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19 12:01 (화)
줄탁동시
줄탁동시
  • 홍기확
  • 승인 2020.12.11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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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32>

천재는 재미있을까? 좋을까?

만화 <캘빈과 홉스>에서, 캘빈의 말에 답변이 있다.

“사람들은 최고의 천재가 되는 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천재가 세상의 온갖 바보들을 견뎌 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통 모른다니까.”

지금 생각해보니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학교에서 아이큐 검사를 했었던 듯싶다. 이상한 도형들과 숫자를 늘어놓고 규칙을 따지는 것이 전형적인 지금의 아이큐 검사였다.

초등학교 시절. 아이큐 검사. 그 후.

점수가 선생들에게 공유되었나 보다. 뜬금없이 당시 학교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아이와 함께 내가, 달랑 2명인 수학영재반에 속하게 되었다. 학교의 학대가 시작되었다. 나는 공부를 못할뿐더러 하기도 싫은데 얼굴도 모르는 선생이 나타나 수학을 가르쳤다. 지금 기억은 텅 빈 학교에서 그 친구와 둘이 수업을 들었던 괴로움뿐이다.

중학교 시절. 또 아이큐 검사를 했다.

역시 점수가 선생님들에게 공유되었나 보다. 공부는 학급에서 중간인데 자꾸 선생님들이 신기하게 나를 흘겨보며 이것저것을 요구했다. 시를 써봐라, 경진대회에 나가봐라, 바둑반에 가입해라 등등.

당시 선생님들이 나를 바라보며 그윽하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재능을 썩히지 말라.’와 ‘가슴에 백두산 호랑이를 품어라.’ 게다가 나의 창의적인(?) 답변을 듣기 위해 수업시간에 항상 나를 지목했다. 답변이 끝난 후 그들의 만족스러워하던 표정이 아직도 눈에 거슬린다.

그렇다. 공부 못하고 안 하는 동시다발적이고도 비극적인 천재의 탄생이다. 내 학창시절은 이렇게 선택을 할 수 없는 강요로 인해 낭비되었다. 공부에 흥미를 느꼈을 리가 없다. 갑(선생)의 횡포에 무럭무럭 창의성을 키울 을(학생)이 전형적인 갑질을 당한 것이다.

가끔 아이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 그것을 통해 뭐가 되고 싶은지를 얘기한다. 그리고 최근 몇 달간 변함이 없는 문답이 계속된다. 나름 주입식(?) 반복학습을 시키는 중이다.

“뭐가 되고 싶어?”

중학교 1학년 아이는 대답한다.

“도서관 사서”

나는 머릿속으로 소크라테스의 질문법을 상기하며 반문한다.

“‘하기’와 ‘되기’가 있어. 되기를 위해선 하기를 해야 하는 거지. 사서가 되고 싶으면, 문헌정보학을 공부하고, 사서자격증을 취득하는 게 먼저야. 즉, 사서라는 건 무언가를 한 다음에 되는 것, 즉 직업이란 것이지.

다시 물어볼까? 하고 싶은 게 뭔데? 예시로 아빠의 하기는 ‘세상에 똑똑한 소비자들을 최대한 많이 만든다.’와 ‘세계 최초로 발해 문자를 해독하기.’야. 그래서 사회적기업가와 역사학자가 되려고 해.”

아이는 이제야 제대로 이해하고 대답한다.

“좋은 책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 주고, 읽어주기도 할 거야. 그리고 아빠처럼 글을 써서 책을 내고, 다른 사람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주기도 할 거야. 직장인 밴드를 결성해서 음악도 할거고.”

아이가 최근 사서라는 ‘되기(직업)’와, 그와 관련된 ‘하기(문헌정보학과 가기)’을 확정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스스로 공부 계획을 세우더니, 공부방도 보내달라고 했다. 사실 그간 아내와 많이 고민했다. 아니 공부하라는 말을 참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말이 더 적합할 듯하다.

못난 부모인지 아이가 공부를 스스로 하기 전까지 방임을 했다. 소위 잡기(雜技)라고 하는 피아노, 드럼, 기타, 탁구, 독서, 게임 등 아이가 하고 싶은 건 모두 허용했다. 물론 꾸준히 직업탐색이나 공부와 관련한 책을 추천하거나, 다큐멘터리를 보여준 부모의 전략은 말할 수 없는 공공연한 비밀로 하자.

아이의 최근 모습에서 진정한 천재의 탄생을 느꼈다. 소설가 이상의 《날개》 첫 구절 ‘박제(剝製)가 되어버린 천재’와 같은 아빠가 아닌, 오래된 껍질을 깨고 나온 진정한 천재의 등장을 감지했다. 내가 잃었던 창의성과 잠재력이 아이에게 옮겨진 것 같았다. 아이라는 ‘천재’의 탄생을 위해, 세상의 수많은 ‘바보’들로부터 잘 보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병아리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오기 위하여 껍질 안에서 쪼는 것을 줄(啐)이라 한다. 반면 어미 닭이 밖에서 병아리를 도와 쪼아서 깨뜨리는 것을 탁(啄)이라 한다. 이것을 기가 막힌 타이밍에 동시에 해야 한다. 빠르면 미숙 병아리가, 느리면 숨 막힌 병아리는 죽고 만다. 어설프게 도와줘서는 안 되지만, 과하게 도와줘서도 안 된다.

아이는 껍질 안의 천재. 나는 아이가 껍질을 깰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껍질을 깨는 순간. 아이와 나는 환상의 콤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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