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 Nothing or Everything 3편
예루살렘 – Nothing or Everything 3편
  • 이상우
  • 승인 2019.05.23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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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보는 역사이야기 <4> 예루살렘 – Nothing or Everything 3편

기원전 1300~1100년경의 지중해 동안 지역은 격변의 연속이었다. 문명세계의 외부에서 강력한 세력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이름은 ‘바다 민족(Sea People)’ 이었다. 이들은 미케네, 크레타와 같은 도시국가나 히타이트, 이집트와 같은 강대국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여 파괴시킨다. 위 시기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에도 그리스와 소아시아, 가나안 지역과 같은 레반트(Levant, 지중해 동안 지역) 지역에서 외부적 요인에 의한 대규모 파괴 흔적이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이들이 갑자기 문서상이나 고고학적으로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바다 민족이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일한 부족을 가리키는 명칭은 아니고, 배를 주로 타고 다니며 해안가로 나타나는 집단을 통칭하는 것이었다. 왜구(倭寇)라고 하여 일본 열도 사람들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중국인, 고려인, 동남아인들을 포괄하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들은 기원전 20세기경부터 이집트 문서에 용병 같은 것으로 쓰였다는 기사로 기록된다. 하지만 나름 당시의 세계와 공존하며 살던 이들이 갑자기 돌변해서 문명을 무너뜨리며 약탈을 자행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일설에는 청동기 후반부 소빙하기가 도래하며 식량 수급이 부족했던 것이 주요 이유가 아니었겠느냐 라는 주장도 있지만 명확한 것은 아니다.

바다 민족으로 인하여 미케네와 크레타와 같은 도시국가는 멸망해버렸고, 철기로 무장한 제국을 형성하였던 히타이트 또한 곧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집트는 람세스 3세 등의 지휘 아래 바다 민족의 침공을 어찌어찌해서 막아내는데 성공한다. 여기서 변수가 하나 발생하게 된다. 이집트 왕국의 패권 아래서 살아가고 있던, 예루살렘을 비롯한 가나안 지역에 정치적 권력의 공백이 발생한 것이다. 이집트는 바다 민족의 공격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본토 방어에 전력을 쏟은 나머지 가나안 지방까지 신경 쓸 여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따라서 가나안 지방은 권력의 공백뿐이 아니라 고만고만한 집단들끼리 벌이는 투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된다. 가나안 지역에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 전편에서 소개한 무역을 주로 하는 페니키아 계열의 도시국가들, 가나안 지방에 정착한 바다 민족의 일파 필리스티아인들(Pelishte,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그리고 이집트에서 단체로 도착한 수백만 명의 히브리인들까지 가나안 지방은 혼돈의 도가니였다. 어느 하나가 다른 집단을 지배하기는 어렵지만, 지배받을 수준까지는 아닌 그런 상황이었다.

다윗 상(미켈란젤로)
다윗 상(미켈란젤로)

히브리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상황에서 나타난 인물이 바로 다윗인 것이었다. 성경에는 필리스티아인(블레셋인)들이 히브리인들과 끊임없이 싸웠다고 나온다. 흥미로운 점 하나는 히브리인들이 제련 작업을 하기 위해 필리스티아 거주지 쪽으로 가야 했다는 구절이다. “그 당시 이스라엘 온 땅에는 대장장이가 한 명도 없었다. 필리스티아인들이 히브리인들에게 칼이나 창을 만들지 말라고 하였기 때문이다”(사무엘기 상, 13장 19절). 히브리인들에게 칼이나 창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과장이겠지만 양 진영 사이에 상당한 기술적 격차가 있었다는 것은 알 수 있겠다.

하나 짚고 넘어가면 미디어에서 묘사되듯이 청동 무기는 철 무기에 닿자마자 부러지고 이런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오히려 청동 무기는 휘어질지언정 잘 부러지지 않는 반면에 초기 철기 무기는 잘 부식되거나 부러지는 단점도 있었다. 그리고 철은 녹는 점(1560도)이 청동(1030도)보다 높기 때문에 주조하기에도 어려움이 따랐다. 실제로 용광로는 그리스 시대나 되어야 만들어지고, 바람을 불어넣어 철의 녹는점을 낮추는 기술은 중세나 되어야 발견되었다. 초기 철기 시대에는 표면은 철이지만 안은 공기로 차 있는 해면철(sponge iron)만 청동과 비슷한 온도(900~1100도)에서 생산할 수 있었다. 이 해면철을 여러 번 두드리고 가열하여 연철(wrought iron)을 만들고 다시 숯불과 물로 가공해야 무기로 삼을 수 있는 철이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당연히 이 기술은 쉽사리 타 집단에게 이전되지도 않았고, 숙련된 기술자를 확보하는 것도 어려웠다. 이러한 이유로 대장장이는 고대 사회에서 나름의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는 집단이 되었고, 여러 신화에서 대장장이의 신은 꽤나 높은 서열을 차지하기도 한다. 이런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철기가 확산된 원인은 철광석이 청동의 재료인 구리보다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어 구하기가 쉬운 이유가 컸으며, 또 철기의 생산력은 청동이나 석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필리스티아인들에게 생포되는 히브리인의 판관 삼손(반 다이크)
필리스티아인들에게 생포되는 히브리인의 판관 삼손(반 다이크)

아무튼 바다 민족의 계열이던 필리스티아인들은 고대 하이테크 기술이었던 철기를 다루는 기초적인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히브리인들은 이를 알 수가 없었기에 늘 힘에서 밀리며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 와중에 다윗이 등장하여 필리스티아인들의 상징인 명장 골리앗을 죽이고 히브리 열두 부족을 규합하여 연합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BC 1000년경) 하였으니 히브리인들이 다윗을 아직까지 영웅으로 떠받드는 이유가 이것이다. 다윗은 가나안 토착민 여부스 인들의 땅인 시온(Zion) 산을 빼앗아 다윗성(City of David)을 세운다. 사방이 계곡과 골짜기에 둘러쌓인 언덕에 위치한 다윗성은 초기에는 작은 부족국가의 성만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건너편 산인 모리아 산에도 성을 쌓고 확장하면서 오늘날 예루살렘의 위치와 비슷해진다. 다만 연합 이스라엘 왕국이 새롭게 건국되었다하여 가나안 지역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필리스티아인들의 세력은 약해졌지만 멸망하지 않았고, 페니키아인들, 여전히 강대국인 이집트, 새롭게 대두한 아시리아(Assyria)도 있었다. 무역로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기에 막대한 부를 벌어들일 수 있었지만 그만큼 사방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 연합 이스라엘 왕국이었다. 필연적으로 수도는 무역로를 관장할 수 있으면서도 군사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위치가 되어야 했는데, 그곳이 예루살렘이었다. 다윗의 후손들은 예루살렘 지하로 물길도 끌어들여 방어하기 더 견고한 성들을 만든다(예루살렘의 단점은 수원(水源)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통로를 이용해 물을 조달해야 했던 것이다. 다윗은 이 통로를 알아내어 예루살렘을 공략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히브리인들이 훗날 수많은 강대국과의 공방전에서도 수도를 한동안 지켜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다.

다윗과 솔로몬의 카리스마에 의존하고 있던 연합 이스라엘 왕국은 솔로몬 사후 분열되며 남에는 유다 왕국이 북에는 북 이스라엘 왕국이 들어서게 된다. 상업이 발달한 북 이스라엘 왕국에는 온갖 나라의 사람들이 몰려들며 잡신들도 함께 데려와 일신교 전통은 금방 붕괴되었다. 유다 왕국은 그나마 일신교의 전통을 유지하려 하였지만 이도 쉽지 않았다. 종교가 지속적으로 왕국 내분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은 아시리아도 멸망시킨 강대국 바빌로니아에 의해 점령(BC 586) 되고 왕국의 히브리인들은 바빌로니아로 끌려간다. 이것을 바빌론 유수(Babylonian Captivity)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는 히브리인 공동체가 형성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전까지 히브리인들은 자신들을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하는 행동은 아브라함이 섬겼던 신의 가르침과는 영 다른 짓들을 하고는 했다. 그렇지만 바빌로니아에 끌려간 히브리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당시 가장 선진적인 메소포타이마 국가들의 문화와 결합하여 경전을 새로 편찬하고 그간의 교리를 집대성한다. 이것이 바로 유대교(Judaism)이다.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에 의해 히브리인들은 고향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된다(BC 516). 히브리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바빌로니아에 의해 파괴된 그들의 성전을 재건축하며 정체성을 새롭게 구축한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며(혈연적) 연합 이스라엘 왕국을 근원으로 하고(역사적) 유대교를 믿으며(종교적) 예루살렘 부근에 사는(지역적), 이 모든 요소가 화학적으로 결합된 ‘유대인(Jew)’을 탄생시키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유대인들의 뿌리는 여기에 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출현과 함께 예루살렘의 한 산에 불과했던 시온은 예루살렘을 통칭하거나,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을 가리키고, 유대교의 유일신이 다스리는 이상적인 세계를 지칭하는 말로 점점 더 확장된다. 더불어 이제 예루살렘은 유대인들과 실제적으로도 관념적으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도시로 거듭난다. 예루살렘은 그들의 신이 다른 민족과 구분하여 약속한 땅이었고 신에게 선택받은 민족인 그들이 종교적 징표로 반드시 점유해야 하는 성지였다. 유대인들은 약속의 땅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을 신이 자신들을 특별히 선택한 증거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신과의 첫 번째 언약이 지켜졌으니 또 다른 약속인 구세주, 즉 두 번째 다윗이 나타나 강대국에게 억압받고 있는 유대인들을 완전히 해방하고 지켜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등장으로 인하여 역사는 이들의 바람과 다르게 흘러간다. 그 이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다.

 

문화로 보는 역사이야기

이상우 칼럼니스트

-  서울출생
-  고려대학교 통계학과 졸업
-  제주교육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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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주민 2019-05-24 09:25:59
왜 안올라오나 했는데 올라왔네요. 잙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