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말한다 “미래는 공동체를 챙겨야 합니다”
코로나19가 말한다 “미래는 공동체를 챙겨야 합니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0.05.12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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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훈의 책가방] <2> 노경실의 ‘바이러스를 막아라’

바이러스 확산이 가져다 준 혐오의 문제점은 뭘까
나와 다르다고 혐오 조장하는 건 공동체 파괴행위
“없는 자를 위하는 우리 조상들의 관점 배워야 해”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예전 바이러스의 대표격은 ‘마마’라고 불리는 두창이었다. ‘손님’이라고도 불린 천연두가 바로 두창이다. 지금은 사라졌다. 예방접종을 통해 관련 바이러스를 근절시킨 사례로 꼽힌다.

마마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두창신’으로 신격화될 정도였다. 그만큼 무서웠기에 사람들은 마마를 신으로 모시고, 굿을 해서라도 살아남으려고 애썼다. 그 때문인지 마마가 유행하면 평상시 하던 일을 멈추곤 했다. 어숙권이 쓴 <패관잡기>를 들여다보면 금기사항이 꽤 된다.

“우리나라의 풍속에는 마마귀신(두창신)을 중히 여겨 제사, 초상집 출입, 잔치, 성행위 등이 금기된다. 또한 기름과 꿀 냄새, 비린내와 노린내, 더러운 냄새 등도 금기된다. (중략) 어쩌다가 금기를 깨면 죽고, 또 위태롭게 되는 자가 열에 6~7명은 된다.”

조선시대는 조상에 제를 올리는 일이 무척 중요했다. 그럼에도 마마가 휩쓸면 제사도 지내지 않고, 어떤 이들은 제사를 아예 폐지하기도 했다고 <패관잡기>는 기록하고 있다. 유학을 하는 선비계층도 제사를 없앨 정도였다.

마마바이러스 공포는 조선 조정에도 영향을 미친 건 물론이다. 세종은 왕자가 마마에 걸리자 업무를 중단하기도 했다.

“정사 보는 것을 정지하고, 궁궐 내에서는 술과 고기 사용을 금지시켰다. 이는 왕자에게 창진(마마)이 발생했기 때문이다.”<세종실록 23권, 세종 6년(1424) 1월 6일 계미 6번째 기사>

마마는 강력한 전염성을 지녔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급속도로 번졌다. <패관잡기>와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금기사항은 사람과 사람간의 접촉을 최대한 줄임으로써 마마바이러스의 확산을 저지시키려 했던 그들만의 의지였다. 2020년을 살고 있는 세계인들이 코로나19에 위협을 느끼는 이유와 같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제사를 금지하고, 사람들이 모이는 잔치, 심지어는 성행위도 하지 말라고 했던 이유는 강력한 전파력 때문이었다. 우리가 지금 행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랑 다를 바 없다. 어쩌면 ‘사회적 거리두기’보다 더 강한 사회적 약속이 조선시대에도 있었던 셈이다.

우리 조상들이 경험했던 마마나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코로나19는 많은 걸 이야기하고 있다. 마마가 돌게 되면 금기사항이 등장하는 이유, 코로나19가 퍼지는 지금 시점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이유는 딴 데 있지 않다. 공동체를 지키려는 이유에서다. 그러지 않으면 모두가 위험할 수 있다는 경각심이 발동된다. 내가 아닌, 우리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이유를 마마와 코로나19가 말한다.

'바이러스를 막아라'는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림박현주.
'바이러스를 막아라'는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림박현주.

노경실이 쓴 동화 <바이러스를 막아라>는 지난해 출간됐다. 마치 코로나19 등장을 예고라도 한 듯하다. 동화엔 갈매기처럼 바다에 사는 새가 바이러스의 매개체로 나온다. 동화에 등장하는 바이러스는 라틴어로 ‘갈매기’를 뜻하는 ‘라루스’를 따서 ‘라루스바이러스’로 이름을 지었다. 라루스바이러스는 2주 잠복기를 거쳐 실명에 이르고, 바이러스가 뇌에 침투하면 7일내 사망한다. 매개체가 새여서 확산속도는 더욱 빠르다. 유럽을 시작으로, 중국에 상륙, 마침내 라루스바이러스는 우리나라에 침투한다. 동화는 첫 환자를 5세 여자아이로 설정했다. 동화라서 그런가.

신종 바이러스의 등장 때마다 겪는 게 있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움츠리게 만들고, 이상한 소문을 받아들이게 한다. 가짜뉴스가 바이러스처럼 창궐하는 이유도 그렇다. <바이러스를 막아라>에도 거짓 사진과 동영상이 SNS를 통해 전파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바이러스를 막아라>는 쌍둥이 남매 서진과 찬우 가족이 중심이다. 엄마는 바이러스와 최전선에서 싸우는 의사로 나오고, 아빠는 보육시설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동화는 사회적 혐오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도 보여준다. 보육시설 아이들에 대한 주변의 혐오, 그 아이들을 잠재적 바이러스 감염환자로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이 그려진다. 동화에 등장하는 한 장면을 읽어보자.

“보육원에 큰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앞마당 가득 산더미처럼 온갖 쓰레기가 쌓여 있었습니다. 보육원 한쪽 벽은 ‘너희는 이 동네를 떠나라’라고 쓴 커다란 종이가 붙어 있었습니다.”

혐오는 언제 어디서든 발생한다. 유럽사람들이 코로나19 때문에 아시아인들을 혐오대상으로 바라보곤 한다. 아시아인은 알게 모르게 유럽인들에겐 ‘잠재적 바이러스 감염 대상’이 되어버린 셈이다. 동화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시설 아이들을 그런 눈으로 바라본다.

서진이네 가족이 혐오대상이 된 장면을 보여준다. 그림 박현주
서진이네 가족이 혐오대상이 된 장면을 보여준다. 그림 박현주

서진·찬우 가족도 혐오 대상으로 몰린다. 서진이네 할머니가 갑자기 쓰려져서 119로 실려 가는 일이 발생한다. 그걸 본 아파트 주민들은 긴급회의를 열고, 서진 가족을 아파트에 오게 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낸다. 사실 할머니는 백내장 수술을 해야 했는데, 아파트 주민들은 서진 가족들이 병원에서 며칠 살았다는 이유로 그런 일을 벌였다. 게다가 엄마는 라루스바이러스와 한창 싸우는 중이길래, 아파트 사람들에겐 서진네 가족이 ‘바이러스 덩어리’로 보일 뿐이었다.

혐오에 대한 반응은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모른다. 비록 동화이긴 하지만 아파트 이웃은 서진이네 가족을 싸늘하게 대하고, 아예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떠나길 원한다. 서진이네 현관문엔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는 떠나라’, ‘공동체 의식 없는 양심 불량자는 이웃이 아니다’, ‘쌍둥이는 전학하라’ 등의 쪽지가 나붙었다.

혐오는 왜 발생할까. 미국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혐오는 특정 집단을 불결하고, 냄새나고, 끈적거리는 동물적인 것으로서, 열등하고 배제되어야 하는 오염원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특정 짓는 김치나 마늘 냄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바이러스를 특정집단과 엮고, 혐오로 연결 지으려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끊이지 않는다. 문제는 바이러스를 두고 벌어지는 혐오의 발산은 소수의 공동체만 지키지, 거대한 공동체엔 균열을 내는 일이라는 점이다. 혐오는 또다른 혐오를 부르기 때문이다.

1821년(순조 21)은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콜레라가 우리나라에 첫발을 디딘 해였다. 인도의 풍토병이던 콜레라가 식민지를 경영하던 유럽인들의 이동과 함께 세계적으로 확산됐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주도는 이듬해인 1822년 콜레라가 닥치면서 수많은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1821년 그해 평안감사였던 김이교가 조선 조정에 올린 글을 통해 어떻게 하면 공동체를 끌고 가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1821년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 김이교가 조정에 올린 글. 빨간색 부분이 가난하고 어려운 이를 도와주고 있다는 내용이다.
1821년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 김이교가 조정에 올린 글. 빨간색 부분이 가난하고 어려운 이를 도와주고 있다는 내용이다.

“돌림병이 그칠 기미가 없고 점차 확산될 염려가 있어 외방의 각 마을과 인접한 여러 고을로 번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친히 이 지역의 영험이 있는 곳에 기도를 올리려 합니다.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 아파도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 이미 사망했는데도 장례를 치르지 못한 사람은 별도로 구호하고 사정을 참작하여 도와주고 있습니다.”<순조실록 24권, 순조 21년 8월 13일 경인 1번째 기사>

우리나라 첫 콜레라는 중국과 가까운 서북지역부터 시작됐다. 김이교가 있던 평안도 지역이 첫 타깃이었다. 김이교가 조정에 관련 사실을 보고할 시점엔 1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걷잡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가난하다고 버리거나,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을 도와주고, 치료받지 못하는 이들의 손을 잡았다. 우리가 갈 공동체는 바로 그래야 한다. ‘내’가 살려면 죽는 것이며, ‘우리’가 살아야 공존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조상들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미래의 공동체는 더더욱 그래야 한다. 바이러스를 어느 한곳에서 막는다고 끝나는 건 아니다. 소통을 하면서 공동체를 살리는 일은 미래엔 더 중요하다. 코로나19가 그걸 일깨우고 있고, <바이러스를 막아라>에서 말하려는 것도 매한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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