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첫 번째 이야기
전염병, 첫 번째 이야기
  • 홍기확
  • 승인 2019.09.05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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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16>

싱가포르로 단체여행을 갔을 때이다.

꾸준히 지점과 지점을 찍으며 시간의 한계가 주어졌다.

“뭐 뭐를 꼭 보시고, 몇 시까지 여기로 오세요!”

가이드는 한껏 전문가다운 볼거리 홍보와 함께, 상품을 다루는 듯한 말투로 우리에게 셀프 배송을 하여 몇 시까지 오라고 강조한다. 설명이 끝나자 사람들은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분주히 볼거리를 위해 이동, 아니 습격을 시작한다. 눈빛은 전투적이며, 마음은 다급해 보였다.

나란 놈은 언제나 그렇듯 우선 그럴듯한 장소를 찾아 앉았다. 저 멀리 한 두 무리는 벌써 사진 찍을 장소를 발견하고는 연신 카메라 버튼을 눌러댄다.

가이드가 호텔을 나올 때 싱가포르에서 유명한 과자라고 일본과자를 한 봉지씩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이 차에서 먹다가 못 먹은 과자를 오물거리며 걷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먹어볼까 생각했다.

나란 놈은 물건을 사면 항상 어떤 내용물이 있는지 먼저 본다. 보통 사람들이 물건을 사자마자 소비(먹거나 쓰거나)하는 것과는 다르다. 가이드가 준 과자를 뜯기 전, 내용물을 살펴보았다. 뭐가 엄청나게 들어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판매하는 라면과자라서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내용물은 밀가루, 식물성유지, 마늘분말 2.841%, 간장(대두, 밀, 식염, 정제수), 향미증진제(L-글루타민산나트륨, 5'-리보뉴클레오티드이나트륨), 양파오일 1.894%, 설탕, 소금, 닭고기추출물, 향신료(마늘, 고추), 0.552%, 가수분해단백질(대두, 옥수수), 미트조미추출물[닭고기추출물, 돼지고기추출물(돼지고기), 야채추출물(양파, 당근)], 미트조미파우더[식염, 덱스트린, 돼지고기추출물, 닭고기추출물], 비타민E, 효모추출분말(효모추출물, 덱스트린), 향신료추출물(마늘) 등 29가지였다(솔직히 정확히 세어 본 건 아니다!). 이중 궁금한 것은 ‘가수분해단백질’과 ‘덱스트린’이었는데, 시간관계상 알아보는 것은 그만두었다.

과자를 먹으며 들었던 생각.

과자 하나 만드는데 이렇게 많은 것들을 꼭 넣어야 하나?

그리고 이 과자는 도대체 무슨 맛을 목표로 하는 걸까?

마지막으로 들었던 생각. 내 머릿속은 왜 이러지? 병 걸렸나?

딴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야단이다. 단체사진을 찍으러 오라고 20여명의 대인원이 나에게 손짓, 발짓, 몸짓, 뻘짓(?)을 하고 난리다. 다급하다. 20명의 선생님이 한 명의 학생에게 출석부를 부르는 장면을 상상했다. 나는 전방만을 주시하며 황급히 뛰어갔다. 그들만 보였다. 내 시야가 가려졌다. 내 생각을 막았다. 그렇게 나는 패키지 상품의 ‘덤’으로 팔려갔다.

사진은 무사히 찍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허둥지둥 뭐를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나이가 지긋한 선배 동료가 팩소주와 소시지를 꺼내 놓으며 소주 한잔을 먹자고 권한다. 35도의 더위, 20분의 산책, 1리터의 땀. 여기에 더해 소주를 먹자고 강권한다. 나는 역시 생각을 멈추고 벤치에 앉았다.

선배는 소시지를 꺼내며 말한다.

“이거 싱가포르 면세점에서 샀는데, 엄청 비싼 거야.”

나는 역시 제품성분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오~! 살코기 90%네요. 반대로 말하면 지방이 10% 들어있다는 거지요.”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말을 말걸. 습관이 무섭다. 하지만 그때는 20대. 무서울 게 없었던 시절이다. 나는 눈총을 받으며 소주를 넘기고 소시지를 씹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우유도 지방성분이 몇 퍼센트 들어있는지는 숨기고 저지방이라 홍보한다. 소시지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를 했을 뿐인데 왜 그럴까?

3박 4일의 싱가포르의 여행은 끝났다.

여행 후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데 나는 단체사진 10장과 함께 과자, 소시지의 기억이 남았다. 단체사진은 지금 어디 갔는지 모르지만, 과자와 소시지는 내 머릿속에 아직도 남아있다.

습관처럼 무언가를 분석하고, 종합하는 사고방식.

나쁘지도 좋지도 않지만 문제는 이것이 전염병이라는 것이다.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운영담당
현 서귀포시 공무원노동조합 사무국장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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