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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주섬에서 건축을 한다는 것
[칼럼] 제주섬에서 건축을 한다는 것
  • 미디어제주
  • 승인 2019.06.26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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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건 / 가우건축사사무소·건축학박사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가 지난해부터 계간 <제주건축>을 발간하고 있다. 아래 글은 <제주건축> 제2호에 실린 칼럼이다. 지난해 제주건축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국내외 교류활동이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가우건축의 양건 대표의 글로, 제주건축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하는지를 잘 지적하고 있다. [편집자주]

양건 가우건축 대표.

2018년 가을, 제주는 ‘건축의 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연이어 펼쳐지는 건축문화 행사가 풍성하였다. 10월에는 건축계 최고의 전통을 잇는 2018 대한민국 건축문화제가 ‘다채도시’를 주제로 제주도립미술관에서열리더니, 11월 초에는 제주 건축 관련 3단체 공동으로 주최하여 명실 공히 제주를 대표하는 건축문화 축제로 성장한 제주건축문화축제가 ‘공존의 도시’를 주제로 제주특별자치도 일원에서 행해졌다. 11월 29일부터 12월 1일까지는 제주건축의 국제교류를 위해 시작된 2018 제주국제건축포럼이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한 포스트 투어리즘’을 주제로 세계적 건축가들을 모시고 치러졌다. 뿐만 아니라 12월 초에는 ‘상리공생’을 주제로 공모한 2018 제주건축대전 수상작과 6대 광역시 지방건축대전의 수상작 전시가 이뤄졌다.

일일이 늘어놓기도 숨 가쁠 정도로 다양하고 풍성한 건축문화 행사에 즐거워하기에 앞서 이 일들을 준비하기 위해 뛰어다녔을 제주 건축인들의 노고가 눈물겹다. 진심으로 자랑스럽고 감사하다!

이어서 본고의 취지에 맞게 제주 건축계의 측면에서 의미있거나 흥미로웠던 행사들을 간단하게 스케치 한다.

대한민국 건축문화제를 제주에 유치한 것도 의미있는 일이나, 주제로 내세운 ‘다채도시’는 승효상 국가정책위원장께서도 기조강연에서 언급하였듯이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이는 메가시티의 연구나 관심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인구 100만 이하 중소도시의 문제와 미래 전략을 논하고자 하는 의도로 정해진 것이다. 즉 지역마다 갖고 있는 다양한 색채, 곧 지역적 정체성의 가치를 드러내는 길이 미래를 위한 삶의 전략이며 제주 역시 다름 아니다. 이를 함축한 주제기획전은 과거 탐라시대에서부터 유효하였던 쿠로시오 해류를 따라 대만의 이란, 일본의 오키나와, 가고시마, 나가사키를 제주의 건축사들이 직접 탐사하여 ‘동아시아의 해양 실크로드’를 건축으로 재건하는 내용을 담아냈다. 이는 국내의 다른 지방은 물론 해외에서도 시도해 보지 못했던 참신한 전시기획으로 평가되었고, 이어지는 국제 컨퍼런스는 이러한 의도를 더욱 부각시켰다.

‘다채도시와 지역성’을 주제로 진행된 국제 컨퍼런스에는 제주를 대표하여 김석윤 건축사, 대만의 황성원(Huang Sheng-Yuan), 태국에서 챗퐁(Chatpong Chuenrudeemjol), 베트남에선 보트롱니야(Vo Trong Nghia)가 참석하여 해양문화권이란 거시적 네트워크 안에서 각 지역마다의 지역성과 보편성의 변증법적 통합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가늠하였다. 금번 주제기획전과 컨퍼런스의 효과는 향후 제주건축이 새로운 지역성으로 전개되는데 주요한 나침반이 될 것이라 믿는다.

2018 제주건축문화축제 개막일에는 오키나와 건축사협회에서 방문하여 주셨는데, 특히 오키나와 건축문화대상의 ‘정상’ 수상자인 잇소아키텍트의 쥰 카마(Jun Kamma) 건축사와 파이브디멘시마의 마코토(Makoto) 건축사의 작품설명회는 두 지역의 교류 사업의 상징을 보여준다.

쥰 카마 선생은 콘크리트 도시로 변해가는 오키나와의 환경에 대응하여 지역성과 목조가 결합된 새로운 메이커 주택을 제안하였고, 마코토 선생은 임대공동주거이지만 다양한 삶의 패턴을 담아낼 수 있는 공동주거 설계안을 발표했다. 이어서 2018 제주건축문화대상 수상자인 서로건축의 김정임 건축사는 ‘관계’와 ‘지역성’의 개념으로 담담하게 풀어낸 곽지 해변의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세 분의 작품설명회를 들으며 우리와 일본의 건축을 대하는 태도의 다름이 흥미로웠다. 이를 이분법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순 있지만, 우리는 거대담론에서부터 건축을 시작한다면 일본의 건축은 주변의 소소한 것부터 출발한 리서치가 배경이 되어 건축으로 발현된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정체모를 지역성을 찾아 거대 담론에 고착화 되어 있는 작금의 제주건축을 풀어나갈 단서가 될 수도 있다는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또한, ‘공존을 위한 근·현대 건축물의 재해석’을 주제로 열린 건축세미나는 의도의 명료함에 다소 아쉬웠지만, 실제 내용은 매우 충실하였다. 특히 제3강을 맡은 김동현 박사는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와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의 도시공간론을 보편적 배경으로 깔고 김석범의 <화산도>에서 거론되는 실제 제주성내의 공간구조를 구현해냄으로써 제주작가들의 문학 작품 내에 녹아있는 공간을 탐험하는 신선한 체험을 건축인들에게 제시했다. 이번 기회에 제주건축의 지역성 논의가 건축 안을 벗어나서 문학, 미술 등 제주 예술로 외연을 확장할 수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11월 말에 열린 제주국제건축포럼은 ‘오버투어리즘’이란 동시대적 문제점에 봉착해 있는 제주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건축적 논의의 장을 마련하였다. 먼저 스페인 바로셀로나 총괄건축가이며 건축학교 ‘IAAC(Institute for Advornced Acrhitecture in Catalonia)’ 설립자이기도 한 윌리 뮬러(Willy Muller)가 관광도시의 도시건축에 대한 정책과 제도의 방향성에 대하여 강연하고, 요코하마 터미널의 건축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알레한드로 자에라 폴로(Alejandro Zaera Polo)는 도시 생태학적 관점에서 도시건축의 지속 가능성을 발표했다. 이어서 왕슈(Wang Shu), 장영호(Chang, Yung-Ho)와 더불어 중국 현대건축을 이끄는 3인 중 한 분인 리우 지아쿤(Liu Jiakun)은 ‘지역의 리소스를 활용한 지역성의 건축’에 대해 강연하고 일본 히로시마 출신의 히로시 삼부이치(Hiroshi Sambuich)는 ‘지역의 미기후를 활용한 친환경 건축’으로서 지속가능성에 부합된 건축적 대안을 펼쳤다.

제주가 현재까지는 양적성장에 급급한 관광정책에 주력하였다면 향후의 해법은 지역의 인문적 지원과 자연환경, 그리고 공동체로 이루어진 지역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전제로 한 새로운 관광의 시대를 도모하는 것이다. 2018 제주국제건축포럼은 이를 위한 도시, 건축의 패러다임 전환과 실천전략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레퍼런스로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런 다양한 행사를 치러낸 2018 제주건축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제주섬에서 건축사로 산다는 것이 무엇이길래 이리도 외부 세계의 움직임에 집착하고 있는지 우리를 돌아본다. 수년전 지인의 요청으로 육상에 참게양식 수조를 설계한 일이 있다. 설계내용이야 별 것 아니지만 당시 무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양식수조에 사료를 충분히 공급하지 않으면 참게가 껍질을 탈피하는 순간에 떼로 달려들어 서로를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제주섬의 산업구조를 참게양식수조에 비유하곤 했다. 이는 건축계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화 활동은 닫혀있는 수조와 외부세계를 연결하는 파이프와 같은 것이며, 어쩌면 생존을 위한 본능적 태도인 것이다.

그런데 섬에서의 삶은 외부세계를 향해 열림과 닫힘이 동시에 작동되는 이율배반성이 있다. 이러한 열림의 노력 건너편에는 열림으로부터 지켜내야 할 또 다른 생존의 조건이 있다. 정체성으로 대변되는 자기중심성이다. 이것은 우리가 제주건축의 지역성을 놓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제주섬에서 건축을 한다는 것은 열림과 닫힘의 중도(中道)를 찾는 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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