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 미디어제주
  • 승인 2019.12.26 0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건축 [2019년 5월호] 오피니언
김도영/건축사사무소 반디

작년(2018년) 봄.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건축설계 일거리가 줄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뭔가 공부해 보자’라는 생각에서 호기심이 닿는 대로 경제 강의 동영상들과 관련 서적들을 뒤적였다. 당시 나는 ‘제주 불경기 원인과 해결’에 대한 실마리를 잡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경제 문제의 본질은 ‘국가(정부)’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 관심은 자연히 ‘국가’라는 주제로 기울게 되었다.

‘국가란 무엇인가’(민경국 저)’ 책의 내용을 일부 편집하여 인용해 본다.

“사람들은 국가라는 통치체제 속에서 태어나고 또 그 속에서 죽는다. 누구나 태어나면 좋든 싫든 강제적으로 국가구성원이 되어야 한다. 국가는 폭력을 독점한 조직이다. 그러나 국가가 독점적 권력을 직접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강제를 동원하여 통치조치를 취하는 책임을 맡은 것은 정부다. (중략) 그럼에도 국가와 정부는 다르다. 국가 구성원이 되는 것은 자동적이고 강제적인데 반하여 정부의 구성원 자격은 자동적이지 않다. 강제적으로 구성원이 되지

않는다. (중략) 흔히 혼돈하기 쉬운 것이 사회와 국가의 관계이다. 지배복종의 관계를 특징으로 하는 국가와는 달리 사회에서 인간관계는 수평적이다. (중략) 국가는 항상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달성할 ‘구체적 목적’이 있다. 그러나 사회에는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달성할 구체적 목표가 없다. 구성원 ‘개인의 목적’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회는 조직이 아니라 ‘자생적 질서’다. 사회는 사적 인간들의 행동을 통해서 스스로 형성되지만 국가는 만들어진다. 국가를 중시할수록 국가와 사회의 구분이 흐려진다. 그 결과는 사회의 국가화이다. (중략) 국가주의는 결코 나라다운 나라를 이끌 수 없다는 것. (중략) 자유와 재산을 지키는 나라만이 나라다운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

‘재산권’과 ‘법’ 그리고 ‘자유’

국가가 존재하기 이전에도 사유 재산은 존재했다. 산에 널린 열매도 내가 따야 내 것이 된다. 취득의 근거는 노동이다. 이는 원시 시대부터 있었던 것이다. ‘재산권은 실정법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파생되었다’는 말과 ‘인간이 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권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법을 만들게 되었다’라는 말에 동의한다. 현재 나 또는 당신이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개인의 사유 재산을 늘리고자 함일 것이다.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가?

“법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 법은 자유와 재산, 인격을 침해하는 불의의 행동을 보편적으로 예외 없이 막기 때문이다. 소유가 없는 곳에서 정의도 없다. 법의 본질은 정의를 돌보는 기능이다. 정의는 내가 내 자신에게 하지 않았을 것을 타인들에 하지 말라는 뜻이다. 약탈과 같은 불의를 막아서 재산, 생명, 자유를 보호하는 것, 이것이 법의 목적이다. 국가의 과제는 이러한 자연적 권리를 보호하는 일이다.”

여기서 ‘구체적 목적’을 가지는 국가와 ‘자생적 질서’를 가지는 사회와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국가차원의 ‘목적’을 이해관계가 다른 사회에 강요할 수는 있는 것일까? 국가를 우리 제주도에 대입시켜 보자. 현 도정은 정부가 된다. 세 가지 사례로써 글을 이어가려 한다.

첫 번째. 현재 건축법상 건축이 가능한 토지와 실제 행정에서 건축이 가능한 토지는 다르다. 현 도정(이하 정부)의 각종 규제정책들 중 하나인 ‘도로 폭 관련 행정지침’은 가히 건축법의 ‘소요폭 미달도로 확보조항’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린다. 건축을 하면서 건축법에 앞서, ‘지역발전’이라는 본질적인 말을 ‘난개발(불균형을 유발하는 무분별한 개발)’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변형시킨 프레임(틀)을 씌워 버린다. 건축주체인 건축주를 이미 죄를 품고 태어난 사람으로 몰아간다. 도로지침에 관하여서는 지역마을의 취락지구까지 여지없이 적용된다. 각 마을은 주민들의 힘으로 일구어냈지, 정부가 발전을 이루어 준 마을이 아니다. 마을주민들의 땀과 양보, 협동으로 만들어 낸 ‘마을안길’ 또한 위 지침에서 벗어날 수 없다. 멀쩡히 상하수도 같은 기반시설과 아스콘 도로까지 있으며, 어린이집 승합차도 무리없이 다니는 길을 지적상 또는 현황상 맞지 아니하다고 건축물대장과 건물 등기부 등본까지 있는 토지가 행정에서는 ‘맹지’라 규정해 버리기도 한다.

두 번째. 최근 정부의 주차장법 강화를 보자. ‘건축물 부설주차장 본법’과 비교해 보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주차장 확보로 이어진 내용이다. 내가 의문인 것은 이 정도의 강화된 규제가 제주에 필요한가이다. 첫 번째 사례와 더불어 상하수도 같은 기반 시설 확보, 도로 기부 및 사도 설치 지양으로 ‘지역 균형 발전’과는 대치되는 정책을 펼쳤고 현재도 고수하고 있다. 건축 행위를 할 수 있는 지역은 자연스레 도심지로 몰리게 되고, 이에 따라 도시로 인구 집중화 현상이 발생하니 도심지 주차난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생활 하수 처리 문제도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본다. 정책이 실패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원인을 분석하고 각 실정에 맞는 해결책을 궁리하여야 할 터인데, 정책 실패를 아랫돌 빼고 윗돌 괴기식 규제 강화로만 풀어내려고 하는 ‘2기’째인 정부의 문제 해결 역량이 실망스럽고 걱정이 앞선다.

세 번째. 지금은 애물단지가 되었지만 단지형 단독주택이 활성화 되었던 몇 년 전을 돌아본다. 주택 입주자들은 행정에 이러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초등학교를 만들어 달라’, ‘신호등을 만들어 달라’, ‘버스정류장을 만들어 달라’, ‘밤길이 어둡다’ 같은 것들 말이다. 이들은 인적이 뜸하고, 교통이 불편하고, 밤길도 어둡지만, 그러한 불편한 삶을 동경하여 이주 또는 잠시 거주하고 제주 경제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20년 전 학생 때 건축계획 교수님에게서 “제주는 저층형 공동 주택을 지향해야 한다”라는 가르침을 들었으며 지금까지도 기억한다. 어쩌면, 제주 지역에 적합한 것은 스카이라인을 해치는 고밀도의 고층아파트가 아니라 이러한 저밀도의 주택단지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주시민들이 선호하지 아니하는 상대적으로 외진 장소에 거주하며, 행정에 “이것 내놔라”, “저것 내놔라” 하지 않으면서 제주 지역 균형 발전 및 경제에 보탬이 되는 이들이 정녕 ‘난개발’을 일으키는 ‘죄인’인가?

“이것은 정의로운 것인가? 이것은 불의에 맞서는 국가(정부)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인가?” 세 가지 사례는 공통점이 있다. 누군가가 ‘지역발전’의 본뜻을 교묘히 ‘난개발’의 프레임(틀)으로 바꿔 씌우는 데 성공하여 일어난 결과이다. 제주 경제가 밑바닥인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위 세 가지 사례와 같이 ‘난개발’의 프레임 씌우기에 의한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나는 강력히 주장한다.

국가가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달성할 ‘구체적 목적’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자생적 질서’를 가진 사회에 얼마만큼 간섭하느냐 고민하고 강도를 조절하는 것은 정부의 지혜라고 여기며, 우리 제주특별지차도 정부는 현명하게 판단하여 본분을 지켜줄 것을 나는 소망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