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광풍 피해 건너가 정착한 ‘이카이노’ 일대 풍경 담겨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재일동포들의 삶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들은 경계인이었고, 일본의 부락민이 그렇듯 차별의 대상이었다. 제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이들도 그렇게 살아왔다. 그들은 일본 속에 한국을, 일본 속의 제주를 일궜다. 일본 속에서 오사카는 제주도나 마찬가지다. 그 중에서도 이카이노(猪飼野)는 재일동포들의 가슴에, 아니 제주출신들에겐 더 가슴에 와닿는 곳이다.
지난 2016년 78세 나이로 타계한 사진가 조지현은 줄곧 낮은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왔다. 그의 삶이 담긴 이카이노 일대의 이야기를, 부락민의 이야기는 일본 <해방신문>을 통해 전파되기도 했다.
조지현은 지난 2003년 사진집 <이카이노>를 펴냈고, 일본에서 관련 사진전도 열었다. 그가 줄기차게 담은 그의 이야기가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로 나오게 됐다. 한국어판 <이카이노-일본 속 작은 제주>라는 타이틀로 독자를 만나게 됐다.
이카이노는 재일동포들이 일군 땅이다. 1920년대 운하 ‘히라노가와’를 만들 때 조선인들이 모여 살면서 만들어진 땅이다.
그런 애환이 담긴 땅지지만, 지금은 이카이노라는 이름은 지도에 없다. 19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사라졌다. ‘이카이노바시’라는 버스 정류장만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조지현이 이카이노를 담은 건 1965년부터 1970년 사이였다. 그가 27세 때 이카이노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그는 말한다. 이카이노에 담긴 기억을 두고 “내 소년기의 자서전이고, 바로 내 청춘의 만가이다”라고.
사진집 <이카이노>는 조선시장(현재는 코리아타운)의 모습이 나오고, 히라노가와의 바닥에 쌓인 고철을 건지는 모습, 신발공장에서 버린 폐기물, 한복을 입은 무리들, 폐지를 줍는 이들, 두건을 쓰고 장례를 치르는 이들, 곳곳에 보이는 한글…. 이카이노는 곧 한국인의 땅임을 말한다.
그런데 왜 조지현은 일본에서 살았을까. 이유를 들자면 제주4·3이 있다. 1948년 4·3의 광풍을 피해 조지현 가족은 일본으로 목숨 건 탈출을 했다. 사진집 <이카이노>가 나오게 된 배경을 따지지면 4·3이 끼어들 수밖에 없다. 당시 일본으로 간 제주사람들은 2만명에 달했고, 이카이노로 온 제주사람은 1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죽음을 피해 온 제주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일본 속의 작은 제주를 만들어냈다.
조지현이 담은 이카이노의 얼굴은 어쩌면 차별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다름처럼 말한다.
“이카이노 촬영에 5년, 부락 촬영에 6년, 모두 11년간은 일본 속 2대 피차별 집단을 촬영했다. 인간의 차별이란 내 리얼리즘 사진의 모티브다. 이 사진집이 자이니치의 역사와 실존에 대해 다시 한 번 이야기할 수 있는 가교가 되었으면 한다.”
한편 <이카이노-일본 속 작은 제주> 사진전이 서울 SPACE22(전시 문의 ☎ 02-3469-0822)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전은 3월 5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