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를 걸으시다
아이키도와 나
하지만 바쁜 직장생활 때문에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내가 아이키도를 찾아올 수 있게 한 것도 직장 때문이었다. 올해 6월 나는 도장과 가까운 거리에 새로운 직장을 얻게 되었고 비교적 규칙적으로 퇴근할 수 있게 되어 운동을 다시 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니가 찾던 그 무술을 알려주마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나는 아이키도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마음은 아직 온전히 아이키도를 담고 있지 않았다. 특별히 무도가 필요한 사람은 아니었고 건강 때문에 시작한 아이키도였지만 다른 무도와 비교해서 어떠한지도 알고 싶었다.
사람은 자신이 먼저 경험한 것으로 나중에 것을 판단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일단 아이키도는 다른 무술과는 매우 달랐다. ‘검술이 체술화 되었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범을 보았지만 마음속에는 “이렇게 하면 이런 허점이 있지 않을까?”, “정말 상대를 넘길 수 있을까?”와 같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런 나의 생각을 최초로 읽었던 분이 송경창 지도원님이었다. 나는 지도원님께 온전히 그리고 순식간에 기술에 걸려 바닥에 하염없이 쓰러졌고 그때 마음속으로 내게 하시려는 말씀을 알았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예수님이 베드로라는 제자에게 물 위를 걷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셨는데, 자기 스스로의 의심 때문에 물에 빠진다. 이때 제자를 건져 올리시면서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이 자꾸 떠올랐고 나는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신이 나를 사랑해서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데 나는 받지 않겠다고 버틴 것 같았다.
물론 이 경험 이후에도 나는 종종 다른 생각이 들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지부장님은 내게 기술을 걸어 마치 ‘거슬러 나올 수 없는 와류에 빠져든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해주시곤 하였다. 나는 아름답고 깊은 에메랄드빛 제주 바다에 풍덩 빠졌다가 나오는 기분으로 수련을 이어가곤 하였다. 베드로가 연약하고 의심 많은 인간이기에 바닷물에 빠질 수밖에 없듯 나 역시 그러하지만 좋은 가르침을 받고 있는 점은 좋았다. 나는 점점 더 기민해졌고 정확해졌다.
또 성경 말씀이 자꾸만 생각나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합기올리기’라는 특별한 경험 때문이다. 단순히 근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자세와 의념만으로 ‘내가 낼 수 없다고 생각한 힘’이 나왔을 때 ‘내 안에 다른 존재가 살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평범한 베드로가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었듯 내 안에 신을 모시려 할 때 나는 달라짐을 느낀다.
내게 아이키도는 무엇이었나?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서른 해가 넘도록 그곳에서 자랐다. 4년 전쯤 직장에서 다툼이 생겨 그곳을 나오게 되었고, 원래 소심한 성격에 한층 더 우울하게 지냈다. 누구에게나 인생이 쉬운 것만은 아니라지만 결혼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사람과 잘 되지 못한 것도 충격이 컸다.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한 사람. 나는 조용히 인생 이란 무대에서 패잔병이란 배역을 맡아가고 있었다.
지나간 세월과 미련을 정리하기로 했다. “여기서 계속 머무를 수는 없어 무언가 새로운 기회의 장소가 있겠지”라는 마음에 연고도 없는 제주를 선택하게 되었고(JeJu의 두 번이나 들어가는 J자는 나를 Jump시켜 줄 것 같았다) 4년째 제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제주에서의 생활이 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큰 기대를 안고 온 직장이 문제가 많음을 알고 적지 않게 실망해 이직하기도 하였고 제주도에서 일하는 사람입장에서 관광객들에게 시달려 보기도 하였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나를 보고 회사사람들이 ‘저 사람은 회사에서 사는 사람’ 이라고 수군거렸을 만큼 회사 일에 파묻혀 살았지만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올 때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내면에 불안과 성취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제주까지 내려와서 뭐하고 있는 건가? 갈 길은 먼데 왜 이리 나는 더딘가? 나는 별거 없는 인간인가? 내가 이뤄놓은 성취란 무엇인가? 내가 노력해 보았자 바뀐 것이 무엇인가? 고단하다, 다 그만두고 싶다. 삶이 왜 이리 가혹할까? 내가 죽으면 어떤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 줄까?” 이런 생각들이 늦은 밤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왔고 나를 괴롭혔다.
이제야 조금은 내가 아이키도에 미쳤던 이유를 생각해본다. 체력을 기르고 체형을 바르게 잡는 일도 필요했지만 다른 무언가가 더 절실히 필요했다. 사람의 신체활동은 정신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는 도장에서 땀을 흘리면서 내 영혼을 씻어 갔다. 바닥 어딘가에 부딪혀 생겼다 없어지는 파란 멍들을 보며 내 부정적인 생각을 지우려, 물들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한 면에서 아이키도는 내게 탁월한 호신술이었다. 아이키도는 내 몸과 정신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줬다. 처음 장술을 배우던 날을 기억한다. 나는 조급한 마음에 지도자가 하지 말라고 하는 행동을 계속 반복했다. 내 스스로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
나는 이제야 우에시바 모리헤이 큰 선생님이 전쟁도 끝나고 총기도 발명된 이 시대에도 왜 ‘유술 – 전장에서 맨손으로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채 덤벼드는 적은 상대하는 기술’을 수련하라고 하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당장의 어떤 쓸모의 필요성이라기보다는 어떤 수련을 하는데 아이키도는 유용한 도구가 되는 것 같다. 유술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전제로 지혜롭게 움직이는 것을 가르친다.
나는 아이키도를 통해 인생의 치유와 용기를 얻었고 또 얻으려 노력한다. 어떤 식으로든 사람은 그전에 자신이 하지 못하던 것을 하게 되면 그만큼 성장하게 된다. 고로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르다. 나는 수련을 하지 않은 사람보다 강하다. 우치다 다츠루 선생은 적이란 ‘내 심신의 성과를 저하시키는 모든 것’이라고 정의한다.( 책 ‘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 中)
단순히 물리적인 유형의 적만이 우리의 적은 분명 아닐 것이다. 수련을 통해 나는 두려움과 무기력함, 무지, 그릇된 생각과 절망, 그리고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자기와 주변 사람들을 지키고 자유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큰 선생님은 이런 점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 큰 선생님은 전쟁의 광풍이 몰아치던 2차 세계대전 때의 사람이지만 전쟁에 극히 반대하셨다. 나는 큰 선생님의 손길에 의해 가다듬어진 사람들에게 배우고 이를 통해 위대한 영혼 즉 신과 만난다.
“허리를 구부리지 마, 발을 세워, 자세가 중요해!(문영찬 지부장님)”
“초심자들이 기술을 걸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발움직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에요. 어디로 움직여야 할지를 잘 생각해 보세요(윤준환 도장장님)”
“영우씨 잘했어요 따봉(성주환 도장장님)”
“소오 소오 –그래그래”(고바야시 히로아키 선생님)
아이키도 수련은 신이 내게 하고 싶어 하는 말씀을 사람을 통해 하고 계심을 느낀 멋진 경험이었다.
추신 : 여기까지 수련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신 제주 오승도장 회원님들(그 중에서도 2019년 연도대회 때 짝으로 수업시간 외에 자기 시간을 연습에 할애해 주신 김보라님, 수업시간 때 뭔가 아쉬운 느낌이 있을 때 한 번 더 해보라고 하신 김세한님)과 어떤 때는 나의 어떤 점을 몰아내야 할 적으로, 어떤 때는 포옹해야 할 아군으로 대하시는 듯한 - 지난 3달간 본인이 도장생활에 잘 적응하고 아이키도의 매력에 빠져보기를, 노심초사하셨을 문영찬 지부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