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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어가 내 마음에 ‘쏙’ 소리 내며 들어오네요”
“제주어가 내 마음에 ‘쏙’ 소리 내며 들어오네요”
  • 김형훈
  • 승인 2020.06.16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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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훈의 책가방] <7> 현택훈의 ‘제주어 마음사전’
61개 제주어를 시를 읽듯 맛깔난 이야기로 풀어내

살아있음은 뭘로 알까. 숨을 쉰다? 맞긴 한데 숨만 쉰다면 ‘목숨부지’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진정 살아있다면 이해를 하는 능력에다, 그걸 표현하는 일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뇌에서 생각을 하고, 입에서 뱉어내는 일이 살아있음의 증거이다. 그래서 말은 더더욱 중요하다. 호모 사피엔스가 쓰던 단순한 언어는 차츰 복잡해지고, 문화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던가.

우리가 쓰는 말은 가벼이 볼 수 없다. 지역별로 숱한 언어가 존재하는데, 그 이유는 뭘까. 종족별로, 지역별로 쓰는 말이 다른 건 서로의 문화가 동질하지 않음을 말한다. 곧 말은 특정 지역공동체를 드러내는 정체성이다.

말은 ‘나’라는 존재를 제대로 드러내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차츰 사라지는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제주어도 그중에 하나이다. 제주어가 언어인가에 대한 논란은 많다. 팔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은, 그들이 쓰는 말도 하나의 언어로 불러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주어를 제외한 다른 사투리를 향해서는 ‘언어’라는 이름을 들어보지는 못했다. 어쨌거나 요즘은 제주방언이나 제주사투리보다는 제주어가 더 친숙한 사회적 언어가 됐음은 분명하다.

말이 나온 김에 유네스코를 빌어 제주어를 이야기해볼까 한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오늘날 사용되는 6000개의 언어 가운데 절반은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한다. 유네스코는 이를 두고 “피할 수 없고, 되돌릴 수도 없다”고 2011년 펴낸 <위기에 처한 세계 언어 지도책>에서 설명한다. 유네스코는 언어에 대한 강렬한 애착을 가지고 있으며, 사라지는 언어를 향해 ‘다양성’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언어는 우리 문화의 매개체, 집단 기억력, 가치관이다. 그것들은 우리 정체성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이며, 우리의 다양성과 살아있는 유산의 구성 요소다.”
(유네스코 발간 ‘위기에 처한 세계 언어 지도책’ 중에서)

유네스코가 분류한 언어 6개 등급. 제주어는 '심각한 소멸위기' 언어에 해당한다.
유네스코가 분류한 언어 6개 등급. 제주어는 '심각한 소멸위기'(빨간색) 언어에 해당한다.

유네스코는 지난 2003년 세계 언어의 위험도를 모두 6개 등급으로 설정했다. 안전, 취약, 소멸위기(3개 등급), 소멸 등으로 구분했다. 6등급 가운데 1950년대 이후 사라진 ‘소멸’ 언어는 4%에 해당하며, ‘소멸위기’ 언어는 30%로 집계했다. 제주어는 소멸위기 3개 등급 가운데서도 가장 위험한 등급(소멸 바로 전단계)인 ‘심각한 소멸위기 언어’로 분류됐다. ‘심각한 소멸위기’는 “현재 할아버지 세대가 쓰는 언어이지만 그들이 자주 사용하지도 않고 부분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로 적시했다.

그러고 보면 유네스코의 평가가 틀리진 않다. 제주사람들에게 제주어를 쓰냐고 묻는다면 “네”라고 곧바로 답할 사람은 많지 않다. 일상적인 대화를 제주어로 하는 이들을 만나기란 무척 힘들다. 어르신 세대들도 부분적으로 제주어를 쓸 뿐이다. 어르신 세대의 자식들인 우리들도 매한가지이다. 단어 일부, 혹은 어미 일부에 제주어를 붙이는 게 전부이다. 그러니 유네스코가 제주어를 ‘소멸위기의 언어’로 지정하지 않았겠는가.

유네스코 홈페이지에서 제주어를 확인해보면 '심각한 소멸위기'(빨간색)임을 확인할 수 있다.
유네스코 홈페이지에서 제주어를 확인해보면 '심각한 소멸위기'(빨간색)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은 제주어를 조선시대 사람들이 쓰던 언어라고 한다. 이유는 사라진 훈민정음의 몇몇 음가들이 남아 있어서다. 맞는 말이지만 조선시대 한반도를 살던 사람들이 쓰던 말이 제주어는 아니다. 지역별로 고유의 사투리가 존재했고, 제주어는 유독 팔도의 사투리와 달랐다. 때문에 현존 제주어를 ‘15세기 언어’라든지, ‘한국의 예전 언어’라고 부르는 일은 일부만 보고서 하는 말이다. 그건 역사가 말해준다.

제주에 왔던 이들은 제주어에 대한 감상을 남기곤 했다. 김정의 <제주풍토록>, 임제의 <남명소승>, 이형상의 <남환박물> 등에 제주어에 대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 내용은 비슷하다. 대게는 중종 15년(1520) 제주에 유배와서 기록을 남긴 김정의 <제주풍토록>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걸 참조해서인지 제주어에 대한 감상은 “말은 가늘고 높다. 많은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고 요약된다.

제주어가 한반도 본토에서 쓰는 언어와 달랐다는 점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밝히고 있다. 성종 8년(1477), 경상도 관찰사 등이 제주도를 벗어나서 현재의 경상남도 서부 지역에 머물던 사람들에 대한 내용을 보고한 게 있다.

도내의 사천과 고성, 진주 지방에 제주의 두독야지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처음엔 2~3척의 배를 가지고 오더니, 이젠 32척이나 되었다. 강 기슭에 의지해 집을 지었는데, 의복은 왜인과 같으나 언어는 왜말도 아니고, 중국말도 아니다. 항상 고기를 낚고 미역을 따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8년 8월 5일 기해 1번째 기사)

알아듣기 힘든 제주어. <조선왕조실록>은 제주사람이 쓰는 말은 일본도, 중국사람의 말도 아니라고 했다. <남환박물>을 남긴 이형상에겐 더 독특했던 모양이다. 그는 <남환박물>에 “제주사람이 말하는 걸 들어보니, 시끄럽게 뒤섞여 들려서 마치 일본 사람의 말과 거의 비슷했다. 문자는 섞어 써서 중국의 말과 유사하다. 시골 여자들이 관에 고소하는 것은 재두루미 소리 같기도 하고, 바늘로 찌르는 소리 같기도 하여 더욱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반드시 서리로 하여금 번역하게 한 뒤에야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며 제주어를 바라본 입장을 전했다.

같은 나라 사람임에도 번역을 하며 듣던 언어. 누군가에겐 바늘로 찌르는 듯 들리겠지만, 누군가에겐 프랑스어를 듣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걸 아는가. 사실 제주어는 부드럽지만 화자(話者)들이 나긋나긋하지 못해 바늘로 찌르는 소리로 들렸을 뿐이다. 제주어는 무뚝뚝하지 않은데, 사람들이 무뚝뚝했을 뿐이다. 몸속에 수 천년동안 밴 DNA가 그런 걸 어쩌리.

여기서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제주어를 먼저 배우면 팔도의 언어가 쉽게 체득된다는 사실을. <조선왕조실록>에도 제주사람들은 다른 지역 말을 잘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몇차례 만난 일본인 학자 이지치 노리코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이지치 교수는 해녀 연구를 해서인지 제주어를 잘 안다. 그는 <일본인 학자가 본 제주인의 삶>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한국어를 배우기 힘들어했던 이지치 교수는 행원리 등지에서 제주어를 익히며 살았는데 6개월만에 제주어를 알아들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렇게 힘들던 한국어도 귀에 속속 들어오더란 내용이다.

아쉽게도 제주어를 써야 할 사람들은 제주사람이다. 제주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답은 나와 있다. 유네스코가 정한 6등급 언어 가운데 1950년대 이후에 사라진 ‘소멸 언어’가 되고 만다. 어쩌면 우리는 박물관에 있어야 할 언어를 쓰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귀하게 여기며 사용할 필요성이 생긴다. 제주어를 쉽게 접하는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 추천을 한다면 현택훈 시인의 <제주어 마음사전>이다. 제주어를 지키려면 어원이 어떻고, 어근은 뭔지, 글자 하나하나를 뜯어서 해석하는 일도 필요할테지만 중요한 건 사용되어야만 한다. 그러려면 제주어를 접하게 만들어줘야 하는데 <제주어 마음사전>이 제격이다.

시인이어서 그런지, 책은 시를 만나는 느낌이다. 저자는 글자를 하나하나 분석하려 들지 않는다. 그의 경험을 통해, 일상에서 마주하는 이야기 속에 제주어를 풀어놓았다. <제주어 마음사전>에 담긴 제주어는 모두 61개이다. 즉 61개의 이야기가 있다.

육지에 사는 사람들. 제주사람들은 남을 그렇게 부른다. 때문에 제주사람들은 배타적이라는 곡해를 받는다. 배타성이라는 건 제주사람들이 지켜낸 자기확립으로 봐주어야지, 비난의 대상은 아니다. 어쩌면 육지사람의 그런 고정관념 때문에 오해를 받는 단어 하나가 있다. 바로 ‘궨당’이다. 실은 한자어 ‘권당(眷黨)’에서 온 말이 ‘궨당’이 되었다. 한자어가 궨당 뿐이던가. 고구마를 뜻하는 ‘감저(甘藷)’도 그렇다. 제사가 끝나면 나눠주는 ‘식게테물’도 한자에서 왔다는 사실.

어쨌거나 제주사람들은 배타적이라고 오해를 받는 입장이고, ‘궨당’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궨당 문화가 어떻고…”라며 마치 청산의 대상쯤 여긴다. 정말 몹쓸 정도의 것이 궨당인가. 아니다. 육지사람들이 제주사람을 배타적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오해를 받는 단어일 뿐이다. 제주사람들은 궨당 때문에 살아왔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고. 현택훈 시인은 실제 궨당을 만난 이야기를 풀며, 역시 제주사람은 궨당임을 말한다. 시인은 어느날 서귀포로 급히 갈 일이 있었는데, 총알택시(?)가 필요했다. 택시를 불렀더니 궨당이었다. 문중 벌초 때 만나는 어르신이었다. 요금은 반만 받았다. 궨당이니까.

<제주어 마음사전>은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그러라고 쓴 글이다. 글자 그대로를 바라보지 말고, 마음을 활짝 열어둔 상태로 놔두어야 제주어가 속속 들어온다. 다만 학자들이 말하는 제주어를 살짝 비껴간 것도 있긴 하다. 그래서 글자 그대로에 파묻히지 말고, 이야기를 음미하면 좋다. 제주어를 몸에 배게 만들려면 이야기로 접하는 것보다 좋을 순 없다.

61개 이야기 중에 ‘아시아시날(그 전의 전날)’ 이야기로 끝을 맺을까 한다.

그리움은 아시아시날에 옹송그리고 있다. 꿈에 할아버지가 보였다. 거의 십 년 만에 나타난 것 같다. 나는 너무 반가워 할아버지를 불렀지만 할아버지는 너무 멀리 있었다. 할아버지는 뒷모습을 보이며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달렸다. 가까이 가서 할아버지의 어깨를 잡았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렸는데, 얼굴이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현택훈의 ‘제주어 마음사전’ 중에서)

아쉬워서 하나만 덧붙인다. 우린 기억해야 한다. 내 주변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어디에 존재하면 살고 있는지를. 루마니아 출신 프랑스 철학자인 에밀 시오랑이 그러지 않았던가. “사람은 한 국가에 사는 게 아니라, 하나의 언어에 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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