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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단계에서 더 많은 고민을 해야”
“설계 단계에서 더 많은 고민을 해야”
  • 미디어제주
  • 승인 2019.12.1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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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19년 4월호] 건축사의 집짓기 시행착오
김태성 제주도건축사회 연구위원회 위원/(주)티에스에이 건축사사무소

본인은 내가 실제 거주할 집을 직접 시공하였고, 그 과정에서의 시행착오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한다. 이 내용이 건축연구위원회의 글에 합당한지는 약간의 의문이 있었으며, 또한 건축사 중에는 시공 노하우가 높은 분들이 꽤 많이 포진되어 있어 혹여 놀림이 되지 않을까 망설였다. 그러나 건축연구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의 “직접 경험한 내용, 회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현장 실무와 가까운 글도 필요하다”는 부추김에 용기 내어 글을 써본다.

설계자의 입장에서 건축주의 입장, 시공자의 입장이 되어 본 경험에 대한 이야기이고, 지면이 짧은 관계로 그 중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몇 가지만 간추려 후기 해본다.

 

건축사의 직접 집짓기 도전

건축사란 누구인가? 끝도 없는 토론의 주제이겠지만 한 측면에서 내가 생각하는 건축사란 이렇다. “건축사란 건축물의 설계부터 시공까지 모든 것을 조율하는 마스터이다.”

그러나 건축물을 설계하고 감리하는 사람이 건축주로서 시공자로서의 경험이 없다면 그 조율이 편향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본인도 지역건축가로 작은 건축들을 진행하면서 내가 클라이언트에게 했던 수많은 조언들과 시공자와의 협의 과정에서의 내 의견들에 대한 한계를 느끼곤 했다. 마침 내가 건축주가 되어 보는 기회가 왔고 이 기회에 시공자로서의 입장도 경험해 보기로 했다.

 

고려하지 못한 부분

아래는 설계자로서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가장 후회스러운 몇가지이다.

1. 외부에 노출된 현관문 설계

설계 시 고민했던 부분은 외기와 직접 만나는 부분이므로 알코브 형태로 가급적 안으로 넣어주고 부식을 고려해서 철재 문이 아닌 알루미늄 도어를 적용한다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완성된 골조 현관 부분을 바라보니 그때서야 비로소 알루미늄 도어의 결로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급하게 알아본 단열제품은 비 단열제품의 4~5배 정도의 가격이었고 고민하다가 대부분이 사용한다는 저렴한 알루미늄 도어를 설치했다. 지금 이 현관문은 밤새 분무기로 물을 뿌린 듯이 결로현상이 심하게 발생하여 현관 바닥으로 물이 흐른다. 더구나 최근에는 거의 현관 중문을 설치하므로 밀폐된 현관내부는 습도가 올라가 신발장 및 부속창고에 곰팡이가 필 우려가 있다. 다행인 것은 현관을 정동향으로 배치했다는 것인데 밤새 발생한 결로는 해가 떠오르면서 비친 햇살로 현관문이 데워지면서 마르고 있다.

이처럼 외기에 직접 면하는 현관문을 계획할 때에는 공간에 여유가 없다면 결로 방지기능이 포함된 현관문으로 계획하고, 현관문이 아침 햇살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공간에 여유가 있다면 현관 자체를 결로가 발생해도 상관없는 공간으로 설계하든지 아니면 현관 앞에 다시 넓은 전이공간을 만들어 결로에서의 완충역할을 하도록 한다.

2. 노출 천장 설계와 노출 배관의 소음 문제

1층은 사무실이고, 2층과 3층은 주택이다. 경제성과 함께 최근의 트렌드에 따라 별 고민 없이 1층 천장은 노출에 페인트이며, 배관 역시 노출 배관에 페인트로 설계했다. 문제는 1층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천장 배관으로 상당히 큰 시냇물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부분인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뒤늦게 이와 관련해서 알아보니 이런 경우에는 무소음 배관을 사용하고 노출된 배관을 배관 보온재로 피복해 주면 소음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방법도 완전한 소음차단은 어렵다는 것을 확인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설계 시 소음이 문제될만한 배관 위치를 고려하여 소음부분을 공용부분으로 배치를 하거나, 이를 고려한 하부 공간설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 매트 기초에서의 헌치 설계

제주도의 대지는 경사가 많아서 매트기초에 습관적으로 헌치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본인은 평지에서도 가급적 헌치를 만들어서 기초에 안정성을 더욱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이번 집짓기 과정에서 이 부분이 만만치 않은 시공이라는 것을 느꼈다. 기초 하부 잡석다짐 과정에서 헌치 부분의 사면처리 부분이 다 없어지고 결국 직선화되어 버렸고, 헌치부분도 다짐을 하다 보니 최소형 기계가 작업했지만 그 부분은 도면보다 커져버렸다. 튼튼한 기초는 형성되었지만 견적했던 기초 레미콘 물량의 2배를 초과하였다. 건축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과다하게 쏟아 부어지는 레미콘은 건축주의 눈물이다.

이 밖에 전기·통신 단자함의 벽체 매립 위치, 기성재 창호의 최대 높이 규격 미인지에 따른 공사비 증대 문제, 옥외 빗물받이의 위치와 그 주변 마감재료 문제 등 여러 시행착오와 그에 따른 후회가 있었다.

이러한 시행착오들의 대부분이 실력있는 시공자가 있었다면 설계자가 놓쳤더라도 현장에서 다 고민되고 고려되었을 부분일 수도 있다. 나 또한 고민 없는 설계도면을 제공해 놓고 모든 문제들을 현장소장 탓으로 치부했었던 것 같다.

건축주의 입장, 시공자의 입장이 되어 보니 이런 대부분의 문제들이 설계자가 조금만 더 고민하고 정리해줬으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들이었다. 여물지 못한 건축사로서의 한계를 느꼈고, 또한 설계자 입장에서만 설계를 하고 있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이러한 후회와 고민의 경험은 분명히 나의 건축을 여물게 하여 줄 것이라 확신한다. 특히 주로 소규모 건축을 설계하는 지역건축사로서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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