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 노년세대 삶의 명과 암
고령화 시대, 노년세대 삶의 명과 암
  • 미디어제주
  • 승인 2019.06.0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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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공동체적 성장 속에 설렘의 기다림 있는 노년의 삶 만들어야"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 우리나라 노년세대의 미래를 투영하는 초고령 일본사회의 단면

며칠전 10일 일정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30여년 전 일본 근무 시 몇 차례 일본 국내 여행을 다녔지만 단편적인 여정에 그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정을 길게 잡고 방문지역을 압축해 일본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로 했다. 발품을 팔며 다니던 중 음식집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일본 여성 노인 한 분을 발견하고 곁에 자리를 잡았다. 초점을 잃은 듯한 슬픈 표정과 주변 테이블에서 새어나오는 손님 가족 간 대화가 부러운 듯 물끄러미 쳐다보는 모습이 홀로 사시는 분으로 인지하기에 충분했다.

식사를 마친 후 밖으로 나가는 노인을 잠시 뒤따라 나섰다. 힘 없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가가 촉촉히 젖어들고 있었다. 초고령사회 일본의 슬픈 단면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노인과의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행복한 가족의 모습은 동일하지만 불행한 가족의 모습은 제각각"이라는 톨스토이의 명언을 새삼 떠올려 보았다.

일본에선 사망 후 4일 이상 지나 발견되는 고독사(孤獨死)와 죽어도 시신을 인수할 가족이 없는 무(無)연고 사망자가 수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도쿄에선 죽는 이 10명 가운데 3명은 장례식 없이 곧바로 화장터로 가고 있다. 노노개호(老老介護) 살인 등 무섭고도 슬픈 노인세대의 죽음 이야기도 이어지고 있다.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회'에서 외로움 속에서 노년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세계 최장수 일본 사회의 단면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가족 규모의 축소와 전통적인 '가족 울타리'의 약화로 삶의 방식이 달라지면서 나타나는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이제 남의 일이 아니라 조만간 우리 노인세대에도 닥칠 시급한 문제이자 중차대한 과제이다. 한국의 고령화 현상이 일본을 10~15년 차이를 두고 뒤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 일본의 스산한 모습이 내일의 우리 모습인 셈이다.

의학의 발달과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로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있어 고령사회로의 진입이 더욱 빨라질 수 밖에 없다. 고령화는 지금까지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현상이기 때문에 과거 역사에서 지혜를 얻거나 해안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일이 전개될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고령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 모두가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새로운 시대적 변화에 미리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인생 100세 수명은 개인에게나 국가에나 축복이 아니라 커다란 재앙으로 다가올 것만은 분명하다.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 키케로의 예찬이 점점 허언이 돼가는 노인세대의 삶

2000여 년 전 로마 최고의 정치가이자 웅변가였던 키케로는 그의 나이 예순 두 살 때, “노인이 되면 몸이 약해져 일을 할 수 없고 쾌락을 즐길 수 없으며 죽음이 멀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논리 정연하게 반론을 제기하며 노년을 예찬했다. “나이를 먹다 보면 잃는 것도 있지만, 반면에 노년의 풍요로움을 얻을 수가 있다”며 “지혜와 경륜으로 나라를 수호한 많은 노인이 있다. 배가 항해하는 데 있어 젊은 선원들이 하는 일보다 나이 든 키잡이가 하는 일은 훨씬 더 중요하다”고 했다.

또한 “진정 위대한 일은 육체적인 힘이나 행동력, 민첩성이 아니라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판단력에 의해 이루어지며, 이런 자질들은 노년에 접어든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늘어나는 것이다”라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 싸우고 자신에 주어진 것들을 지켜나간다면, 노년은 존중을 받는 매우 영예로운 인생의 한 시기다. 그렇기에 인생은 짧지만 명예롭고 건강하게 살기에는 충분하다”고 설파했다.

키케로의 말을 음미하며 잠시 우리 노년세대의 현실을 돌아보자. 2000여 년 전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적은 글인데도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가 설파한 메시지에 우리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뭘까? 이는 노년세대를 바라보는 지금 우리사회의 시선이 존경과 조롱 속에서 복잡 미묘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절대 빈곤에서는 벗어났지만 하루하루 노년을 향해 가고 있는 노년세대가 키케로가 언급한 명예롭고 건강하게 사는 노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 주어진 것을 지켜나갈 수 있는 여건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을까?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싶다.

실제 노인들이 겪고 있는 현실 속으로 들어와 보면 안타깝게도 명예롭고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기 위한 설렘의 기다림이 사라져버렸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 속에 어려운 삶이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키케로의 말이 허언이 아니였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러한 안타까운 간극은 어떻게 생겨나 확장되고 있을까? 우선 우리사회 구조의 변화에 있다고 본다. 최근 우리나라의 저출산․고령화 추세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전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저출산․인구 고령화는 노동공급의 감소, 노동생산성 저하, 노령인구 증가에 따른 저축율 하락, 소비 위축, 투자 감소, 재정수지의 악화 등을 초래하여 경제성장을 둔화시킨다. 또한 저출산․고령화는 생산가능 인구는 감소하고 피부양 노인 인구는 급증시켜 생산가능 인구의 노년부양비 증가로 이어짐에 따라 노후보장을 둘러싼 세대간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새 정부들어 심화되고 있는 성장과 분배, 북핵 등 현안마다 진영과 이념으로 쪼개진 사회의 골은 세대, 남녀, 계층간 갈등을 더 깊게 패이게 하면서 나라 경제의 근간까지 허물어뜨리고 있다. 이러한 경제성장 둔화와 계층간 갈등의 심화는 오늘보다 내일의 삶이 나아질 것이란 내부의 긍정 에너지는 거의 다 무너져 내리고 그 자리에는 불신과 불통, 반목과 갈등이 새로이 똬리를 틀게 한다. 긍정 에너지의 붕괴는 각자도생 모델을 확장시켜 사회의 근본가치를 파괴하게 된다. 나라 리더십의 부재가 낳은 오늘 우리 사회의 민낯이자 슬픈 자화상이다.

자신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퇴락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노인세대는 커가는 분노와 좌절감 속에 미래에 대한 설렘의 기다림이 소실되는 암울한 삶을 이어갈 수 밖에 없게 된다. 설렘의 기다림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생명의 불씨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생명의 자양분인 설렘의 기다림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 사회적 편견과 혐로 속에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노년세대

예전 우리 노인들은 사회 발전에 지혜와 경륜을 보태며 배려와 공경의 사회적 기둥으로 대접을 받았지만 요즘은 조롱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로부터는 유난히 구박받는 삶이다. 인터넷에선 노인을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노인들은 부정적 의미의 충(蟲)을 붙여 '노인충', '틀딱충(틀니를 딱딱거리는 벌레)', '연금충(나라에서 주는 노령연금 등으로 생활하는 노인)'과 ‘할매미(시끄럽게 떠드는 일부 할머니를 매미에 비유한 표현)’ 나일리지(나이+마일리지), 노슬아치(노인+벼슬아치) 등으로 폄하하며 우리 사회에서 필요치 않은 존재로 비하되고 있다.

‘뒷방 노인’ ‘노친네’ '꼰대', '노땅'처럼 낡은 사고방식과 고지식하고 소통이 되지 않는 노인을 애둘러 말하는 표현은 있었지만 이처럼 노인을 대놓고 무시하고 비난한 적은 없었다. 이처럼 노인을 비하하는 언어들이 넘쳐나지만, 사회적 편견과 혐로에 대항할 힘이 없으니 노인 혐오는 아예 현상으로 고착화 되어버리고 있다.

과연 노년세대는 그토록 불청객과 같은 존재인가. 하기야 늙으면 죽어야 한다며 부모가 늙으면 산에 내다 버리기까지 한 고려장을 지내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다른가? 가슴 아픈 일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특히 최근에는 노인 문제가 정치상황에 엮이게 되면 그 타박이 더욱 심해진다. 노인세대의 투표참여를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젊은이들이 점점 많아진다. 얼마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지금 50~60대는 할 일 없다고 산에 가거나 SNS에서 험악한 댓글만 달지 말고 아세안으로 가야 한다"고 말해 노인세대의 아픈 상처를 후벼팠다.

또한 한 정치인은 민심이반의 원인이 노인세대가 민주주의 교육을 잘못 받았는데 있다며 노인폄훼 발언을 이어갔다. 실로 신 고려장 시대가 태동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심각한 언어 폭력이다. 진시황도 이루지 못한 불로장생의 꿈을 이들은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결국 이들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슬금슬금 노인세대와 같은 운명의 길로 들어서게 될 터인데 말이다.

지금의 노인세대는 나라를 세우고 지키며 가꾸면서 여기까지 끌고 왔다. 또 젊은이들을 낳아주고 품위 있게 키워주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근로환경 속에서 피와 땀을 흘린 세대다. 그 피와 땀이 젊은이들의 살과 뼈와 삶의 원천이 되었는데, 왜 노인세대를 천덕꾸러기 취급을 하려는가. 세대가 다르다고 하여 노인을 타박하지 말고 이들에게서 삶의 교훈과 지혜를 배우면서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터득함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 탓 저 탓하며 자중자애하지 못하면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는 불지옥만 커지며 자기파멸을 초래할 뿐이다.

저출산·고령화의 심화로 노년 부양부담이 가중되고, 비싼 등록금을 내고 죽어라고 스펙 쌓았지만 취업이 안 돼 평범하게 사는 것도 쉽지 않아 분노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아버지만큼 될 자신이 없어요”하고 체념하고 좌절하는 한탄의 목소리는 보릿고개 마루의 살기 팍팍하고 고단했던 그 시절의 아린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청춘이 더 이상 가슴 설레는 말이 아니라 불안함과 좌절의 언어가 되어버린 안타까움도 알고 있다.

젊은이들의 고뇌에는 공감하고도 남음이 있으나, 노인세대도 불안하고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노년세대들도 스스로를 꺼져가는 등불, 가련하기 짝이 없는 삶의 끄트머리로 밀려난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삶은 언제나 불확실하며 힘겹고 고단한 것이다. 요즘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은 세대가 있을까. 아프고 힘든 사연이 제각기 다를 뿐이다.

우리 국민의 대다수는 평균 수명 연장의 장수시대가 축복이 아니라 생각한다. 장수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이를 반기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 대다수 노인들이 우울하게 노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대다수의 노인세대는 우울증을 겪고 있다. 노인빈곤율이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고 노인자살률 역시 압도적 1위라는 우울한 현실이 이를 반증한다.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의 노인들이 신경안정제 의약품을 가장 많이 처방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 국가 평균의 3.3배에 달하는 수치다. ‘2017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 5명 중 1명(21.1%)은 우울 증상을 겪고 있고, 6.7%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13.2%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노인세대는 젊음이 빠져나간 얼굴의 주름살엔 고단한 세월의 더깨가 쌓여 있고, 온갖 병마와 싸우고 있지만 좌절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자강불식으로 삶을 버텨내고 있다.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늦은 나이까지 일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말해 준다. 전 연령대의 임시직 증가세가 주춤하고 있지만 유독 60세 이상에서는 은퇴 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젊은 세대가 포기한 단기 임시직 일자라도 찾는 노인세대들이 두드러지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오래 일하는데도 노인 두 명 중 한 명은 빈곤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다 보니 구직시장에서 완전히 은퇴하고 여생을 보내는 기간도 OECD 회원국 고령자 가운데 가장 짧았다. 실제 퇴직연령, 은퇴 뒤 휴식기간, 노인 빈곤율, 노인 평균소득 등 4개 항목 모두 OECD 꼴찌다. 퇴직하고도 구직시장을 맴돌 수밖에 없는 노인세대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사회는 무시하고 가족은 얘기를 안듣는 사회의 싸늘한 시선과 혐로에 소외된 노인세대는 마음 속에 분노가 쌓이고, 그 분노가 범죄로 표출될 수 있는 임계점에 다다른 상황이다. 실제로 임계점 도달한 노인 분노가 범죄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경찰청범죄통계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 고령범죄자(65세 이상)는 2013년에 비해 45%나 증가했다. 범죄 유형별로 보면 강력범죄와 폭력범죄 모두 큰 폭으로 늘었다. 강력범죄의 경우 2013년에 비해 70.2% 증가했고, 폭력범죄도 43.1% 늘었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치닫고 있는 새로운 노인문제의 민낯이다.

#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적 성장 정신’을 세워야 한다

우리사회가 건강한 고령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노인세대에 대한 인식의 개선뿐 아니라 노인세대가 설렘이 있는 기다림 속에서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조성돼야 한다. 설렘이 없는 노인세대의 기다림은 안쓰럽고도 애달픈 고독의 몸짓일 뿐이다. 젊은이들은 고독을 어쩌다 찾아오는 달콤한 손님처럼 환대하지만, 노인들에게는 정녕 피하고 싶은 힘겨운 손님일 수 밖에 없다.

기다림이란 아직도 모든 것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생명의 불씨가 살아 있다는 존재의 의미이다. 그러기에 노인세대는 기다림에 지치면서도 그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쓴다. 기다림을 상실한 절대 고독 속의 노인세대는 날로 무인도에 고립되어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듯이 보이는 노인세대, 그 노인세대의 고독은 설렘의 기다림이 점점 사라지고 언제부턴가 공동체의 화제 속으로도 들어갈 수 없음을 알게 될 때 더욱 심화된다. 그러다 언젠가는 그 허망한 기다림의 끈을 서서히 놓아 버리며 기다림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평안한 안식이 찾아 올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의식의 평화가 아니라 의식의 완전한 진공 상태인 것이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묵묵(默默)히 나를 기다려 주지만, 인생과 세월(歲月)은 영원(永遠)하지 않기에 지나온 길 뒤돌아 보는 추억(追憶)의 흔적(痕迹)을 남긴다...“ 산행을 하면서 아름다운 글과 사진을 남기는 한 은퇴자의 블로그에 있는 글이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그래도 산처럼 우리를 기다려 주는 대상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더욱이 산이야 말로 한결같이 같은 자리에서 남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를 기다려 주는 구원의 존재가 아닌가. 키케로가 말한 노년예찬의 해답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할 일 없이 산에나 다닌다고 비난을 받으면서도 노인세대가 꾸준히 산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듯 싶다.

노인을 바라보는 틀에 박힌 관념과 사회적 편견 현상은 우리사회 생존환경의 변화가 가져온 현상이다. 이 현상의 문제를 방치한다면 사회 전반적 위기로 번질 위험이 있다. 이 문제는 사회통합 노력과 특단의 정치적 결단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 지금처럼 “나만 살면 된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판치는 사회 환경으로는 결코 이루어낼 수 없을 것이다. 다가오는 100세 수명 시대가 축복이 되려면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적 성장” 정신을 세워, 모든 세대에 설렘의 기다림이 있는 삶이 만들어져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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