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전인, 강행생 건축사를 추모하며
건축 전인, 강행생 건축사를 추모하며
  • 김형훈
  • 승인 2020.05.04 17:4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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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19년 12월호] 건축 이슈
김태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필자가 1995년 제주정착 이후 제주건축계의 화두(話頭) 중의 하나인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는 거친 환경속에 오랫동안 축척되어 온 제주만의 독특한 그 무엇, 다르게 표현하자면 지역적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지역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아울러 지역건축가의 작품을 통해 공통되는 인자(因子)를 찾아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였고 그 대상은 당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던 건축사였다. 강행생 건축사 역시 필자가 눈여겨 보아야 할 건축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

강행생 건축사(1939 -2019).
강행생 건축사(1939 -2019).

건축사 강행생은 1939년생으로 올해 81세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오직 제주건축의 가치와 지행점에 대하여 스스로에게 묻고 후배들과 대화를 하려 했던 원로 건축사로 기억된다. 그의 건축 출발은 전남대학교 건축과 입학 후 제주출신의 건축사 김한섭 교수를 만나면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김한섭 교수로부터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근대건축의 영향을 받게 된다. 졸업한 후 1973년 제주실업전문대학(현 제주국제대학교) 개교와 함께 재임하면서 1987년까지 17년간 인재육성에 공을 들이면서도 1985년에는 건국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 ‘제주도 안·밖거리 살림집의 공간구성에 관한 조사연구’라는 논문을 작성하는 등 지역건축에 대한 학술적 연구와 설계교육, 그리고 1988년 이후 실증적인 설계작업을 병행하면서 제주건축의 정체성과 현대화 발전, 계승을 모색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강행생 건축사의 가장 활발한 활동 시기는 1980년대와 1990년대라 할 수 있다. 1980년대에는 비교적 대형건축물이 많이 건축되었고, 70년대의 무비판적 개발에 대한 반성으로 제주건축의 지역성과 향토성에 대하여 서서히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게 된 것도 바로 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지역적 건축운동으로 전통적인 제주의 건축 재료인 현무암, 송이의 사용을 통한 지역성 표출을 위한 실험적 모색이 두드러진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강행생 건축사는 제주실업전문대학에서 재임하고 있었던 시기로 제주실업전문대학 본관과 3호관 설계작품을 선보이게 된다.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1981년 제주실업전문대학(현 제주국제대학교) 본관(그림 1)은 모던한 건축양식에 상당히 절제된 입면과 간결한 내부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행생 건축사가 평소 강조해온 제주 전통건축이 갖는 ‘순응과 조화’, ‘단순과 절제’, ‘투박한 아름다움’을 강행생 나름대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특히 제주실업전문대학 3호관(그림 2)은 Y자형식으로 배치하면서 지형적인 고려와 함께 외부 경관적 요소를 끌어들이려는 의도가 적극적으로 반영한 설계로서 땅과의 조화가 강조되는 제주전통건축의 특징을 현대적으로 잘 반영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림 1(위). 제주국제대학교 본관 전경 및 정면도그림 2(아래). 제주국제대학교 3호관 전경 및 정면도
그림 1(위). 제주국제대학교 본관 전경 및 정면도
그림 2(아래). 제주국제대학교 3호관 전경 및 정면도

1980년대의 사회분위기는 행정기관에 있어서도, 지역적 건축문화의 형성을 위한 작업으로 건축미관심의를 실시하고, 지역건축문화의 정착을 위해 우수미관주택상(1981), 제주특유주택설계공모전(1982-1984) 등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특히 향토성, 고유성이 강조되었던 당시 사회분위기속에 건축사 김석윤, 문기선 등과 함께 작성한 제주도 향토성 건축보급방안연구(1987년)를 통해 제주건통건축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가치발견이 있었을 것이고 이러한 생각들이 그의 설계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그러나 건축사 강행생의 전성기는 1990년대가 아닐까 생각된다. 대표적인 설계작품이 가장 많은 시기라는 점도 있겠으나 그가 생각하는 제주건축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 다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는 지역적 전통에 대한 재해석과 함께 다양한 건축언어요소를 적용하기 시작하였고, 송이 벽돌 등 다양한 마감 재료도 사용하기 시작하는 등, 제주건축의 새로운 모색이 시작되었던 시기였다. 강행생 건축사는 이 시기에 탐라교육원 연수동(1991년)(사진 1), 제주교육박물관(1992년)(사진 2), 제주학생문화원(1994년) 등 설계작품을 통해 마감재료의 변화와 함께 형태적으로 변화를 갖게 된다. 대표적으로 탐라교육원 연수원(1991년), 제주교육박물관(1992년), 제주학생문화원(1994년)(사진 3)을 들 수 있다.

1980년대 선보였던 모던한 건축양식의 틀을 벗어나 그동안 탐색하여왔던 전통건축의 현대적 계승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을 다양한 형식으로 담아내려고 했던 것이다. 1980년대는 제주전통건축의 현대적 계승의 접근을 파편적 실험적으로 적용한 작품이라면 1990년대는 형태적인 측면과 재료적인 측면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응용하고 적응하였다고 생각된다.

사진 1. 탐라교육원 연수원 전경.
사진 1. 탐라교육원 연수원 전경.
사진 2. 제주교육박물관 전경.
사진 2. 제주교육박물관 전경.
사진 3. 제주도서관과 제주학생문화원 전경.
사진 3. 제주도서관과 제주학생문화원 전경.

강행생 건축사가 언급해 왔던 제주건축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명쾌하다고 생각된다. 투박함, 절제, 단순함, 그리고 거스르지 않은 조화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며 그가 반복적으로 언급하였던 단어들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가치들은 건축의 일반적인 가치이자 도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새롭게 재해석한다면 건축물 오브제적인 물체로 다루기보다는 인간중심, 생활중심에 관심을 두고 접근해야 한다는 건축사 강행생의 소박한 건축철학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건축사 강행생은 철저히 기능주의에 충실했고 궁극적으로 모더니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모더니티(Modernity)의 산물인 모던건축의 이데올로기는 원칙적으로 기계주의, 능률주의적 이념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이념적 배경 때문에 모던건축은 공학적 기술에 의한 능률의 극대화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아돌프 루스(Adolf Loos)는 「장식은 죄악이다」라고 주장하기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강행생 건축사는 기본적으로 모던건축의 양식과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기계주의, 능률주의적 이념의 토대 위에서 합리적인 건축, 순응하는 건축을 모색하는 작업에 좀 더 많은 비중을 두고자 했던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그 원천을 제주전통건축이 내포하고 있는 가치에 두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지정체성과 지역성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들이다.

그가 언급한 제주건축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이 1980년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의 설계작업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다소 거칠고 투박하게 느낄 때도 있지만 그 자체가 그가 생각하는 정체성의 또 다른 해석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행생 건축사의 작품에는 ‘정체성과 시간성’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는 특별한 미사여구(美辭麗句)가 붙지 않기도 하지만 붙일 수 없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2017년 강행생 건축사의 아카이브전의 주제도 ‘불루(不陋) 불치(不侈)’였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이 백제의 궁궐건축에 대해 언급한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검이불루(儉而不陋)),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화이불치(華而不侈)는 의미를 인용한 것이었다. 누추하지 않고 사치스럽지 않은 건축, 인간중심에서 삶의 공간을 모색하려는 강행생 건축사의 건축철학을 잘 표현한 아카이브전으로 기억 남는다. 뒤돌아보면 우리 건축인들이 때늦은 아카이브전을 마련했던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조금이나마 고인(故人)에 대한 작은 보답이었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필자와의 오랫동안 교류 속에서 지역건축의 선배로서 그리고 선배 대학교수로서 던져주셨던 충고와 격려의 말씀은 아직도 가슴속 깊이 간직하며 실천해가야 할 큰 지침으로 간직하고 있다. 특히 온화한 모습과 낮은 목소리의 톤으로 제주건축에 대한 생각과 문제점, 그리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셨던 그의 모습은 영원히 필자의 가슴속에 간직해 갈 것이다. 이제 강행생 건축사는 이승을 떠나 저승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고 계실 것이다. 저승에서도 변함없이 온화한 시선으로 이승의 후배 건축인들의 활동을 지켜보고 계실 것이다. 강행생 건축사가 남긴 깊은 메시지를 되새겨 보며 이승의 우리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차분히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과제가 우리들에게 남겨져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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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2020-05-06 09:27:25
안타깝고, 고인으 작품은 구 탐라대꺼ㅏ지 다양하게 있지요
삼가,초모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