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심장부에서 제주4.3 당시 미군정의 책임을 외치다
미국 심장부에서 제주4.3 당시 미군정의 책임을 외치다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9.06.2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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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일 주교,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주4.3 UN 인권 심포지엄’ 기조발표
“정책을 수립하고 명령한 것은 미군 지도부” 미 군정 책임 분명히 지적
강우일 주교가 21일 미국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주4.3 UN 인권 심포지엄에서 기조발표를 하고 있다.
강우일 주교가 21일 미국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주4.3 UN 인권 심포지엄에서 기조발표를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제주4.3 당시 3만여명에 달하는 대량 학살이 이뤄진 데에는 당시 미 군정 지도부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었다는 지적이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주4.3 UN 인권 심포지엄에서 제기됐다.

천주교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는 21일(현지 시간 20일 오후 3시)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주4.3 UN 인권심포지엄에서 기조발표를 통해 당시 미 군정의 책임을 직접 거론하고 나섰다.

강 주교는 우선 이날 심포지엄의 목적이 희생자와 유가족이 지금까지 겪어온 고통과 희생의 역사를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있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어 그는 “어떤 이유로든 이런 비인간적인 재앙이 반복되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호소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며 “세 번째로 우리는 학살당한 희생자들의 한 맺힌 절규를 전하고, 미 군정과 한국정부 당국이 저지른 부당행위를 국제사회에 명명백백히 밝힘으로써 궁극적으로 정의와 책임, 화해를 실현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정부의 공식 보고서를 토대로 4.3 당시 3만여명의 희생자들 중 10세 미만 희생자 비율이 5.8%, 62세 이상이 6.1%나 된다는 점을 들어 “이 수치는 가해자가 성별과 나이에 구분 없이 무차별 살상을 일삼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체포되거나 단기 구속된 직후 모든 연령대의 주민들이 죽임을 당했고, 적법한 수사나 재판 절차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면서 제주지검의 수감자 명단을 토대로 유죄 판결을 받은 수형인이 2530명에 달했고, 한국전쟁 직후 여러 형무소에서 수많은 수형인들이 처형됐다는 점 등을 들어 “제주4.3은 미국과 한국의 정부당국이 저지른 인권과 인간 생명에 대한 대대적인 위반이자 범죄였다”고 규정했다.

미 군정이 일제 식민통치 하의 국가통제 경제를 철폐하고 자유시장경제 제도를 도입했지만, 공정하고 질서가 잡힌 시장을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경제정책이 존재하지 않았고 그저 이전의 경제체제룰 통합해 토지 소유권자들과 소수의 부유층에게 시장을 운영하도록 했을 뿐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1945년 9월말 9.4엔이었던 쌀 값이 1년만에 280배나 오르는 등 시장질서가 악화됐고, 다른 지방보다 빈곤했던 제주도민들은 전례 없는 경제위기를 겪어야 했지만 미 군정은 일제강점기 때 식민지 공무원이었던 지도부의 경찰력에 행정 권한을 위임, 사회질서를 유지하려고 하면서 미 군정은 도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했다.

이에 대해 강 주교는 “미 군정의 역량과 제주도민 기대치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면서 제주4.3이라는 고통스러운 비극을 낳았다”면서 미군 지도부는 현지 주민들에게 적절한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여기에다 2차 대전 종전 후 1년 사이에 1만6000여명에 달하는 제주 출신 이주자들이 귀국하면서 식량과 일자리 부족 문제까지 겹쳐 도민들이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 등 혼돈의 상황에서 4.3의 도화선이 됐던 3.1절 발포 사건이 발생하게 됐다.

하지만 미군 지도부는 오랫동안 일제에 저항했던 제주지역 지도자들을 수용하고 그들과 협력하는데 매우 서툴렀고 섬 주민 전체를 소련과 연결된 빨갱이 반역자로 간주했고, 이같은 미군 지도부의 오해와 편견, 오판으로 인해 도민 전체가 그들에게 등을 돌렸고 결국 3만여명에 달하는 도민 학살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강 주교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정치 이념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농민이었음에도 미군은 현지 주민들을 그저 좌익으로만 취급했고, 경찰이 제공한 잘못된 정보에 전적으로 의존한 미군 지도부가 제주의 모든 좌익 운동을 철저히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면서 “처형과 학살을 저지른 이들은 한국 경찰과 한국군이었지만, 정책을 수립하고 명령을 이행한 이들은 미군 지도부였다”고 미 군정의 책임을 분명히 했다.

이에 그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들, 특희 희생자 유가족들과 제주도민이 모두 한 마음이 돼 미국 당국이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표명해주기를 염원하고 있다”면서 “유엔의 다른 회원국들도 보편적 인권을 위한 연대의 표시로 잊혀진 역사에 대해 관심과 공감을 표명해달라”고 호소했다.

강 주교의 기조발표에 이어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 존 메릴 전 미 국무부 정보연구국 동북아실장, 찰스 헨리 전 AP통신 편집부국장, 백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의 발표가 진행됐고 조천읍 북촌리 4.3 유족 고완순씨의 증언도 이어졌다.

21일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에서 제주4.3 인권 심포지엄이 열렸다.
21일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에서 제주4.3 인권 심포지엄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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