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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의 소중함 알아야, 도시의 가치 지킬 수 있어"
"오래된 것의 소중함 알아야, 도시의 가치 지킬 수 있어"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9.11.08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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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주택, 원도심의 아이콘이다] <3>

고씨주택을 지킨 고영림 제주국제문화교류협회장
"우리가 지킨 건축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도시재생의 진지한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누는 자리. <미디어제주>가 주최하는 '2019 제주시 원도심 시민강좌-도시재생, 고씨주택에 말을 걸다'의 세 번째 강좌가 열렸다.

주인공은 사단법인 제주국제문화교류협회의 고영림 회장.

어릴 적부터 원도심에서 자랐고, 기나긴 프랑스 유학 생활 끝에 다시 제주에서 '원도심 살리기' 운동에 한창이라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고영림 회장은 '고씨주택 살리기'에 나섰던 일등 공신이다.

"고씨주택 건물을 지키기 위해 미디어제주 김형훈 국장에게 제보를 했고, 결국 살려냈다. 고씨주택이 제주사랑방으로 다시 태어난 뒤 이 공간에서 관련된 뒷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롭다."

이날 강좌에서 고영림 회장이 전한 인삿말이다. 고씨주택을 살리려 고군분투 했다는 고 회장의 이야기는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우리 아버지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우리 본가가 신장로에 있었는데, 큰아버지는 1950년대 말 ‘제주호’라는 주에 여객선을 띄운 분이다. 성 안 사람이고, 진취적인 피가 흐른 집안 출신이다. 아마 내가 이런 투쟁을 할 수 있게 된 에너지는 북 신장로 고씨 집안의 내력 아닐까.

동양극장, 동문시장 폐쇄된 건물에서 아버지가 가구점을 하셨는데, 나는 20살에 대학을 서울로 갔다. 대학 졸업 후에는 24살에 프랑스 유학을 갔다. 오랜 유학 생활 끝에 47살에 제주로 돌아왔는데, 내 인생의 숙제가 바로 ‘제주로 돌아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2007년 3월 1일 23년만에 찾은 제주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신제주는 엄청난 개발로 화려함과 세련됨을 갖추고 있었다. 제주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의 고향은 이렇게 어떻게 초라해질 수 있는가. 그 충격 때문에 처음에는 두려웠다. 그러다가 시작한 것이 제주프랑스영화제다. 2011년, 프랑스영화제를 옛 코리아극장에서 시작했다. 문화로 원도심에 사람들이 돌아오도록 만들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고영림 회장의 말에 의하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잡고 연애했던 장소"가 바로 옛 코리아극장이다. 그리고 그의 프랑스영화제는 어떤 야심을 갖고 시작한 것이 아닌, 잔잔하게 돌을 던지는 의미의 작업이었다. 영화를 틀어주는 것으로, 발전된 프랑스 문화를 제주도민들에게 선보이는 자리였던 것이다.

프랑스영화제에서 연결된 것이 제주시 원도시 탐험이다. 그는 2013년 2월부터 원도심 답사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해왔다. 

"원도심은 내 기억의 현장이다. 이 화두를 어떻게 가지고 갈 것인가 고민했다. 그러던 중 탐라문화광장 사업으로 이 근처가 마구 뜯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씨주택도 허물어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집 주인에게 부탁을 했다. 몇 달 동안만 제주도로부터 보상받는 것을 미뤄달라고. 미디어제주 김형훈 국장에게도 제보했다. 그러면서 기사가 나오고, 이와 함께 제주시 원도심 탐험도 계속했다. 일본 학생들, 제주에 사는 외국인 등 원도심 탐험에 참여하는 이들이 많아지며 고씨주택이 방송에도 노출됐다. 그러면서 휴먼다큐까지 KBS에서 제안해서 찍게 됐다."

숨가쁘게 지나온 나날들이다. 

그가 그토록 지키려 노력했던 제주의 '원도심' 풍경. 원도심이란 무엇일까. 쉽게 말하면 제주성 안과 그 주변 일대를 뜻한다.

"이 일대를 돌아다니며 신나게 놀던 기억이 있다. 동문시장 상가에 아버지 가구점이 있던 자리 방문했을 땐 눈물이 절로 났다. 가구점이 저 끄트머리에 있었다. 기억이 어제처럼 선명하다. 서울과 프랑스에서 유학할 때 늘 그리웠던 곳이 제주다. 중년이 된 이 나이에도 이 공간은 애착이 가고, 올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동문시장 상가 건물이 50년 넘게 있어주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맙다. 아마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 나는 '원도심 지키기'를 한다. 수십, 수백 년이 흘러도 이어지는 추억은 원도심 속에 남아있을 테니까."

고영림 회장은 고씨주택 살리기를 위해 도청에 민원을 제출하기도 했다.

"주택의 밖거리가 너무 허술해서, 고씨주택 안에 물건을 사람들이 막 훔쳐갔던 적도 있었다. 이를 언론에 제보하니 도청에서 “문화재 등재를 위해 보존하려 관리 중”이라는 종이를 대문에 붙여 놓았다."

고 회장의 '고씨주택 건축물 보전하기 작전'은 그냥 어느날 시작된 것이 아니다. 고씨주택의 가치성을 깨닫고, 발견하게 된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제주가 아닌, '프랑스' 덕이었다.

"내가 공부한 곳이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서 고통받은 알자스 지방이다. 우연히 알자스에 있는 지도 교수님과 잘 맞아서, 10년을 이곳에서 공부했다. 알자스는 도심 전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이다. 1000년~2000년 된 건축물이 있고, 적어도 2~300년된 경관이 주변을 이루고 있다. 오래된 건물의 외관은 지속가능하며, 내부는 현대적으로 잘 고쳐서 쓰기 좋게 만들었다. 고도제한은 당연히 한다. 웬만한 건물이 문화재급인데, 모두 사람들이 살고 있다. 1층엔 꽃집, 2~3층엔 아주 작지만 잘 고쳐서 쓰는 아파트 등으로 모두 활용되고 있다."

튼튼한 아파트 사는 것이 부의 상징이고, 스스로의 발전으로 여겨졌던 서울의 사정. 그 프레임 안에 갖혀 있던 24살 고영림은 프랑스 유학으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오래된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이다.

"유학을 갔더니 21살 학생들이 그렇게 오래된 집에 세 들어 살며 자랑스러워 하더라. '이 집은 대들보를 보면, 300여년이 된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 '나무 훈제를 하면 몇 백년 가는데, 좀이 슨 것을 보면 건축 년도를 알 수 있지'. 이런 이야기를 하며 '나 이렇게 오래된 집에 세들어 살아'라고 말한다. 놀라웠다."

길을 보아도 그랬다. 프랑스의 길은 마차 하나가 겨우 다닐 만한, 아주 작은 길이 많다. 길이 좁아도 길을 내려 건물을 부수지 않는다. 길이 울퉁불퉁한데, 차들은 덜덜 소리를 내며 그냥 지나간다. 몇 백년된 길의 흔적을 일부러 남겨두는 것이다. 차가 상하게 되더라도.

"프랑스에서는 오래된 것을 낡은 것이 아닌, ‘자기 존재의 이야기를 가진 하나의 에너지’로 받아들인다. 오래된 물건에 대한 애착도 대단하다. 20살 대학생이 오래된 주전자를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가끔 커피를 타서 마신다. 증조할머니가 쓰시던 물건을 물려받은 것이다. 손녀는 이 주전자를 ‘할머니에 대한 흔적’이라고 말한다. 이는 곧, 이야기의 전승이다."

고 회장은 자신이 좀더 빨리 제주를 찾았더라면, 무너지지 말았어야 할 건축물들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내가 제주에 몇 년만 일찍 왔더라면, 탐라문화광장 사업을 막으려 했을 텐데. 너무 안타깝다. 그래서 그나마 지키려 한 것이 고씨주택이다. 계속 답사하고 언론에 제보하다 보니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작전을 짰다. 민원서도 제출했고. 민원서의 이름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원도심 소재 ‘고한봉 가옥’ 보존을 위한 민원서”다."

고영림 회장은 주변의 빈정거림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고씨주택 살리기'에 나섰다.

이러한 고 회장의 활동에 빈정대는 이도 있었다. 건축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교수 중에 건축가 아닌 사람이 건축물 지키겠다고 하는데, 좀 그렇지 않나”라는 말도 들었단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고씨주택이 보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건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행이 우리 모두 알다시피, 고씨주택은 살아났다. 리모델링을 거쳐 제주 사랑방으로 다시 태어났고, 많은 이들이 들러 제주의 옛 집 모습을 체험하고 있다.

"제주도가 행했던 복원 사업에서 아쉬운 점도 있다. 제주목관아지 복원은 복원이 아니다. 재건축이지. 만약 나에게 목관아지를 어떻게 할 거냐 묻는다면, 저런 식으로 재건축하지 않고 흔적을 그대로 남겨둘 거다. 주춧돌을 그대로 두고, 목관아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고, 학습하게 하는 것이다. 로마에 가보면 로마가 시작된 돌무더기를 그대로 뒀다. 이것처럼 무조건적인 복원이 아니라, 다양한 복원 방안을 두고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이제 제주에는 지킬만한 옛 건물들이 거의 사라졌다. 이제 우리가 지킨 건축물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 이를 고민할 때다.

고영림 회장의 강연에 참석한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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