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마미아2>와 「해피 쿠키 이어」
<맘마미아2>와 「해피 쿠키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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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1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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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 혹은 녹차 <13>

영화 <맘마미아>(2008)가 오래 전 흥행을 했다. 원작 뮤지컬도 영화도 대체로 평이 좋았다. 햇살이 맑고 투명한 지중해 섬의 작은 호텔, 생기와 유머가 넘치는 사랑스러운 모녀. 남자친구 스카이와의 결혼을 앞두고 소피는 홀로 자신을 키워온 어머니 도나의 청춘에 얽힌 달콤한 비밀을 알게 된다. 미혼모 도나의 일기장에 짧은 연애담을 남긴 세 명의 남자 중 하나가 친부일 거라 확신한 소피가 그 세 명을 몽땅 결혼식에 초대하면서 섬의 이틀은 해프닝의 연속이 된다.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만 마지막에는 소피도 도나도 되찾은 사랑과 행복에 젖어든다. 멜로물의 정석에 가까운 전개지만 전통적인 정조관념과 거리가 먼 도나의 자유분방함을 아무 편견 없이 받아들인 등장인물들의 개방적인 연대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맘마미아>의 결말에서 1/3 확률의 아버지들의 연대라는 파격적인 대안가족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올 파커 감독의 <맘마미아2>(2018)는 도나가 죽은 뒤에 호텔을 재개장하는 소피가 어머니를 추억하며 전편에 밝혀졌던 과거를 재조명하는 이야기이다. 사실상 전편에서 더 나아간 전개는 없는 것에 가깝다. 소피는 다시 스카이와 갈등을 겪지만 결국 그와 결별하지도 결혼하지도 않은 채 화해에 이르고, 제각기 자신의 연인을 찾는 어머니 세대의 여성 인물들도 마찬가지이다. 전편의 결말과 달라진 서사가 거의 없는데도 유난히 작위적인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전편에는 다소 막연하거나 느슨했던 연인 및 가족의 결합에 속편이 지나치게 집착적이라는 것이다. 극 내내 냉전 상태였던 연인들은 별다른 대화도 없이 재결합하고, 결말부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인물들은 천연덕스럽게 가족의 일원이나 새로운 연인으로 받아들여진다. 마치 그 세계의 단 한 사람도 정상가족 공동체 바깥의 존재로 남겨둘 수가 없다는 것처럼.

정세랑의 단편집 『옥상에서 만나요』(창비, 2018.)은 결혼과 연애, 즉 멜로물의 핵심 주제라고 할 수 있을 모티프들을 여러 차례 다루고 있다. 「웨딩드레스44」(2016)가 결혼 제도가 내재하고 있는 불합리한 현실들을 카드뉴스처럼 간결하게 파편화된 방식으로 보여준다면 「옥상에서 만나요」(2012)는 남편을 만드는 과정부터 그 활용법까지 예사롭지 않은 연애담(?)의 구조를 취한다. 「해피 쿠키 이어」(2014)는 이것을 멜로물로 봐야한다면(이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 중 어쩌면 가장 멜로물에 가까운 구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독특한 결말을 갖고 있다. 사랑이 거절과 이별로 끝남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의 따스한 색채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두 사람 모두 새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귀속되지 않은 채 소설에서 퇴장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이스마일은 한국에 유학을 온 아랍인 의대생으로, 친해진 한국인 동기와 함께 과자 공장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사고로 한쪽 귓바퀴를 잃고 만다. 어처구니없게도 사라진 귀가 다시 자라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또 과자로 된 귀가 자란다. 참담하고 경황이 없어 잠도 없어진 와중에 셋방 옆집에서 아침마다 구토를 하는 이웃 여자가 걱정되기 시작해 말을 걸어보니 콩 알레르기가 심하단다. 끝내 자신이 실습하던 응급실에 여자가 실려 오기에 이르자 병자의 고통이란 게 남일 같지 않았을 이스마일은 팔을 걷어붙이고 콩으로부터 안전한 음식을 요리해주기 시작한다. 여자는 밥만 먹고 그냥 가긴 심심했는지 함께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하고 산책을 하고…… 그렇게 그들은 연인이 된다.

이스마일이 여자친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소설 여기저기에 널린 작은 서사의 모서리마다 담뿍 느껴진다. 그는 여자친구가 그의 나라가 “정말로 민주국가”냐는 둥 속없이 무례한 질문을 해도 불쾌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럼 한국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할 수 있”느냐는 반문에 여자친구가 침울해지는 게 싫어서 다른 화제를 꺼내온다. 관계 중에 여자친구가 무심코 자신의 과자 귀를 깨물어먹는 엽기적인 일이 반복되어 계속해서 새로운 과자 귀가 자라나는데도 그 일들은 말싸움도 없이 우스운 해프닝으로만 지나간다. 그녀와 함께 여행을 가서 그녀의 외조부와 외조모의 러브 스토리를 들었을 때는 그곳에서 청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다. 생각만 했던 것은 “나와 같이 붉은 사막으로 가자고 하기엔, 너무나 푸른 풀이 돋은 무덤들 앞”이었기 때문이다. 고작 무덤에 돋은 풀들의 싱그러움마저도 그녀에게서 앗아갈 수 없을 만큼 이스마일은 그녀가 소중하다. 자신의 과자 귀를 먹어치우는 게 버릇이 되어버린 그녀를 보며 “내 귀를 먹여서라도 여자친구의 살이 오르기를” 바랄 정도이다. 그러나 여자친구는 결국 그의 청혼을 거절한다.

“어차피 여기 안 어울리잖아요. 콩도 못 먹잖아요.”

여자친구가 천천히 웃었다. 이걸 어쩌나, 하는 웃음이었다. 그러고는 말랐지만 강한 팔로 나를 꽉 안아주었다. 여자친구의 이마에선 좋은 땀 냄새가 났다. 신선한 냄새였다. 식물을 부러뜨렸을 때 나는 그런 냄새. 나는 촉촉한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한 거절이었던 것 같다. 알고는 있었다. 여자친구는 어디에도 안 어울리는 사람이고 그래서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어떤 초대로도 성공하지 못했으리라는 걸. (『옥상에서 만나요』, p.198.)

그러나 이스마일은 다가올 이별에 상처받기보다 유학을 끝내고 귀국하기 전에 “여자친구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을 생각”한다. 여자친구에게는 여러 가지 절실한 문제가 있지만, 콩 알레르기는 목숨이 달려 있는 만큼 확실히 순위권에 꼽을 만한 문제이다. 의대생인 그는 그 문제를 해결해주기로 결심하고 그녀를 치료하기 시작한다. 이스마일이 한국을 떠나는 날 여자친구는 그가 마지막 식사로 먹은 된장찌개 세 숟갈을 나눠먹고 그와 “아주 한식 맛”이 나는 키스를 나누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어지지 않는다. 그는 이제 자라지 않는 귀에서 이따금 멀리 한국에서 들려오는 듯한 소리를 들을 뿐이다. 그들이 사회가 규정하는 관계에 소속되지 않으며 그것을 재생산하지 않는, 일시적이고 느슨하되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했던 것을 증여했던 윤리적인 공동체였다고 하면 어떨까. 사랑이 타인의 행복을 바라고 타인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관계라면 그것은 혈연이나 공적 명명에 귀속되어야만 할 불가결한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하면 멜로의 본질은 사랑이 아니라 승인된 가족공동체로의 편입과 그 보상으로 주어지는 입지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맘마미아2>의 작위적인 결말부는 서사에서 필연적이다. 사랑을 제도화하면 연애는 그 자체로 실재하는 사랑의 양상이 아니라 정해진 결실을 성취해야만 하는 인풋이 된다. 소피를 정상가족으로 만들기 위해(도나는 정확히 그러한 상황의 미혼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카이는 아무리 생각이 맞지 않아도 소피에게 돌아와야만 했고 ‘아버지가 없거나 여럿인 아이’라는 소피의 정체성을 수용하는 대신 영화는 3명의 아버지들 중 어머니와 재결합했던 샘만을 소피의 친부 역할로 연출해낸다. “1/3 아빠라도 좋다”는, 혈연적 가부장제 질서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연대의 신선함을 여전히 유쾌하고 흥겨운 속편에서 느낄 수 없었던 것은 그러한 ‘견고함’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팝콘 혹은 녹차

최다의 칼럼니스트

- 제주대학교 국문학 석사
- 동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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