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고을’인 제주의 사정을 자세하게 알리다
‘반역고을’인 제주의 사정을 자세하게 알리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9.08.13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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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제주 이야기 <12> 청음 김상헌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제주 오현 가운데 충암 김정과 규암 송인수에 대해 알아봤다. 아직도 세 명의 인물이 더 남아 있다. 다음으로는 역사 교과서에 많이 등장하는 청음 김상헌을 살펴보자.

그는 척화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라는 시조는 많이 들어봤을텐데, 고전을 배울 때 등장하는 시구이기도 하다.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 바로 청음 김상헌이다.

그는 제주에 유배를 온 인물도 아니고, 제주목사로 제주 땅을 밟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오현이 되었을까. 그는 선조의 명령으로 제주에 잠시 내려오게 된다. 어사의 신분이었다. 제주에 내려와서 제주의 실정을 알아보고, 그걸 조정에 보고하게 된다. 머문 기간은 4개월이다.

김상헌은 충암(김정)이나 규암(송인수)과는 시대 차이가 많이 난다. 나이 차이가 100년 가까이 된다. 그는 선조 3년(1570)에 태어난다. 9살 때 글을 배웠다고 한다. 그러다 16세 때 결혼을 하고 윤근수 문하에 있으면서 학문을 닦는다. 과거에 합격한 건 선조 29년(1596)으로, 그가 27살이 되었을 때이다. 임진왜란 당시이긴 하지만 전쟁은 소강상태였고, 그해 겨울 치러진 과거시험을 통해 정치에 발을 디디게 된다.

김상헌이 제주에 내려온 건 32세였던 선조 34년(1601)이다. 그해 김상헌은 행정 실무자인 좌랑에 오르는데, 그 직위에 오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한다. 워낙 지조가 꿋꿋해 주변으로부터 배척당하기 일쑤였다. 평범한 직책에 머물러 있다가 그해 이조좌랑에 올랐고, 홍문관 교리도 지낸다. 그러다 그해 여름철 제주에서 발생한 길운절 사건을 다스리는 어사로 파견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어사는 탐관오리를 처단하는 ‘암행어사’만 있는 게 아니다. 김상헌은 제주도민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안무어사’의 임무를 맡고 제주에 파견되었다.

길운절 사건은 당시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정확하게는 ‘소덕유 길운절 역모사건’으로 불린다. 소덕유라는 인물은 당시 난을 일으킨 정여립의 처사촌으로 제주에 유배를 온 상태였다. 그러던 차에 길운절이라는 인물이 제주에 들어와서 1601년 6월에 소덕유와 난을 일으킬 모의를 하게 된다.

이들은 제주목사를 죽인 뒤에 무기고를 털어서 바다를 건너, 서울로 쳐들어간다는 계획이었다. 물론 그 계획은 실행되지 못하고 탄로가 나는데 제주도민들이 10여명 가담을 하면서 처형을 당하게 된다. 조정에서는 제주도를 ‘반역고을’로 낙인을 찍게 되고, 제주도 전체가 뒤숭숭해진다. 조정은 사건이 발생한지 두달만에 김상헌을 안무어사로 파견해서 제주 실정을 잘 파악하고, 도민들을 잘 달래라는 특명을 내린다.

김상헌이 제주에 와서 해야 할 임무는 무려 17개나 되었다. 관리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한라산에 제사를 지내는 일도 그의 임무 가운데 하나였다. 김상헌은 그와 관련된 기록을 남기는데 그게 바로 <남사록>이다. <남사록>은 말을 바치는 폐단이 심하다는 내용, 목사들이 제주로 올 때 함께 데려오는 군관이라는 사람들의 폐단도 들어 있었다. 그 외 제주에 대한 다양한 내용이 <남사록>에 담겨 있다.

청음 김상헌과 연관이 많은 남한산성. 미디어제주
청음 김상헌과 연관이 많은 남한산성. 미디어제주

김상헌은 조선시대 커다란 전쟁이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인물이다. 젊었을 때는 임진왜란을 마주해야 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병자호란과 맞닥뜨렸다.

전쟁은 겪어보지 않은 이들에겐 체감이 되질 않는다. 두 전쟁을 마주했던 김상헌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두 전쟁은 김상헌에겐 달가울리 없다. 흔히 말하는 ‘오랑캐’가 일으킨 전쟁이었고, 오랑캐로 인해 조선의 민중들은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병자호란은 치욕 중의 치욕이었다. 인조가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다면, 김상헌에게도 같은 굴욕을 느끼게 했다.

조선에 쳐들어온 청나라는 인조 15년(1637) 남한산성 아래 탄천에 20만명의 군대를 집결시킨다. 제주에 왔을 때 30대였던 청음은 병자호란 때는 70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어 있었다. 청음은 엿새동안 밤을 먹지 않고, 스스로 목을 매달아 거의 죽을 뻔했는데 곁에 있던 사람들이 살려내기도 했다. 나중엔 청나라로 압송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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