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로는 100년간 ‘제1거로’라고 불렸지”
“거로는 100년간 ‘제1거로’라고 불렸지”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8.11.0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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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청춘예찬’ 일기] <4> 거로마을

양영선 전 교장이 들려주는 양반마을 이야기
“마을은 두차례 불타면서 변화 겪으며 성장”
“자기 자신 깨달음 중요하다” 학생들에 강조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양반이라. 지금은 그런 신분개념은 없다. 모두 다 양반이다. 어느 집에 가든, 족보는 다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런 족보는 가짜도 많다. 족보를 사들여 이른바 ‘신분세탁’을 하곤 했다. 그렇다고 “양반이 좋다”는 식의 신분제 사회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들 사람인데, 양반과 천민을 가르는 게 합당한 일은 아닐테니 말이다.

양반과 양인, 천민. 교과서에나 등장하는 낱말이다. 역사시간이면 배워야 한다.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청춘예찬 일기를 써 내려가는 제주동중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제주동중이 위치한 화북동에 대한 이야기를 배워가기에 양반을 아는 것은 필수과정이다. 그런 얘기는 양영선 전 교장(70)이 들려줬다. 양영선 교장은 화북동 거로마을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거로마을에 살고 있다.

청춘예찬 동아리 학생들이 화북동 거로마을 출신인 양양선 전 교장으로부터 마을 이야기를 듣고 있다. 미디어제주
청춘예찬 동아리 학생들이 화북동 거로마을 출신인 양양선 전 교장으로부터 마을 이야기를 듣고 있다. ⓒ미디어제주

거로마을은 화북2동에 속한다. 일주도로를 경계로 바닷가에 있는 마을과 떨어져 있다. 사실상 화북1동과는 다른 마을인데 행정구역이 화북에 들어가 있다.

“거로마을은 두차례 큰일을 당합니다. 마을이 모두 불타버리죠.”

양영선 전 교장은 거로마을이 생긴 당시부터 설명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 마을에 큰 난리가 난 이야기도 곁들였다. 거로마을과 부록마을이 생기고, 이후 변화 과정을 학생들에게 전해주며 현재의 이름이 탄생한 배경도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거로에 앞서 생긴 마을은 부록이었다. 900년이 넘었다고 한다. 거로마을은 부록마을보다는 좀 뒤진 600년의 역사를 가진다.

그런데 1555년 을묘왜변이 일어나면서 역사가 오랜 부록마을보다 거로마을이 더 커지게 됐다고 한다.

“왜구가 쳐들어온 겁니다. 왜구는 화북의 고으니모루에 진을 치고 제주성을 공략했어요. 3일간 이어졌는데, 그 와중에 밤마다 거로와 부록마을로 와서는 불지르고 약탈을 해갔어요. 그들은 식량을 가지고 다니지 않고 약탈을 통해 가져간 겁니다. 마을은 사라졌고, 나중에 복원이 되죠. 제주성과 가까운 거로마을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거로마을이 더 크게 됐어요.”

당시 1000명이 넘는 왜구가 침입했다고 한다. 3일간 3차례의 화재를 당해 마을이 피해를 입었다. 500년 후에는 또다른 일로 마을은 불탄다. 바로 제주4·3이다. 1949년 1월 7일 밤 군경토벌대에 의해 마을 전체가 사라졌다고 했다.

“거로마을은 마을 위상이 높았는데 4·3으로 인해 옛날 문서들이 타버려서 아쉽죠.”

100년간 '제1거로'라고 불렸던 거로마을을 설명하고 있는 양영선 전 교장. 미디어제주
100년간 '제1거로'라고 불렸던 거로마을을 설명하고 있는 양영선 전 교장. ⓒ미디어제주

거로마을은 옛날 문서들이 많은 마을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거로마을은 19세기엔 ‘제1거로’라고 불렸다. 조선후기 100년간 최고 으뜸인 마을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거로마을은 관리들이 퇴직 후에 삶을 즐기던 전원마을이었다고 한다. 제주목관아가 있는 제주성과 가까운 위치여서 관리들이 많이 살았고, 이후 양반들의 중심 마을이 된다.

“마을 위상이 높아지자 거로라는 한자 이름도 바뀌게 됩니다. 길가 옆에 있다는 마을의 뜻이 차츰 바뀌어 훌륭한 인물이 많은 마을이라는 지금의 거로(巨老)로 바뀌죠.”

제1거로라. 대체 거로마을의 위상은 어느 정도였을까. 양영선 전 교장은 거로마을에 들어온 인물들을 일일이 설명했다. 여러 성씨 가운데 연주현씨인 경우, 입도 종손이 살고 있다. 제주도내 현씨들은 거로마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덧붙였다.

거로마을의 위상을 알 수 있는 사례를 보자. 김영집·김영업 형제는 과거 최종 시험에 동시에 합격을 하고, 제주향청과 제주향교를 이끌고 간 이들의 상당수가 거로마을 출신이었다.

지금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제주목사는 목관아에서 일을 처리한다면, 제2의 관아는 제주향청이었다. 제주향청엔 제주출신 15명의 ‘향임’을 두고, 여기서 제주도내 아전들을 관리했다. 이방·호방·예방·병방·형방·공방 등 6방의 관리를 책임졌다. 여기의 최고 지위는 유향좌수였고, 좌수 바로 밑의 지위는 유향별감이었다. 유향좌수는 지금으로 따지면 제주도의회 의장이 되며, 유향별감은 도의회 부의장 격이 된다.

거로마을 출신들이 100년간 유향좌수와 별감을 독식했다고 한다. 양영선 전 교장은 임기 2년의 좌수에 거로마을 출신 22명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제주향교의 중요직책도 거로마을 출신이 많았다. 제주향교는 제사 및 교육기능을 함께 맡는데, 최고의 지위는 도훈장이다. 도훈장은 교육을 책임지는 최고 관리이다. 이처럼 수많은 인재들이 거로에서 나왔다.

“향교에 일이 있으면 제주도내 각 마을에서 두 세명씩 나옵니다. 그런데 거로마을에서는 한꺼번에 30명에서 40명까지 참여를 했다고 합니다.”

역사는 있으나 세월은 변한다. 거로마을의 번성함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있다. 제1거로를 자랑하다가 현재는 추춤한 이 마을은 연북로가 더 확장되면 또다른 변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양영선 전 교장은 미래에는 화북1동과 화북2동이 각각 분리된 행정구역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전했다.

교육자로서 정년퇴임을 한 양영선 전 교장은 학생들에게 가르침의 선물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운이 좋다는 것은 태어난 기운과 지구의 기운이 잘 맞아야 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깨달음이에요. 아무리 좋은 차를 가졌어도 길이 좋지 못하면 달리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은 운전사입니다. 여러분들은 깨닫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겁니다. 자기 자신이 중요하다는 걸 잘 알아야 합니다.”

양영선 전 교장이 직접 집필해서 펴낸 '거로부록마을지'. 청춘예찬 아이들에게 읽어보라고 전달했다. 미디어제주
양영선 전 교장이 직접 집필해서 펴낸 '거로부록마을지'. 청춘예찬 아이들에게 읽어보라고 전달했다. ⓒ미디어제주

제주동중 친구들을 만난 양영선 전 교장은 최근 <거로·부록마을지>를 펴냈다. 그 책을 펴내는데 3년간 열정을 바쳤다. 그는 노력의 결과물인 마을지를 직접 청춘예찬 동아리에 전달했다. 학생들은 처음 접하는 양반마을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3년간의 열정을 모아 엮은 귀중한 마을지도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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