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건 바다와 하늘, 그리고 바닷소리”
“변하지 않는 건 바다와 하늘, 그리고 바닷소리”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0.08.06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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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건축가다] <3> 건축가 조진희

 

기획 나는 제주건축가다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 건축에 대한 이야기와 제주라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기획은 모두 3개로 나눠진다. 건축가가 꼽은 땅에 대한 이야기, 건축가와 나누는 대담, 자신을 이끌어 준 건축 관련 책을 담는다. 대담은 문답식으로 싣는다.

이번에 소개할 건축가는 마음건축의 조진희 대표이다. 그는 제주시 애월읍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꼽은 땅은 애월 환해장성이다. 책은 중국 출신 건축학자 아모스 이 티아오 창의 <건축공간과 노자사상>이다. 책은 절판되었고, 조진희 대표가 절판된 책을 중고로 어렵게 구해서 기자에게 전해줬다.

 


# 애월 환해장성_과거와 현재의 조화

검은 현무암. 제주의 여러 상징 가운데 하나이다. 검다는 것은 어둠을 상징하지만, 또 다른 색을 만나면 어둠이 아닌 ‘최상의 어울림’이 된다. 바로 흰색이다. 어찌 보면 제주의 색은 무채색에 가깝다. 검거나 혹은 희거나. 바닷가의 검은 제주돌은 파도를 만나면 극대화된다. 그냥 파도여서는 안된다. 그야말로 폭풍처럼 몰아치는 파도는 제주돌을 만나 하얀 포말을 만들어낸다. 검정과 하양의 어울림이다. 무채색의 어울림은 겨울에도 볼 수 있다. 하얀 눈이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의 가장 남쪽이지만 눈이 많다. 북서풍을 탄 눈보라는 현무암에 콕콕 박힌다. 검정과 하양의 조화이다.

애월 환해장성. 그 주변은 늘 변한다. 자연처럼. 미디어제주
애월 환해장성. 그 주변은 늘 변한다. 자연처럼. ⓒ미디어제주

검은 현무암. 돌이 쌓이고 쌓이면 건축이 된다. 제주 해안 곳곳에서 만나는 풍경인 환해장성도 그런 건축행위의 흔적이다. 환해장성은 삼별초의 침입을 막으려고 세웠다는데, 그게 진실인지 알 수는 없다. 삼별초 이전에도 왜구를 막으려고 쌓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애월 바닷가. 애월항 서쪽 바닷가. 길진 않지만 환해장성이 보인다. 살짝 무너졌지만 환해장성이라는 원형을 잘 품고 있다. 풍경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여기 풍경도 바뀐다. 건축가 조진희의 마음을 흔든 곳은 애월 환해장성이다. 그가 땅으로서 애월 환해장성을 꼽은 이유는 ‘변할 수 있는 자연’에 있다. ‘자연’은 글자 자체가 ‘있는 그대로’이지만 자연이 있는 그대로 있어 본 적이 없다. 늘 변한다. 스스로도 변하지만 강제로 변하게 만들기도 한다. 강제의 힘을 지닌 이들은 인간이라고 불리는 이들 뿐이긴 하지만.

건축가 조진희는 건축사사무소 이름을 ‘마음건축’으로 정했다. 마음은 정지하지 않고 늘 움직인다. 마음이라는 말을 들으면 차분해진다. 마음은 늘 변하는 것이지만 느려야 제 멋이다. 마음건축이라고 이름을 단 이유도, 애월 환해장성을 꼽은 이유도 그 때문인가보다.

환해장성은 경계이다. 정주민과 침입자를 구분한다. 바다와 뭍을 가른다. 그럼에도 그 경계는 절대선이 아니다. 환해장성은 무너지기도 하고, 세우기도 한다. 그런 모습은 늘 봐왔다. 지금까지는 환해장성이 늘 졌다. 무너지면 끝이어서 그렇다.

마음건축의 조진희는 해안을 특히 좋아한다. 그건 아마도 자연에 꽂혀서 그런 게 아닐까. 자연은 늘 그대로 있지 못한다. 변화와 함께이다. 건축가 조진희는 자연과 변화를 다음처럼 말했다.

“계속 변한다. 변하는데 제가 경험한 시간에서 검은돌과 초록빛, 바다, 하늘, 바닷소리, 그런 것들은 한결같아서 좋다.”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는 게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다. 제주 바닷가에 흔한 흉물은 양식장 건물이다. 해안 곳곳에 웅크리고 있다. 애월 환해장성 앞에도 양식장이 있었지만 사라졌다. 자연이 다시 살아났다. 초록풀은 더 많아졌다. 그런데 자연은 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체불명의 건축물이 다시 애월 환해장성 인근에 등장했다. 모든 게 그대로 있지는 않다. 어떻게 하면 더 자연과 어울리는 그런 건축행위를 하느냐가 문제이다. 단지 변하지 않는 건 바다와 하늘, 검은돌과 거기에 부딪혀서 나는 소리가 아닌가.

 

[대담] 건축가 조진희를 만나다

 

마음건축 조진희 대표가 <건축공간과 노자사상>이라는 책을 보내줬다.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판매되지 않는, ‘절판된 책이다. 다행히 중고로 매물이 나왔다. 우선 그 이야기부터 풀어갔다. 조진희 대표가 좋아하는 건축가는 빛의 건축가로 불리는 루이스 칸이다.
 

노자는 자연과의 관계, 이를테면 자연으로 돌아가라’, 그런 느낌을 많이 준다. 그런데 <건축공간과 노자사상>이라는 책을 보니, 노자는 실험정신은 물론 실제적이라는 게 눈에 띈다. 아무래도 책을 쓴 사람이 중국사람이어서 해석을 잘했는지. 우리가 잘 아는 유가사상으로 불리는 공자와 맹자는 좀 더 지배적이고, 노자와 장자는 민주적 개념이 많다는 점도 알게 됐다. 어떻게 이 책을 접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대학 때 교수님이 다른 학우랑 읽어볼 기회를 줬다. 색다르게 다가왔다. 우리는 주로 건축공부를 서양 위주로 하는데, 동양사람이 공간에 대해 이렇게 깊이 있게 정리한 책이 있구나, 신선했다. 20대에 이 책을 접할 때 내용이 어려웠는제, 제목도 좋았다. 지금도 이 책은 물론 어렵다. 쉬운 내용은 아니지만 동양인이 바라본 건축, 동양인의 정서로 바라봐서인지 서양 건축가들이 얘기하는 것보다 더 쉽게 다가온 측면도 있다.
 

건축은 눈에 보이는데, 책에서 말하는 건 눈에 보이는 건축만을 이야기한 건 아니던데.

그 점이 좋은 것 같다. 서양건축도 비어있는 공간은 있지만 동양건축과는 다르다.

기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축가 조진희. ⓒ미디어제주
기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축가 조진희. ⓒ미디어제주

그래서 루이스 칸을 좋아하나.

그런 것 같다.

 

루이스 칸은 건축의 본질에 대해 탐구한 인물인데, 건축의 본질은 뭐라고 보나.

사람이 사는 공간이 있고, 장소가 있다. 거기에 사는 사람도 있고, 거길 지나가거나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사는 사람이나 바라보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혹은 마음적으로 쉴 수 있고, 그런 걸 만들어주는 게 건축이 아닌가.

 

편안한 공간으로 보면 되나?

그런 것에 가깝다.

 

애월 해안도로에 있는 환해장성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그 땅을 좋아하는 이유라도 있나. (애월 환해장성은 있는 그대로 놔두고 보존을 하고 있다. 반면 화북 환해장성은 잘 보존된 곳을 새로 만들면서 파괴되는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애월에 살게 된 건 2년 반이다. 그 전에는 애월 환해장성에 가본 기억은 없다. 애월에 와서야 가보게 됐다. 집에서 걸어가면 3분에서 5분 사이에 다다른다. 자주는 아니지만 아침에 가기도 한다. 주로 산책을 할 때 들른다. 주말에 가족이랑 멀리 가지 못하면 산책삼아 가기도 한다. 환해장성은 길지 않다. 걷다 보면 바닥에 검은 돌이 있고, 이름 모를 풀이 있다. 선인장도 있고, 선인장꽃을 만나기도 한다. 바다쪽으로도 검은색 바위가 있고, 바다가 있고, 하늘이 있다. 거기엔 소리도 있다. 파도소리다. 계절에 상관없이 검고, 초록빛을 띤 풀이 있어 좋다.

애월에 정착할 때쯤은 양식장이 거의 문을 닫는 시점이었다. (당시엔 애월 환해장성 일대에 양식장이 들어서 있었다.) 양식장 있는 걸 눈으로 봤고, 철거되면서 수조도 보였다. 이색적이었다. 그러다 어느날 가보니, 하부 콘크리트 구조물도 철거되고 흙만 남았다.

환해장성 구간은 차량이 오가지 못한다. 시설물이 없어지니, 그게 없을 때 환해장성을 본 분들은 좋아하더라. 그런데 최근에 또 바뀌었다. 차가 다니는 곳에 구조물 하나가 생겼다. (실제 보면 엉망인 건축물이다.) 계속 변한다. 변하긴 하지만 내가 경험한 시간속에서 검은돌과 초록빛, 바다, 하늘 바닷소리. 그런 것들은 한결 같아서 좋다.

 

제주라는 땅은 어떤 가치가 있고, 어떤 점에서 중요한가.

제주, 어떻게 보면 도심이 있고 외곽지역이 있다. 도심은 육지랑 비슷하다. 사람이 사는 곳은 도시든 외곽이든, 육지든 제주든 다 소중하다고 본다. 제주도가 비교적 특별하다고 보는 건 자연환경이다. 국내 뿐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좋은 자연환경이다. 좋은 속성을 무시할 수 없다. 중요한 가치이고. 그게 제주의 특별함이다.

 

애월에서 활동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 설계사무소는 시내에 있다. 도심에 살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한적한 곳에서 건축행위 하고 싶어서다.

 

난 화북에 사는 사람이다. 내가 화북사람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아파트 얘기만 한다. 난 아파트가 있는 삼화지구에 살지 않고, 애월 여기보다 건물도 더 낮은 곳에 산다. 그런 점에서 애월도 도시화가 된 것 아닌가. 읍면지역 도시화를 보는 시각이 궁금하다. 시내처럼 도심 확장이 좋은지, 그 지역에 맞는 특성을 살리는 게 좋은가. 그 특성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

도시화는 진행중이다. 계속 변하게 마련이다. 외지인들이 들어와서 건물을 세우기도 하고, 기존 사시던 분들도 집을 새로 짓거나 경제활동을 위해 건물을 짓는다. 어느 게 좋고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색하다. 환경이 중요하니까 여기에 짓지 말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게 현실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자연환경이 좋은 이곳에 어떻게 지어야 하느냐는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일이다.

 

애월의 환경 자체가 제주시 동지역인 노형과 연동이랑 전혀 다르다. 똑같은 건축물을 옮겨올 수도 없다. 건축주가 노형의 어떤 건축물 마음에 든다고 해서 주문을 하면 그대로 가져와서 설계를 해줄지, 아니면 환경에 맞추는 게 맞다면 건축주를 설득해야 하는데.

사례가 있다. 2년 전 쯤 애월리에 근린생활시설을 설계했다. 기존에 경량철골조 건물이었는데 태풍으로 망가졌다. 바다도 보이는 건물이어서 네모박스가 아니라 층이 올라갈수록 바닷가 쪽으로 여유공간을 줬다. 건축주도 만족했다. 건축심의도 끝나고 허가가 났다. 그런데 설계를 바꿔달란다. 착공을 하지 못했다. 그걸 최근에 다시 하게 됐다. 2층 테라스를 없애달라고 하더라. 네모박스가 좋다면서. 그래서 이런 말을 했다. 노형동에 설계를 한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여기는 바다도 보이고 항구도 옆에 있고, 관광객들이 오는 곳이다. 스무 번에서 서른 번은 얘기를 하고 설득을 했다. 그러나 기한내 착공신고를 하지 않으면 허가신고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어쩔 수 없었다. 속상하다.

 

제주도라는 좋은 자연을 가만히 품으로 받아들이는 게 세상, 그 어디에서도 쉽지 않을텐데.

그분들은 예전부터 이 동네에 살았다. 마당 있는 집에 살고, 바다는 늘 보였다. 아마도 그런 것에 대한 소중함을 비교적 잘 느끼지 못한 건 아닌지.

 

지역 건축가 역할에 대해 말해보자. ‘나는 제주건축가다기획으로 소개가 된다. 왜 지역에 살고 있는 건축가들이 역할을 해야 하고, 다른 지역 건축가들과는 어떤 차별성을 지녀야 하는가.

실제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그 지역을 보면서 느끼고 잘 알고 있다. 그 땅과 주변에 대한 이해를 좀 더 많이 하는 사람이다. 내가 사는 애월은 자연환경은 좋지만 점점 도시화 되고 있다. 도시화가 좋든, 나쁘든 그걸 막을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지만 여기는 내 딸과 아들이 오가는 곳이고, 매일 보는 땅이기에 책임감이 더 작용된다.

건축가 조진희의 작업실은 한라산도 보이고, 애월 바다도 보인다. ⓒ미디어제주
건축가 조진희의 작업실은 한라산도 보이고, 애월 바다도 보인다. ⓒ미디어제주

건축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이며, 어떤 과정을 거쳤나.

고교 때 진로 선택할 상황이었는데, 가장 하고 싶은 건 영화였다.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한옥 목수였다. 영화랑 건축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가 건축을 하게 됐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영화를 하게 되면 조감독뿐 아니겠는가. (그의 성이 조씨여서 감독이 되지 못한다는 농담이었다.)

건축은 마흔까지만 하고, 이후엔 영화를 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건축사사무소를 마흔살에 차렸다. 그래도 영화를 잊지 못해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건축설계도 수십번 고치는데, 시나리오도 수십번 퇴고를 해야 한다. 시나리오를 써놓고 책으로 완성하자고 했는데, 마흔에 초고를 쓰고 아직 열어보지 못했다.

 

앞서도 루이스 칸 얘기를 했는데, 제일 좋아하는 이유는 뭔가.

대학 1학년 때 건축가들 관련 책을 사서 봤는데, 루이스 칸은 다른 건축가보다 철학적이었다. 그 이야기에 끌렸다. 그의 건축물은 특별하게 보이지 않지만, 덜 화려하고 꾸밈이 없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 중점을 둬서 그런 게 아닐까. 루이스 칸도 <건축공간과 노자사상>이라는 책을 보지 않았을까. (조진희 대표는 그러면서 루이스 칸에 대한 책인 <침묵과 빛>을 들어보였다.)

 

- <침묵과 빛>은 노자와도 맥락이 닿는 듯하다. 그의 작품인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을 한번 보고 싶은데, 잘 모르겠지만 동양적 느낌이 있을 것 같다.

루이스 칸의 작품인 국회의사당은 사회 초년 때 비디오로 봤다. 다큐멘터리인 비디오였다. (그러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르 꼬르뷔지에로 연결됐다.) 2003년 배낭여행을 떠나게 됐다. 거기서 르 꼬르뷔지에 건축물을 보게 됐다. 그때 이후로 지갑속에 르 꼬르뷔지에 얼굴이 담겨 있는 스위스 화폐를 넣고 다닌다. 한 나라의 화폐에 건축가가 들어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제주에서 건축활동을 하다 보니 아쉽다거나 개선할 부분이라면.

아쉬운 점? 개선할 점? 앞서 얘기랑 비슷한데, 건축주의 요구는 다양하다. 제주도라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생활한 분들 가운데 너무 익숙해서 소중함을 덜 생각하곤 한다. 그게 좀 아쉽다. 설득을 해야 하는 게 내 몫인데, 잘 될 때도 있지만 그러지 못할 때가 아쉽다. 그런 점을 설득할 내 역량을 키워야겠다.

 

제주도내 건축주들의 요구는 다른 지역과 다른가.

애월에 있다 보니 사무실에 찾아 오시는 분들의 절반은 육지분들이다. 그들을 보면 자연환경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어한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그렇다.

 

티아오 창 <건축공간과 노자사상>

근대건축은 서양으로 통한다. 다들 그렇게 알고 있다. 정말 그럴까? 어쩌면 동양철학이 근대 서양건축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가. 중국 출신의 건축학자 ‘아모스 이 티아오 창’(1916~1987, 여기서는 ‘창’이라고 줄여 쓴다)의 저서 <건축공간과 노자사상>(1956년 초판 발행)을 들여다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아쉽게도 이 책의 한글판 번역본은 절판이다.

노자사상에 건축이 있을까? 책을 보기 전 내게 ‘노자’는 ‘도가사상’으로 연결돼 있을 뿐이었다. 유교, 불교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온 사상이지만 권력의 중심에 위치한 사상은 아니었다. 설마 거기에 건축이 있을까. 책을 읽어보면 궁금증은 풀린다. 건축공간이란, 눈에 보이는 외형에 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책 머리말에서 “이 책은 고대문화의 지혜가 빛을 발하고 있다. 건축에 있어서 무형적 요소들이 갖고 있는 생명력의 비밀을 나타내는 데 독특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창은 책에서 무형적인 것을 ‘만질 수 없는(intangible)’ 것으로, “생명의 잠재력을 공급하는 영원한 저수지와 같이 존재한다”고 쓰고 있다. 그래서 창은 비어있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한다. ‘보이드(void)’, 즉 비어있는 것은 언제나 채워질 가능성을 말한다. 없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공(空)이 무(無)가 아닌 것과 같다. 책은 좀 어렵지만 음미하면서 읽으면 노자에 담긴 건축사상을 알게 되고, 서양건축에 스며든 동양사상도 읽게 된다.

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에는 ‘레스 이즈 모어(less is more)’를 강조했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간결함의 아름다움’이나 ‘비움이 낫다’, ‘적을수록 풍부하다’ 정도로 표현이 된다. <건축공간과 노자사상>을 읽을 때는 몰랐는데, 책을 읽고 나니, ‘레스 이즈 모어’나 ‘공(空)’이나 다를 게 없다.

여기서 공간을 생각해보자. 창은 하나의 물체는 한정적이고 죽은 것과 같다고 했다. 그렇지만 공간은 서로 오가며 길이를 측정할 수 없다고 했다. 비어있는 공간은 건축이라는 고정체와 이어지며 여러 형태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한다. 좀 어려울 수 있지만, 부족한 게 뭔가를 얻게 만든다. 창은 노자의 <도덕경> 22장에 나오는 “소즉득(少則得)”을 통해 배우라고 한다. ‘소즉득’은 ‘적은 게 곧 얻는 것이다’는 말이다. ‘레스 이즈 모어’랑 다를 게 없다.

풍경은 도심과 그 바깥이 다르다. 밀집된 도시의 건축물보다 자연공간에 있는 건축물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공간을 이야기한 창이 책을 통해 건축가에게 던진 말이 있다.

“검은 색으로 넓게 칠해진 흰 종이조각에서, 더 잘 보이는 것은 칠하지 않고 빈약하게 남겨져 있는 외곽의 흰 부분이라는 것을 건축가들은 명심해야 한다.”

미니멀리즘. 채우기보다는 비워야 가능하다. 루이스 칸의 건축이나 안도 다다오의 건축, 현대건축에 족적을 남긴 이들의 작품엔 보이지 않는 공간에 더 심혈을 기울인다. 그들이 실제 노자의 사상이나 <도덕경>을 탐독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어쩌면 우리는 건축행위를 하며 확장 가능한 침묵의 공간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책이 그렇게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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