷는 사람이 없다. 걸을 수 있는 도로 스케일이 아니다. 차에서 누군가 나를 보고 있고, 걸어다니는 사람을 구경하게 만드는 느낌이다. 걸을 때 불편했다. 보행을 위한 인도가 아니었다. 지면이 불편한 게 아니라 쇼윈도에 걸린 느낌인데, 이는 도로 스케일의 문제이다.

 

인도가 인도 같지 않아서다. 걸을 때 가로수가 쫙 펼쳐지든지, 그런 인도의 느낌이 있어야 한다.

자동차와 걷는 사람이 한 켜에 있다. 가로수로 인해 가림도 되는 게 있어야 하는데 너무 노출돼 있다.

제주도는 어찌 보면 날씨나 환경은 보행으로서는 최적의 도시이다. 날씨가 좋으면 얼마나 걷기에 좋은가. 살살 바람이 부는 날도 걷기에 좋다. 서울은 공기 때문에라도 걷기가 힘들다. 그런 면에서 제주도는 보행엔 최적인데도 보행이 되질 않는다.

 

건축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건축가는 어떤 식으로 사회에 역할을 해야 할까. 설계를 잘 하는 것도 사회적 역할 일 수 있고, 좀 더 사회에 참여할 수도 있다.

설계만 잘 하는 쪽은 아니다. 도시를 지을 때 피라미드를 보면 맨 밑이 건축이다. 실질적으로 위에서부터 협의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시를 만드는 기획단계부터 건축가들이 참여해야 한다. 기획이 중요한데, 그만큼 역량을 키워야 한다. 스스로 역량을 키우고 건축단체도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바뀐다. 동네에 집 하나를 한다고 바뀌는 건 아니다. 건축가는 그 이상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이다. 그렇다고 건축이 다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위에서부터 참여해서 목소리를 내고 밑에까지 바뀔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밑에서 바꾸는 건 늦었고 힘들다.

서울건축학교를 통해 도시에 대한 관심을 배우게 됐다. 도시학자는 건축가들이 말하는 도시를 싫어한다. 그럼에도 건축하는 이들은 도시를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출발해서 건축까지 와야 한다.

 

건축가는 매력적인 직업이다. 어떻게 발을 디뎠나.

어떤 직업을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커리어 우먼을 꿈꿨다. 전문직 여성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 제주에서 전문성을 살릴 직업을 생각하는데, 마침 건축학과가 눈에 들어왔다. 고교 때 인문계였음에도 지원했다. 당시 대입은 교차지원이 가능했는데, 감점을 받으면서 건축학과에 들어왔다. 건축이라는 실체는 몰랐지만 커리어 우먼으로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발을 디뎠다.

 

공간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공간을 보면 뭔가 알 수 없는 느낌을 받곤 한다. 공간이 주는 개인적인 감응이 있다면.

제주사대부고를 나왔는데, 지금은 철거되고 없는 옛 제주대 본관이 학교 다닐 때 있었다. 1층엔 도서관이 있었고, 특별음악실과 가사실. 옥상은 학생회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 공간을 쓰면서 공간의 느낌을 받았다. 그 기억은 오래 남았다. 지금 생각하면 공간이 주는 기억의 영향이 크다고 새삼 느낀다.

옛 제주대 본관은 재미있는 공간이 많았다. 형태를 떠나서 깊이와 높이와 뚫림, 그곳에서 했던 행동들이 선명하게 기억 남는다. 잔흔이라고 해야 할까, 공간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큼을 느끼는 대표적 건물이다. 나중에 건물이 철거되고, 간이건물이 들어섰을 때 마음이 너무 안좋았다.

제주대 본관이 누구의 작품인가보다는 건물이 내게 준 추억과 기억들이 좋다. 건축가는 설계를 하고, 공간을 만지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의 기억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공간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일은 참 좋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근대건축을 비롯해서 사라지는 건물이 많다. 어떻게 덜 사라지게 만들까.

1970년대 흔한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찾을 수 없는 구조를 가진 건물도 많다. 그런 건물을 막상 리모델링 하게 될 때 내진성능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건 지금이라는 시점에 맞추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새로 틀을 짜야 한다. 진행하다 보면 공사비가 더 커지기도 한다. “리모델링을 굳이 해야 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보존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찾으려면 건축적 가치가 높지 않으면 쉽지 않다. 국가차원에서 리모델링이나 재생을 권장하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현실과는 너무 모순된다.

리모델링 공사비가 신축과 같다면 누가 리모델링을 할까. 건축가가 설득해서 한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문제에 부딪힌다. 건축하는 사람 또한 배보다 배꼽이 커지면 회의감이 든다. 내가 설득하면서 해야 되나? 안타까운 부분들이 있다.

 

가치 있는 건축물을 보존하려면 지금의 법규로만 할 게 아니라 좀 더 유연하게?

맞다. 그렇지 않으면 힘들다. 예전 건축물의 슬라브랑 보는 지금의 내진으로는 안되며, 기초부터 다시 해야 한다. 아울러 제주도 예전 집은 단열이 되어 있지 않다. 가치 있는 건물이라면 예외도 필요하겠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 이탈로 칼비노 지음

 

“깎아지른 듯 가파른 두 산 사이에 낭떠러지가 있습니다. 도시는 허공에 걸려 있습니다. 밧줄들과 쇠사슬과 좁은 구름다리들로 도시는 양쪽 산꼭대기에 묶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무로 이어 만든 다리 위로 걸어 다니는데 나무 사이사이로 발이 빠지지 않게 주의해야 합니다. 혹은 삼으로 꼬아 만든 밧줄을 꽉 잡아야 합니다. 이 다리 밑의 낭떠러지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끔 구름들만 떠다닐 뿐입니다. 그 아래쪽으로 골짜기의 밑바닥이 얼핏 보이기도 합니다.”<‘보이지 않는 도시들’ 중에서>

옥타비아라는 이름의 도시에 대한 풍광은 이렇다. 책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눈에 그려지는 도시도 있고, 그렇지 않은 도시도 있다. 책 제목이 그렇듯 상상에 기대어 만든 도시여서인지, 상상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을 경우엔 책에 등장하는 도시의 윤곽은 뿌옇게만 보인다.

책은 세상에 등장하는 도시가 아닌, 저자가 만든 도시들이다. 저자가 만든 도시는 모두 55개이며, 중국 원나라의 쿠빌라이 칸과 마르코 폴로가 나누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도시들이다. 55개 각각의 도시에 대한 설명은 아주 짧다. 55개 도시는 기억, 욕망, 기호, 섬세, 교환, 눈, 이름, 죽음, 하늘, 지속, 숨김이라는 11개의 주제로 해석된다. 11개의 주제와 어울리는 도시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도시도 있다. 여러 번 읽어보아야 55개 도시와 11개 주제를 풀어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이 책을 수학적 구조로 풀어내기도 하고, 실제 건축 설계로 이어가기도 한다. 오페라 작품으로도 구현되었다. 칼비노가 쓴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대체 어떤 마력을 지녔길래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 ‘보이는 작품’으로 만들었을까. 그건 어쩌면 우리가 바라보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우리는 도시를 현재적 관점이 아닌, 미래로 바라보는 경향이 짙다. 그건 바로 유토피아적 상상이다. 그러나 칼비노가 던지는 도시 이야기는 유토피아를 이야기 하는 건 아니다. 유토피아가 담긴 도시도 있지만, 현재의 문제점을 지닌 도시 이야기도 많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나오는 도시 ‘레오니아’는 풍요롭다. 풍요로울 수 있는 이유는 매일 새로운 걸 만들고, 쓴 것은 버리기 때문이다. ‘레오니아’는 이렇듯 풍요와 새로움으로 가득하겠지만, 문제는 ‘버려지는 것’에 있다. 그 쓰레기는 어디로 향할까. 쓰레기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지 않는다. 버리는 양이 늘면 늘수록 레오니아를 둘러싼다. 레오니아가 살 방법은 무엇일까. 다시 레오니아를 찾아야 한다.

프로코피아는 자연만 가득한 도시였다. 책 속에서 마르코 폴로는 매년 그 도시를 들러서 여장을 푸는데, 매년 도시의 모습은 달라진다. 한해 한해 지나면서 도랑, 나무, 검은 딸기 밭은 사람들의 얼굴로 가려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언덕 등성이, 다리 위에까지 사람으로 가득찼다. 사람들은 더 늘어나서 다른 사람의 어깨 위에 걸터앉기까지 했다. 어느 날은 여관 창문을 열었더니 오직 사람들의 가득찬 얼굴이었다. 그러다 하늘마저 사라졌다. 대체 무슨 의미일까. 사람의 얼굴을 건축물로 대체한다면 답답한 현대 도시의 빌딩이 드러난다.

도시는 인간이 창조한 개념이며, 인간이 영원히 살아갈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도시라는 공간은 지속 가능해야 하고, 삶의 즐거움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도시의 모습이 늘 행복하게 보이는 건 아니다.

책 속에서 칸이 물었다. “최후의 상륙지가 지옥의 도시일 수밖에 없다면, 모든 게 부질없는 짓이지.”

마르코 폴로가 이어서 답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공간은 부정과 정직이 섞여 있다. 부정만 있거나 정직만 있는 공간은 있을 수 없다. 그건 ‘천당’과 ‘지옥’으로 구분을 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우리 곁은 천당과 같은 공간도 있을 수 있고, 지옥과 같은 공간도 있을 수 있다. 천당과 지옥은 우리의 삶에 혼재되어 있고,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는 선택이다. 선택이 잘못되었으면 교육을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 마르코 폴로는 쿠빌라이의 질문에 지옥을 벗어날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지옥을 받아들이며 사는 방법이 있고,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서 지속시키는 방법이라고 했다. 어느 게 유토피아적 환상이며, 어느 게 도시의 지속가능한 방법일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