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확장 때 옮겨진 것으로 추정 … 영유아 2차 매장은 처음
공항 내 3곳 대규모 발굴작업 성과 없어 아쉬움 토로하기도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공항 쪽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창호지에 곱게 싼 무언가 10여개를 묻었다. 딱 봐도 유골을 묻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1973년(?) 공항을 막 밀어제낄 때다. 바로 밑에 확장할 때, 공항은 원래 작았는데 동서로 쫙 늘렸다. … 과일도 들었고, 한 다섯 사람 정도 온 것 같다. 내분 산들(버려진 산소들) 처리하는 거지. 가족이 없는 산인 거지. … 밭담 넘어 나무와 나무 사이에 묻었다. 파보면 바로 나올 것이다” (강모씨(1948년생) 증언, 4.3연구소 보고서).
10년만에 4.3 당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 4구가 발견된 장소를 지목한 증언이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밭을 구체적으로 지목한 증언이었기에 신빙성이 높았다. 이 곳에서 결국 4.3 당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 4구가 발견됐다.
발견된 유해들은 보존 상태가 제각각이었다. 성인 여성으로 추정되는 1구만 두개골과 팔, 다리 양쪽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성인 남성으로 추정되는 1구는 두개골과 다리뼈 한 쪽만 발견됐다. 10살과 2~3세 영유아로 추정되는 2구의 유해는 두개골만 확인됐다.
현장에서 유해 발굴에 참여했던 박근태 제주고고학연구소 조사연구실장은 2~3세로 추정되는 영유아 두개골에 대한 설명을 하던 중 “아래턱 뼈에 영구치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아직 이가 다 자라지도 않은 어린 생명이 희생된 데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오임종 4.3희생자유족회 회장 직무대행은 “치아도 제대로 안 나온 젖먹이 아이들이 휩쓸려 죽었다”면서 “당시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말해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울분을 토로했다.
그는 “학살당한 후에 종이에 둘둘 말려 이곳에 버려졌으니 2차 가해를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기구한 희생자들의 운명을 원통해 했다.
도두동 현장설명회에 앞서 공항 내 발굴 지점에서 유해가 발견되지 않은 데 대한 서운함을 토로하는 유족도 있었다.
강창옥 제주북부예비검속 유족회 이사(82)는 “공항 부지 내에서 집단 학살이 자행됐다는 증언이 있는데 매장지가 나오지 않은 것은 변두리만 파서 그런 것 아니냐”면서 “발굴 작업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성토했다.
한편 도두동 발굴 현장에서는 간단한 제례와 현장 설명회가 끝난 직후 본격적인 발굴 작업이 진행됐다. 차례대로 수습된 4구의 유해는 운구제를 지낸 후 4.3평화공원 봉안관으로 운구돼 자세한 감식 작업이 이뤄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