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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래는 길이 아니다
올래는 길이 아니다
  • 미디어제주
  • 승인 2020.12.2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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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20년 7월호] 에세이
송일영 ㈜올래와정낭 건축사사무소

2007년 9월 8일 토요일.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시흥초등학교에서 올레 제1코스 개설식을 가졌다. 서명숙 이사장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개설식에 참석하였고, 개설 기념으로 1코스도 걸었다. 나도 아들과 함께 참석하였는데 한비야씨와 사진을 찍었다. 올레가 길로 변환된 첫날인 셈이다. 그 이후 제주는 올레길 열풍이 불었고 그 덕분으로 제주가 부흥했으며, 천만명이 넘은 관광객으로 득시글거리는 섬이 되었다.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문화를 만든 것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지만, 제주의 지속가능한 발전환경을 후퇴시켜 놓는 결과도 만들었다. 또 하나는 제주의 고유어인 올레(올래와 같이 쓰인다)가 전국적으로 많이 쓰이게 되었다. KT통신사, 대중가요, 음식점, 상점, 코미디영화 등등등 이루 셀 수 없다. 올레를 널리 알려준 것은 고맙지만, 본래의 뜻을 잘 이해시켜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올레’에 ‘길’을 붙여서 ‘올레길’로 만든 것이고, 올레의 본래 뜻도 왜곡되고 있는 점이다. 포털사이트에서 올레를 검색해보면 ‘길에서 집까지 연결된 아주 좁은 골목 비슷한 길’이라고 나온다. 올레는 길이라는 것이다. 한땐 아쉽다 못해 약이 올랐지만, 이젠 올레길이어도 좋고, 올래길이라고 해도 전혀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단 한가지. 앞으로 올래의 본래 뜻을 전 국민이 알고 전 포털사이트에 정확히 기록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 위해 지금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본래의 올래를 살려 보겠다.

그럼 올래가 길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물어오면 당연히 ‘올래는 내 땅이다’라고 대답한다. 건축법적인 용어로 도로가 아니고 대지(垈地)이다. 나는 ‘올레길’과 관련된 세미나에서 여러 번에 걸쳐 ‘올래는 길이 아니다’라고 방청석 발언을 해보았는데 결과적으로는 나만 바보(귀껏인가?뚜럼인가?)가 된 셈만 겪었다. 그럴 수 뿐이 없었다. 수많은 ‘올레 길’ 마니아들에게 ‘길이 아니다’라고 떠들어봐야 소용없는 짓임을 알게 되고 난 이후로는 ‘좀쫌(말없음의 제주어)’하거나 ‘속슴(말없음의 제주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것은 그래도 동료 건축사들에게 먼저 알리는 게 순서상 맞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좀쫌하지 못해서 뚜럼이라고 해도 나는 군말을 하지 않겠다.

올래(올레)가 시작되는 곳에는 정낭이 있다. 정낭을 양쪽 정주석(돌로 만든 것으로, 나무로 만든 정주목도 있었다)에 연결한 것으로 이 전부를 예전에는 ‘정’이라고 불렀는데 언제부터인가 지금은 ‘정낭’으로 불리고고 있다. 제주민초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깨끗한 마음의 생활철학은 정낭에서 태동하였기에 지금까지도 ‘정낭정신’으로 내려오고 있다.

우리집 영역에서 도로와 근접한 곳에 있는 게 바로 올래 입구에 설치된 게 정낭이다. 정낭을 열고 닫는 사람은 마을 사람도 아니고 길 가던 나그네도 아니다. 집주인이나 아이라도 우리식구 뿐이다. 절대 다른 식구는 열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 재산이기 때문이다. 우리 재산을 다른 사람이 건드릴 수 없는 것도 당연하고, 도민들 모두가 정낭정신을 알기 때문이다. 올래와 정낭은 우리 재산이지, 공유재산이거나 다른 사람의 재산이 아니다.

제주에서 길(구개음화 현상으로 질)은 한질, 가름질, 거릿질 뿐이다. 한질은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큰길이고, 가름질은 마을길이며, 거릿질은 골목길을 포함한 마을안길을 말한다.

길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과 물자의 교통을 위한 공적공간이지 사적인 공간이 아니다. 올래길이라는 단어(용어) 자체가 없는 것이다. 길이면 길이었지 올래는 길이 아니다. 올래는 길(도로)에서 마당까지 형성되어 바람을 다스리고, 외부인의 시야를 다스리고, 소와 말을 다스리려고 만든 사적인 공간이다. 내 땅이다. 올래는 반드시 유선형이어야 하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 올래가 없는 민가도 수두룩하다.

올래가 길이 아닌 이유를 지면 부족으로 제대로 밝히지 못했지만, 다음 기회에 자세히 설명할 때가 있을 것이다. 덧붙여서 현재의 지적도에 올래가 지목상 도(道)로 변화된 것도 많이 있는데, 앞으로 조사 연구하여 졸바로(똑바로의 제주어) 정리해야 하는 것도 또 하나의 일이다. 본디 올래를 알리는 일에 힘을 쏟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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