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재발견 – 익숙함
가족의 재발견 – 익숙함
  • 홍기확
  • 승인 2019.11.04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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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21>

올해 2월. 아내와 아이가 태국으로 놀러갔다. 나는 집에 홀로 남았다.

익숙한 것들이 사라졌다.

항상 더 나은 것을 찾으라 한다. 더 발전하고 개선하고 개혁하라 한다. 하지만 칫솔로 이를 닦는 것. 더 나은 방법이 있을까? 아니 찾아볼 필요가 있을까? 익숙한 것들과 헤어지고 파괴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익숙한 것들을 들춰보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항상 차이를 부각하지, 그 차이 자체가 익숙한 것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람 그리고 마무리』에 나오는 말.

“우리는 성격상 매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흔들림이 없는 사자 성격이라면 나는 이리저리 움직이는 물고기입니다. 어떻든 이 기묘한 쌍은 40년 동안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우리는 계속 같이 갈 것입니다.”

우리는 비슷하면 중복이라 하고 덜어낸다. 하지만 비슷한 것이 익숙함이고 편안함임을 쉽게 깨닫지 못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직장 옆에 관리를 안 하는 감귤밭의 주인이 아내에게 공짜로 감귤을 따가라고 한 모양이다. 농약도 안쳤으니 유기농이라고 말이다.

아내는 신이 나서 쪼르르 나에게 와서 말한다. 공짜니까 우리 주말에 따서 서울에 계신 부모님께 보내자고. 못생겼지만 맛은 최고라고 말이다.

나는 아내에게 말한다.

“밭을 보아하니 관리가 안 돼서 가지가 이리저리 뻗어있네. 다칠 확률이 높아. 다쳤을 때 비용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우리가 따는 노동력과 걸리는 시간도 사실은 비용이지? 못생겨도 맛은 좋다고 했던 건 단순히 감귤밭주인의 입장이야.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못생겼으니 버리는 것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 마음을 고려해야겠지. 결국 여러 위험과 비용을 따질 때 그냥 돈 주고 좋은 물건을 사서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

아내는 삐졌다. 신이 났는데 김이 빠졌다.

아내는 이리저리 움직이는 물고기. 나는 흔들림이 없는 사자.

그릇이 깨지면 아내는 당황을 먼저 하고 이후에는 내가 왜 이랬을까 하며 좌절한다. 나는 멍하니 있는 아내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깨진 그릇을 주우며 태연하게 말한다.

“2005년에 산 건데 깨질 때쯤 됐지 뭐.”

우리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사고방식도 대응도. 그럼에도 잘 산다.

아내가 없으니, 익숙한 것이 사라졌다.

아내와 나의 ‘차이’라는 그 모순적인 익숙함.

익숙함의 의미를 약간은 알아냈다. 바로 대상의 존재.

이를 닦는 것조차 대상이 사라지면 익숙한 것이 아니다.

아침, 저녁으로 이를 닦는 ‘순서’는 아이가 첫 번째, 아내가 두 번째, 마지막이 나 순이다. 혼자 이를 닦는 것은 익숙함이 아닌 어색함이다. 어색함이 된다.

이렇게 가족을 재발견했다.

가족이란 익숙함의 다른 모습은 차이다.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운영담당
현 서귀포시 공무원노동조합 사무국장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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