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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평화공원과 너븐숭이 4·3기념관 답사
4·3평화공원과 너븐숭이 4·3기념관 답사
  • 미디어제주
  • 승인 2021.01.0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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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20년 8월호] COMMITTEE
이용환 건축사사무소 생활공간/제주도건축사회 연구위원회 위원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 연구위원회에 참여하게 된 후 첫 글을 쓰는 차례가 찾아왔습니다. 어떤 주제로 함께 의논을 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 좋을까 많은 고민 끝에 4·3평화공원을 함께 둘러보고,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것으로 제안을 하였습니다. 4·3평화공원은 많은 건축가들이 긴 시간에 걸쳐 토론과 담론을 거쳐 온 중요한 주제입니다. 또한 현상공모를 통해 다양한 제안이 있었던 장소이기 때문에 현재의 평화공원을 둘러보며 건축적, 공간적 고민과 생각을 나누는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다양한 시선, 사유 그리고 공간

4·3평화공원을 둘러보기 전, 문주 앞에서 위원들과 함께 자리하여 기존의 현상공모 대안을 간략히 살펴보고 당선안과 현재의 공원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공원을 답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설계제안을 제출한 많은 건축가들이 4·3이라는 역사의 한 부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 시선에 따라 공유하고자 하는 의미에 대해 어떠한 방향으로 사유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제안을 통해 어떻게 공간을 새로운 의미를 지닌 장소로 만들고자 하는지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추모란 무엇인가? 과거의 아픔을 다시 기리는 일이다.”

“4·3평화공원은 서술이 중단된 아픈사건을 다시 역사 앞에 드러내고 담담히 기록해 나가는 행위다.”

자연지형과 생태존중, 상징축의 설정, 자연환경의 연출, 시간고리의 형성, 시각경관의 조절

“4·3사건 희생자의 넋을 위령하고 유족 및 도민들의 아픈 상처를 달래는 평화 인권을 상징하는 공간 조성

제안된 계획안의 주안점을 살펴보면 서로 다른 시선으로 4·3을 바라보고 있으며, 서로 다른 공간을 상상하고 계획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출된 제안이 각각의 의미를 다양하게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4·3평화공원을 거닐며

연구위원들과 함게 문주를 시작으로 위령탑과 각명비, 위령제단과 위령광장, 위패봉안실, 행방불명인 표석과 평화의 숲, 비설의 순으로 답사를 진행하였습니다. 4·3평화공원의 대문을 상징하는 문주에서는 평화기념관의 전경과 위령탑과 귀천 위령광장과 위패봉안실에 이르는 하나의 강한 축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문주 앞의 오픈스페이스와 평화기념관의 2층까지 이어지는 브릿지를 통해 공간을 연결하여 입체적으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평화기념관과 위령탑을 연결하는 원형의 경사로를 따라 천천히 올라가면서 평화공원이 가지는 공간들을 새롭게 느낄 수 있습니다. 걸음을 이어나감에 따라 변화하는 높이와 경사로의 방향은 관람자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답사를 시작할 때부터 다시 돌아와 답사를 마칠 때까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제주의 경관과 평화기념관의 어울림, 위령탑과 각명비가 보여주는 깊이감 등 주변과의 관계가 끊임없이 변화하며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내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위령광장에 다다라 위령탑과 문주를 향해 서면 전체 공원의 공간들과 공간을 연결하는 강력한 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위령탑을 중심으로 원형의 형태로 이루어진 동선계획과 각명비를 비롯한 조형적 요소들은 공원의 다양한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반대방향으로 시선을 돌려 바라보면 넓은 위령광장과 그 뒤에 커다란 아치로 이루어진 위령제단, 그리고 위패봉안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 넓은 광장과 제단은 추념식을 비롯한 4·3을 추모하는 공간으로서 참배객들이 헌화, 분향, 묵념을 하며 희생자를 위로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주변을 식재 등을 통해 공간을 구분하고, 간결한 조형과 공간구성을 통해 희생자를 위로하고 참배할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하였다고 생각됩니다.

위패봉안실은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공간으로, 봉안실에 들어가는 간결한 공간에도 시퀀스가 숨어 있었습니다. 낮고 작은 입구를 지나면 높은 층고의 홀이 나타나고, 홀에는 추모의 비에 천창의 빛이 떨어지며 숙연한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이러한 건축적 계획은 봉안되어 있는 많은 위패들을 더욱 조용하고 담담하게 바라보면서 희생자를 기릴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위패봉안실에서 나와 동선을 따라 이동하면 나무 뒤로 행방불명인 표석이 눈에 들어옵니다. 당시 시신을 찾지 못한 행방불명인을 기리는 공간으로, 지역별로 구분되어 세워져 있습니다. 어두운 색의 표석이 규칙적으로 자리하여 더욱 무거운 분위기와 숙연함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평화의 숲을 따라 다시 문주에 다다를 무렵, 원형의 돌담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키 높이 정도의 원형 담을 조용히 따라 들어가다 보면 눈밭에서 희생된 모녀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조금씩 다른 각도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눈밭을 형상화한 차가운 대리석 위에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조각상은 그 자체로 많은 의미와 감정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변병생 모녀상(작품제목:비설) 앞에서 공간과 울림, 메시지의 전달과 장소성 등에 대해 위원들 간의 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평화공원을 돌아본 후 평화기념관을 함께 답사하려 하였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실외관람만 가능하여 너븐숭이 4·3기념관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너븐숭이 4·3기념관은 조천읍 북촌리에 위치한 작은 기념관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너븐숭이와 바로 인접하여 기념관이 위치하고 있어, 그 현장감을 긴밀하게 느낄 수 있고, 북촌리 중심의 사료와 자료의 전시를 통해 지역에서의 4·3사건을 4·3평화공원과는 다른 스케일과 공간의 구성을 통해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기념관 안에서는 영상 및 전시자료를 볼 수 있었고, 4·3평화공원의 건축물들과 일관적인 요소로 천창이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기념관에서 나오면 아이 무덤과 비석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무덤과 위령비 앞에서는 잠시 묵념하며 현장에서 역사의 일부분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4·3평화공원 그리고 너븐숭이 4·3 기념관

너븐숭이 4·3기념관을 함께 둘러본 후 조천 4·3길을 산책하며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4·3평화공원의 현상설계가 발표되었을 때의 뜨거운 논의가 있었던 만큼 위원들도 많은 의견들을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는 “4·3평화공원은 장소성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4·3평화공원의 위치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가 아니라는 측면에서 공원 조성의 의미가 반감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현재 40여 곳이 넘는 4·3 관련 유적지가 있음에도 이 곳에 가장 큰 의미를 가지는 공원이 자리하는 것에 대해 장소성 측면에서는 당위성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많은 자료의 아카이브와 행사의 수용, 희생자 위패를 모시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담아낼 수 있는 규모를 고려했을 때는 수용할 수 있는 장소의 선정이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너븐숭이 4·3기념관은 비교적 작은 규모의 기념관으로 전시된 컨텐츠 등은 비교적 적지만, 희생된 아이들의 돌무덤과 비석이 자리한 너븐숭이와 인접하고 있어 장소성과 의미를 가진다는 측면에서 비교하며 논의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현재의 4·3평화공원, 평화기념관은 이러한 역사적 장소성은 적은 편이지만, 가장 큰 규모의 기념관 안에 많은 자료가 아카이브되고, 많은 이들이 찾을 수 있는 위치와 규모로 다른 4·3기념관과 공간을 이어주는 하나의 중심적 역할을 하면서 문화적 장소성을 가진 곳이 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너븐숭이 4.3기념관 내외부와 아기무덤(오른쪽).
너븐숭이 4.3기념관 내외부와 아기무덤(오른쪽).

두 번째는 공원 내부의 다양한 공간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초 명림로의 건너편까지 예정되어있었던 평화공원의 규모가 조정되고, 마스터플랜 단계에서 추가된 프로그램들이 적용되면서 처음 계획의 주안점들이 흐려지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됩니다. 전체 축과 공간을 고려하여 계획안이 조정되어 문주와 진입 공간 등이 계획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또, 변병생 모녀상과 평화의 숲 등 각별한 메시지를 지닌 공간들이 긴밀히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강력한 축이 현재 공원의 계획 요소중 하나인데, 평화기념관과의 축이 일치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의견이 오갔습니다. 별도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보여 통합이 아쉽게 느껴진다는 의견과 축의 방향이 다르게 설정되어 평화공원 내에서 평화기념관의 다양한 모습을 느끼게 해준 의도이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보았습니다.

네 번째는 추모공간의 의미와 건축적 고민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전체 공원에서 주는 4·3사건과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안타까움의 울림만큼이나 변병생 모녀상에서 그날의 아픔과 슬픔이 더 많이 느껴졌다는 공통된 의견이 있었습니다. 또한 조각상까지의 시퀀스는 키 높이의 담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의 접근과 보일 듯 말 듯 한 시각적 처리, 벽에 조각된 자장가에 이르기 까지 규모는 작지만, 큰 울림을 안겨주었습니다.
 

마치며

코로나19로 인해 함께 답사하기로 한 날 제주 4·3평화기념관(전시실)은 함께 답사할 수 없었지만, 평화공원을 답사한 후 조천에 위치한 너븐숭이 4·3기념관을 추가로 답사하며 평화공원과는 또 다른 의미와 방식의 추모와 기념공간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3평화공원은 장소성이나 지역과의 연결성 등의 측면에서의 아쉬움이 있었고, 너븐숭이 4·3기념관과는 장소성과 상징성에 비해 전시 등에 있어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각 지역과 용도에 따라 다른 의미와 전달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4·3을 알리고 위로하는 공간들이 각각의 하나의 건물이나 공원으로서 독립된 추모공간이기보다 역사의 일부분을 알리고, 희생자를 추모할 수 있는 추모 네트워크의 일부분으로서 각 공간이 계획되고 운영될 수 있다면, 개별적 추모공간으로 있는 것보다 지역성과 개성을 가진 통합적 추모공간으로 더 큰 의미를 지니고 많은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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