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을 감수할 수 있다면 시골을 추천합니다”
“불편을 감수할 수 있다면 시골을 추천합니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0.09.01 15: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형훈의 책가방] <13> 김충희 만화 ‘시골이 좋다고? 개뿔!’

제주어로 등장인물 이름 만들어 재미가득

불편하지만 사람다운 삶의 내용을 잘 풀어

자연의 삶은 낭만적인가 고민도 하게 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마음먹은 걸 모두 이룬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완벽한 사람일텐데, 그런 사람들의 삶은 재미있을까? 사실 우리의 삶은 오르내림이 있다. 잘 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잘 되지 않으면 울먹울먹하다가 해보자며 마음먹기도 하고, 그러다 잘되면 행복을 느낀다. 인생이란 그렇다.

뭔가 되지 않을 때, 우린 늘 꺼내는 단어가 있다. ‘작심삼일’이다. 그 단어는 최근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고려의 정책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하니, 수백년이 된 유산이다. 작심삼일은 반드시 ‘3일’을 말하지 않는다. 하고자 마음먹은 게 흐지부지되거나, 제대로 달성되지 않을 때 ‘작심삼일’이라고 부른다. 우리 조상들도 그랬으니, 작심삼일에 너무 힘 빠져 슬퍼할 일은 아니다.

어쨌든 핑계지만 ‘김형훈의 책가방’이 작심삼일에 빠졌다. 12회까지는 매주 한 차례(중간에 한번 빼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연재를 했다. 마음을 먹을 때 생성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의 힘을 빌려 12회를 달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렸다. 물론 핑계지만 ‘작심삼일’ 때문이다. 유능한 호르몬인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이 스트레스와의 싸움에서 밀려서 그리됐다. 매주 쓰려던 약속은 지키지 못하고, 무려 한달이나 미뤄졌다. 다시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을 불러본다.

이번에 만날 책은 글자 위주가 아닌, 그림 위주인 만화책이다. 김충희가 그린 <시골이 좋다고? 개뿔!>을 책가(冊架)에서 꺼냈다. 기억으로는 10년도 훨씬 전에 손에 넣었다. 20년쯤 되지 않았나? 직접 산 책은 아니다. 누군가 줬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책꽂이에 꽂힌 그 책을 다시 집었다. 출간연도를 보니 2015년이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지나지 않는다. 기억이 잘못됐나? 5년 밖에 안됐다면 내겐 신간에 해당하는데, 왜 아주, 무려 20년 전에 받은 책으로 기억에 남았을까. 알 수 없다. 기억은 한계가 있고, 기억은 언젠가는 잊는 것 아니던가.

“굳이 책 소개를 만화인가”라는 사람도 있겠다. 사람들은 만화를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지만, 내게 만화는 단순한 책장을 넘기는 이상의 것이 숨어 있다. 만화는 1970년대 초등학교를 다닌 이들에게 정보를 얻는 최고의 창구였다. 그때를 거슬러 올라가면 <소년중앙>과 <어깨동무>라는 아동월간잡지가 쌍벽을 이루며 초등학생을 유혹했다. 그 잡지엔 만화가 연재되고 있었고, 만화 이외에도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내 경우엔 초등학교 4학년 때 <소년중앙>을 구독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개인적인 자랑거리여서 여기선 빼겠다. 197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독고탁, 꺼벙이, 심술통 등 만화잡지의 주인공을 소환할 수도 있으리라. 나중엔 <보물섬>이라는 잡지가 기세를 잡기도 했지만, 동생 세대의 잡지로만 기억된다. 지금은 이런 만화 잡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며 책장을 넘기는 과거는 가고, 스마트폰을 스크롤하며 웹툰을 보는 그런 시대가 왔다.

<시골이 좋다고? 개뿔!>을 그린 김충희 작가는 제주를 잘 아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가 제주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설명은 책에 전혀 되어 있지 않지만, 책의 등장인물 이름이 그런 냄새를 풍긴다. 이 책을 볼 때 가장 유념하며 들여다볼 게 바로 등장인물의 이름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더 좋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등장인물 이름을 하나씩 나열해본다.

등장인물은 벨씨네 가족, 이웃들, 또 다른 이웃들, 아이들 등으로 나뉜다. 이름은 모두 제주어를 기준으로 지어졌다.

책의 등장인물. 제주어 이름이 이색적이다.
책의 등장인물.
책의 등장인물. 제주어 이름이 이색적이다.

만화의 주인공인 벨씨네 식구는 3명이다. 아빠 벨레기덩, 엄마 벨라진첵, 딸 벨뤼에. 이렇게 3명이다. 만화책에선 레기덩, 라진첵, 뤼에로 불린다. 마치 ‘벨’이 성씨인 것처럼. 이렇게 부르니 우리나라 사람 이름이 아닌 기분도 느껴진다. 벨씨네 식구 이름인 벨레기덩, 벨라진첵, 벨뤼에는 다른 뜻 같지만 비슷한 말이다. 보통과 다르거나 이상한 것을 표준어로 ‘별나다’라고 하는데, 그걸 제주어로 옮기면 ‘벨나다’가 된다. 게다가 제 잘난 체를 하는 이들에겐 “벨라진추룩~”이라거나 “벨레기똥~”이라고 한다. 아니다. 경음이 더 들어간다. 제주사람들은 혼자만 잘났다고 뽐내는 이들을 반가워하지 않기에 “뻴레기똥”이나 “뻴라진추룩”이라고 말한다. ‘뻴’에 강세를 주면서.

이웃 이름을 보자. 낭질, 아마떵, 무스거떵, 무뚱아피, 들라퀴, 몽캐, 게므로사, 패락쉬 등이다. 사람도 있지만 동물도 있고, 무생물도 여기에 들어 있다.

낭질은 나무(제주어로 ‘낭’)와 관련된 일(제주어로 ‘질’)을 하는 사람이다. 만화책에 등장하는 낭질은 나무로 뭔가 잘 만들어낸다. 아마떵은 갑자기 놀랄 때 내는 소리에서 빌려왔다고 김충희 작가는 밝히고 있다. 무스거떵은 ‘뭐(무슨, 무슨거)’와 ‘어떻게(어떵)’를 조합시켜 만든 이름이다. 좀 거칠다는 뜻의 제주어로 ‘패락지다’라는 말이 있는데 만화에 등장하는 ‘패락쉬’는 개 이름이다.

게므로사(원래는 ‘게무로사’라고 함)라는 이름의 등장인물도 있다. 비슷한 이름의 음료가 출시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흔적을 찾지 못하겠다. 게무로사는 ‘아무리 그렇게 한들’ 정도의 뜻이다. 여유가 느껴진다. 여유가 없고서야 함부로 “게무로사”라고 쓰지 못한다.

등장인물 무뚱아피도 있는데, 만화책에서는 죽음을 맞는 존재로 나온다. ‘무뚱’이라는 제주어는 문 바깥의 처마 밑 근처이며, 아피는 ‘앞에’를 말한다. 김충희 작가는 죽음을 바로 문앞에서 맞았다는 의미로 이름을 붙인 모양이다. 무뚱아피가 애지중지하는 물건이 있는데, 레기덩에게 준다. 무뚱아피가 남긴 건 작은 오토바이로, 이름을 ‘들라퀴’로 붙였다. 표준어 ‘날뛰다’를 제주어로 ‘들럭퀴다’라고 하는데, 들라퀴는 거기서 따왔다. 들라퀴라는 이름을 들어보면면, 무뚱아피가 레기덩에게 준 오토바이가 어떤 성격이며, 어떻게 날뛰었을지 짐작가지 않는가.

참. 몽캐도 있다. 미적거리거나 굼뜨게 행동하는 걸 ‘몽캐다’라고 부르는데, 책에 등장하는 ‘몽캐’는 그런 유형의 개 이름이다. 주변에 몽캐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겪어본 사람은 다 안다. 몽캐는 패락쉬라는 개와는 정반대된다.

아이들 이름으로 옐룬, 쭌쭌, 누니벨룽, 드르쌍 등이 나온다. 이것도 알아보자.

표준어 ‘얇다’는 제주어로 말하면 ‘얄루다’가 된다. ‘옐룬’은 그러니까 아주 가냘픈 아이가 되겠다. ‘쭌쭌’도 비슷하다. 살이 빠지고 뼈만 남았을 때 “쭌쭌하다”고 말하는데, ‘쭌쭌’ 역시 ‘옐룬’과 비슷한 체형의 아이로 보면 된다.

누니벨룽이라는 이름을 지닌 아이는 ‘눈이 큰 아이’이다. 제주어에 ‘벨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풀이하면 “속이 드러나게 연다”는 뜻이 된다. 누니벨룽 이름의 아이는 눈의 흰자가 훤히 드러날만큼 큰 눈을 지녔음을 김충희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드르쌍도 볼까. 가만히 놔둘 때 제주사람들은 “드리쌍 내불민~”이라는 표현을 잘 쓴다. 김충희 작가는 여기서 이름을 빌려와서 드르쌍이라는 이름의 아이를 탄생시켰다.

<시골이 좋다고? 개뿔!>에 등장하는 이름은 더 많다. 멘도롱, 누네훼싸, 오가노렌, 졸바르, 비두웻, 아오게, 콩꼼, 잔줄르, 아도록, 노고록, 엄부렁, 계매양, 나냥, 버슬멍 등이 있다. 이름 소개는 그치고, 책을 보면 이름에 대한 궁금증이 풀린다.

작가는 왜 책 이름에 시골을 붙였을까. 그것도 긍정적인 의미가 아닌, 마치 부정의 의미를. 그렇다고 김충희 작가가 시골에 대한 편견이나, 시골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담은 건 아니다. 도시 사람들이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그런 시골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시골은 불편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살 수 있다. 시골에 도시와 같은 집을 짓고 살면, 전원생활이라는 단어가 입에서 튀어나오겠지만 살아보지 않으면 그 삶을 모른다. 특히 제주도는 다른 지역에서 비해서 습도가 높다.

어릴 때 제주에 유배를 온 이건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선조 임금이고, 광해군은 삼촌이 된다. 하지만 아버지인 인성군이 역모혐의를 받으면서 귀양길에 올랐고, 제주생활을 해야 했다. 그는 제주생활을 담은 <제주풍토기>를 썼는데, 거기엔 제주살이의 어려움이 들어 있다.

“섬 중에서 두려운 것은 이무기보다 더한 것이 없고, 겨울이나 여름할 것 없이 곳곳마다 있다. 여름날 풀이 자라 음습할 때에는 내실과 집 처마, 상 밑과 자리 아래까지 뚫고 들어온다.” <이건의 ‘제주풍토기’ 중에서>

이건이 말한 이무기는 구렁이 같은데, 진짜 구렁이인지 아니면 도마뱀인지는 모르겠다. 제주도는 높은 습도로 인해 곤충이 활개를 친다. <시골이 좋다고? 개뿔!>을 몇 페이지 걷으면 바로 그 장면이 나온다. 지네, 바퀴벌레, 벌, 나방, 풍뎅이, 노래기, 돈벌레, 노린재, 거미, 개미, 쥐며느리…. 시골의 흔한 풍경이다. 문을 꼭꼭 닫고 있어도 이들은 들어온다. 도시 사람들이 그런 생명체를 마주하면 어떨지 궁금하다. 견디기는 쉽지 않다. 물론 견딜 수 있다면 제주 시골은 좋다. 내가 사는 곳은 도시이지만 도시 냄새가 나지 않는 시골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도마뱀을 비롯해서 앞에 나온 생명체들이 집안에 간혹 들어온다.

제주 시골은 유독 공동체가 심하다.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를 잘못 읽는 사람들은 공동체로 읽지 않고 ‘배타적’이라고 읽는다. 공동체는 울타리를 말한다. 울타리는 보이지 않는 규율이 있다. 울타리는 울타리 안과 밖을 다르게 본다. 울타리 밖에 있는 뭔가가 안으로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관심대상이 된다. 공동체를 ‘배타적’으로 읽는 사람들은 관심대상이 되길 싫어하고, 때문에 울타리를 지닌 공동체를 향해 “배타적이다~”고 소리치며 손가락질한다. 절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그렇게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이라면 <시골이 좋다고? 개뿔!>의 주인공인 레기덩의 행동을 보면 된다.

제주의 시골. 어떤 마을이든, 공동체에 들어오면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책에 나온 글을 옮겨보겠다.

“옆집 아마떵이 닭을 가져오면 다음에 윗집 게므로사가 고등어를 갖고 온다. 그다음 뒷집 오가노렌이 복숭아를, 누네훼싸는 묵은 김치를, 잔줄르는 젓갈, 콩꼼은 사과, 비두웻은 복분자효소, 계매양은 쿠키…. 누가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우리에게 막 퍼주고 있다. 정말 모를 일이다. 먹을 걸로 친해지려 하다니.”

정말 그렇다. 시골에 사는 제주도 사람들은 그렇게 산다. 어머니집 풍경이 그렇다. 옆집 삼춘들이 문을 열고 뭔가를 놓고 간다. “삼춘이수꽈~”라고 목청을 높이고. 사람이 있어도 문을 열고, 사람이 없어도 문을 연다. 외쳤는데 아무 소리 없으면 가지고 온 물건을 되가져 가지 않고, 놓고 나간다. ‘배타적’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제주도 사람들만의 공동체가 시골에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