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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세상을 향해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야”
“도서관은 세상을 향해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야”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9.11.05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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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지역문화를 가늠한다] <7> 느티나무도서관

올해초 우리나라 곳곳의 도서관을 둘러보고 글을 쓰곤 했다. 당시엔 ‘도시재생’ 관점에서 도서관을 바라봤다. 도시재생은 쇠퇴한 지역을 어떻게 바꿀지가 관건이다. 거기엔 도서관이라는 키워드가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엔 가볼만한 도서관이 널려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게 됐음은 물론이다. 그런 아쉬움에 다시 도서관을 둘러보게 됐다. 이번은 지역문화를 이끄는 관점으로 도서관을 바라봤다. [편집자주]

 

흔한 10진분류가 아닌 주제목록으로 배열

하나의 이슈에 대한 다양한 책읽기 가능해

사서들은 집중업무일에 본연의 역할 고민

사람들 엮이면서 지역이슈도 말하는 공간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독서가의 힘은 정보를 수집해서 정리하고 목록화하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눈으로 읽은 것을 해석하고 관련지어 생각해서 변형시키는 재능에 있다.” - 알베르토 망구엘의 <밤의 도서관> 중에서

도서관은 수많은 사람이 오간다. 늘 오는 사람도 있고, 잠깐 들렀다가 떠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책을 읽기도 하고, 어떤 이는 책을 빌리러 오는 공간이 바로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이처럼 매일 사람으로 넘치는데, 대체 도서관은 무슨 역할을 하는 곳일까.

앞서 알베르토 망구엘이 쓴 <밤의 도서관>의 문장을 다시 읽어본다. 그 문장에 드러난 ‘독서가’는 대체 누구이던가. 그가 쓴 내용의 문맥으로 따진다면 ‘독서가’는 ‘사서’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사서는 망구엘의 말마따나 책을 해석해내야 한다. 문장을 곱씹어보면 사서들은 흔하디흔한 도서관의 목록을 책임지는 이들이 아닌, 책을 통해 뭔가를 창조하는 역할자임을 말한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있는 느티나무도서관. 미디어제주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있는 느티나무도서관. ⓒ미디어제주
느티나무도서관 내부 모습. 미디어제주
느티나무도서관 내부 모습. ⓒ미디어제주

현실은 어떨까. 망구엘이 말한 사서는 보기 힘들다. 책을 수집해서 정리를 하고, 순번을 매기듯 목록화하는 작업만이 사서의 역할이라고 아는 이들이 숱하다. 왜 그럴까. 도서관이라는 하드웨어에만 집착했을 뿐, 소트프웨어는 외면했기 때문이다. 사서들이 본연의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지 않는 도서관의 구조도 한몫 한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있는 느티나무도서관은 그런 면에서 사서들이 본연의 역할을 하도록 해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여기에 오면 특별하고 유난스럽게 보인다. 공립도서관이 아니라 사립도서관이라는 자유를 누려서일까.

우리가 아는 도서관은 10진분류에 따라 책을 배열한다. 역사, 문학, 예술 등 이런 식이다. 그게 당연한 것으로 안다. 느티나무도서관은 다르다. 좀 다른 게 아니라 완전 다르다. ‘말을 거는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면 이렇다. ‘사소하지 않은 일상’이라는 큰 주제목록이 있고, 그에 따른 작은 주제가 10개 전후이다. ‘사소하지 않은 일상’에 따른 작은 주제로는 ‘일상속 성차별’이나 ‘나는 왜 이 일을 계속하는가’ 등이다.

10진분류를 배격한 다소 낯선 주제 분류는 관련 책을 찾아 읽도록 만들다. 10진분류였다면 여성의 성차별 문제를 어디서 찾아야 하나. 역사? 아니면 문학? 아니면 철학코너로 가야 하나?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느티나무도서관은 이런 고민을 잠재우며, 주제 읽기를 가능하게 만든다. 이같은 말을 거는 제목은 느티나무도서관 1층에 50종으로 나눠 배열돼 있다.

느티나무도서관의 주제배열. 미디어제주
느티나무도서관의 주제배열. ⓒ미디어제주

특이한 점은 이런 분류는 도서관을 찾는 이들과 함께한다는 데 있다. 도서관 이용자가 궁금증을 물으면 그에 대한 답을 도서관이 하는 식이다. 느티나무도서관은 재단이다. 재단 이사장이면서 도서관에서 가장 바쁜 박영숙 관장은 다른 도서관과 다른 이유를 설명했다.

“도서관은 필요한 정보를 지원도 해야겠지만 세상에 더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야 합니다. 이용자와의 상호작용이 컬렉션을 구성하는 겁니다.”

그는 느티나무도서관 1층에 배열된 주제목록을 ‘컬렉션’이라고 표현했다. 그같은 컬렉션은 사서만의 몫이 아니라, 이용자와의 관계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요즘 유튜브에 다양한 내용이 많잖아요. 그런데 야구공을 잡는 법을 책으로 익히고 싶다는 애가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하나요. 그림책과 관련된 것도 있겠고, 체육에도 있겠죠. 물론 영화도 있을테고요.”

컬렉션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우린 늘 주어진 것에 익숙하다. 순응해왔다는 표현이 맞겠다. 느티나무도서관은 ‘순응’이 아닌, ‘다름’을 찾는다. 그러려면 사서들의 어깨는 더 무거워진다.

도서관은 1주일에 하루는 문을 닫는다. 느티나무도서관은 하루를 더 닫는다. 매주 월요일이 정기휴관일이며, ‘집중업무일’로 불리는 목요일도 문을 닫는다. ‘집중업무일’은 느티나무도서관의 모든 사서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다. ‘집중업무일’은 이용자들을 위해 고민을 하는 날이다. 사서들이 본연의 역할을 하려면 그들의 생각을 나눌 줄 알아야 한다. ‘집중업무일’은 단순히 책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날은 결코 아니다. 도서관의 책임사서인 강철진씨는 다음처럼 말을 꺼냈다.

“지역사회에서 발생하는 이슈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사서들이 실질적으로 일하는 날이 바로 ‘집중업무일’이죠.”

어찌 보면 도서관은 지역사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에도 사회의 이슈엔 무감각하다. 사회 이슈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은 구조여서 그렇다. 대부분의 도서관이 공공영역에 있으며, 보조사업을 통해 운영되는 측면도 있어서다.

느티나무도서관은 그런 면에서는 자유롭다. 반면에 어려움은 있다. 재정적인 어려움이다. 그래도 느티나무도서관은 사회 이슈에 눈감지 않는다. 오히려 지역사회를 도서관이 먼저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있다. 박영숙 관장의 말을 들어보면 이해할 수 있다.

도서관의 역할을 말하는 느티나무도서관 박영숙 관장(오른쪽)과 강철진 책임사서. 미디어제주
도서관의 역할을 말하는 느티나무도서관 박영숙 관장(오른쪽)과 강철진 책임사서. ⓒ미디어제주

“앞으로의 도서관 운동은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도서관은 사람들끼리 상호작용을 촉진시키도록 북돋는 역할을 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시민단체들과 자료를 함께보고 탐색하고, 연구를 하는 것이죠. 단순한 장소로서의 도서관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삶의 방식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박영숙 관장은 도서관을 향해 ‘사람들이 엮이는 공간’이라는 표현도 썼다. 도서관내에서 사람들간의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그 커뮤니티를 통해 지적활동이 자연스레 이뤄지는 공간이라는 뜻일테다.

여기 도서관은 개인 성향까지 파악된다고 한다. 이용자 개개인이 어떤 책을 읽는지 파악하고, 비슷한 종류의 책을 권하기도 하고, 또다른 책을 읽어보라고 이용자에게 말을 건네는 도서관이다. 사서는 책만 빌려주고, 이용자는 책만 받아가는 공간이 절대 아니다.

느티나무도서관은 말한다. 이용자는 원하는 걸 사서에게 말하라고. 사회 이슈에 대한 고민도 털어놓으라고 한다. 그래서 느티나무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사회현상을 말하고, 사회에 대한 궁금증을 고민하는 포럼이 열리는 공간으로 바뀌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도서관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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