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의 완성
무도의 완성
  • 문영찬
  • 승인 2019.09.09 11: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영찬의 무술 이야기] <50>

어릴적 시작했던 무술의 목적은 오직 강함이었다. 남보다 강하기 위해 손과 발을 단련하였고, 강한 근육을 만들기 위해 체력단련이라는 이름을 붙여 근력운동을 많이 했었다. 이 모든 행동들은 강한 신체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신체에 고통을 주고 혹독하게 다뤘으며, 그 결과 20대 후반에는 그나마 강하다는 몸도 가져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강한 신체를 열망할수록 내 신체에 더 많은 고통을 주는 결과를 만들었으며 그것은 나이가 들어 골병이라 불리는 후유증을 낳게 되었다.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말은 그저 시합이나 경기에만 나오는 말이 아닌듯했다. 영원한 젊음이 없듯이 영원한 강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지인들만 하더라도 어릴적 혹독한 수련을 했던 사람들은 나이 50을 앞둔 지금 손목과 무릎 등의 관절에 염증이 생겨 고통을 호소하고 있으며 많은 선·후배들이 퇴행성 관절염에 시달리고 있다.

차라리 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의 관절이 더 튼튼한 경우도 있다. 무도에서의 강함은 젊음을 등에 업고 단지 남보다 싸움을 잘하면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무도에서 얘기하는 강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나이 서른이 넘어 합기도(아이키도)를 만났다. 서른이 넘어서면서 신체는 퇴행되기 시작한다고 한다.

신체 나이는 내가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컨디션을 넘어 서른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무술에 도전을 했다. 강함이라면 지고 싶지 않은 내가 다시 초심자로 돌아간 것이다.

국내에서 불리우는 합기도라는 무술은 20대 초반부터 꽤 오랫동안 수련을 했었다.

한국합기도는 국내의 타 무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발차기는 태권도와 유사했으며 던지기는 유도와 비슷했다. 품새는 중국무술과 흡사한 이 무술이 합기도라 했다.

정통합기도는 한국의 합기도와는 전혀 달랐다. 발차기도 없었으며 그 흔한 공중제비도 하지 않았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힘이 나의 중심을 무너뜨렸고, 상대 여성조차도 제대로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 ‘합기’라 불리는 힘이었다.

이제까지 배웠던 무술은 남보다 강하기 위해 훈련했다면 정통합기도는 남에게 지지 않기 위해 훈련을 했다.

내가 강하다면 강한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수련만이 존재했다.

공격의 의지가 없거나 방어적인 사람에게는 별다른 기술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공격의 의지가 강하거나 공격적인 사람에게는 기가 막히게 기술이 잘 걸리는 무술이 합기도였다.

승부를 논하지 않고 상대와 상생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무술이 정통합기도였다.

정통합기도를 만나고 나서야 기존에 배웠던 무술에서 찾을 수 없었던 부족한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함만을 추구했기에 부드러움을 알지 못했다. 음과 양이 만나야 비로소 하나가 되듯이 정통합기도의 부드러움 덕에 기존 배웠던 무술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강할수록 거칠어질 확률이 높다. 부드러우면 약하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 그러나 강함 속에 부드러움을 채우고, 부드러움을 통해 강함을 표현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완벽한 무술이 있을까? 정통합기도가 이런 무술이었다.

나는 지금 제주오승도장의 도장장이다. 보통 도장장이 되면 훈련을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매일같이 성인 회원들과 더 완벽하기 위해 훈련을 한다. 그 훈련이 거칠다면 약한 사람들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훈련이 약하다면 강한 사람에게 의미가 없을 것이다.

제주오승도장의 훈련은 강함과 부드러움을 공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부족하기에 더 노력하고 훈련을 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