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6 21:11 (금)
“오름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죠”
“오름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죠”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8.03.15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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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름, 기행> 저자 중앙일보 손민호 여행기자에게 듣다

오름 이야기하려고 100차례 제주 오고가며 숱한 이들과 만나
​​​​​​​“제주에 사람이 많이 온다는 것, 더 이상 숫자 중요하지 않아”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기자가 기자를 취재한다? 흔치는 않다. 그렇다고 아예 없는 일도 아니다. 꼭 취재를 하고픈 기자가 있길래 서울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주출신이 아님에도 제주도를 너무 잘 아는 기자다. 중앙일보에서 여행 전문기자로 활동하는 손민호 기자이다.

그는 어렵게 취재를 허락했다. 취재를 거부한 게 아니라, 그를 만나러 시간을 내는 게 너무 빠듯했기 때문이다. 취재 전날도 “다음 주 제주에 내려갈 건데, 그때 뵈면 안될까요”라며 사정을 해왔다. 일본 취재를 마치고 한국 땅을 밟았던 그였기에 일이 쌓여 있었다. 그의 말에 “그러자”고 하려다가 마음을 다잡았다. 제주에서의 만남도 좋지만 서울에서의 만남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테니 말이다. 제주에서야 날은 또 잡으면 되는 일이니.

중앙일보 손민호 기자. 여행기자 경력만 따져도 13년이다. 일본 취재를 다녀와서 바쁜 그였지만 시간을 허락했다. 미디어제주
중앙일보 손민호 기자. 여행기자 경력만 따져도 13년이다. 일본 취재를 다녀와서 바쁜 그였지만 시간을 허락했다. ⓒ미디어제주

# 13년 여행기자의 ‘관록’

손 기자는 1998년부터 기자라는 직업에 뛰어들었다. 여행에 발을 디딘 건 2002년부터이다. 문학담당도 거쳤다. 그러다 다시 2008년부터 여행기자라는 본업(?)에 복귀했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행기자라는 타이틀만 무려 13년이다. 지역기자는 이런 때가 부럽다. 한 분야에 매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움이다. 1년이면 출입처를 바꿔야 하는 지역기자의 한계점과는 전혀 다르다.

전문기자라는 건 그래서 좋다. 그래야 제대로 된 글이 나온다. 그는 지난해 <제주, 오름, 기행>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따끈따끈한 신작은 아니지만 기자의 취재 욕구를 당긴 이유는 있다. 다름 아닌 제주에 대한 애정이며, 제주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담겨 있어서다. 공부를 하지 않고서는 쓰지 못하는 내용들이 책에 담겨 있다.

제주는 다들 안다고 한다. 모르면서도 안다고 한다. 몇 번 훑어보고 제주를 다 안다고 한다. 몇 번 훑어보고 제주 관련 책을 내놓기도 한다. 다들 전문가처럼 말한다. 제주사람보다 더 전문가처럼 말한다. 제주 관련 책은 몇 종인지 모를 정도로 쏟아진다. 계속 쏟아지고 있다. 좋은 현상인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제대로 된 제주를 알리는 데 역행하는 이들이 출판사이고, 작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다르다. 여행작가이기도 한 손민호 기자는 100차례 이상 제주를 왔고, 깊이도 다르다. 2016년 한해엔 무려 18차례나 제주에 오갔다.

<제주, 오름, 기행>은 제주에 있는 오름 40곳을 이야기하지만 오름만 담은 건 아니다. 오름에 담긴 제주의 역사와 맛, 멋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책 제목이 <제주 오름기행>이 아니라 <제주, 오름, 기행>인 모양이다.

# 고(故) 김영갑 ‘형님’과의 인연

손민호 기자와 오름과의 인연은 2003년부터 시작된다. 여행기자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을 때였다. 선배 사진기자의 말을 빌리면 “사진으로 유일하게 열등감을 느끼게 만드는 사람이 제주에 살고 있다”고 했다. 고인이 된 김영갑이다. 마침 김영갑씨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을 때였다.

“그를 형님이라고 불러요. 그는 죽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럴 걸로 알았어요. 하지만 그를 안지 18개월만에 떠났어요. 김영갑 형님과의 만남을 통해 오름을 알게 됐고, 제주를 오가게 됐어요.”

제주로 그를 이끈 건 김영갑이었다. 손 기자를 오름으로 이끈 것도 김영갑이었다. 그러다 2007년부터는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만드는 올레길에 빠져들었다. 제주올레 관련 기사를 가장 열심히 쓴 기자이기도 하다. <규슈올레>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올레길을 다니면서 해안에 있는 오름도 알게 됐죠. 오름과의 인연이 이어진 거죠.”

손민호 여행기자가 쓴 '제주, 오름, 기행' 책자의 표지 띠 사진이다.
손민호 여행기자가 쓴 '제주, 오름, 기행' 책자의 표지 띠 사진이다.

그런데 왜 그는 <제주, 오름, 기행>을 펴냈을까. 수많은 제주 관련 책이 나오는데, 그는 왜 ‘제주’라는 키워드를 달고 이야기를 하려 했을까. 이유는 최근 제주를 바라보는 현상과 맞물려 있다. 누구나 탐하는 제주도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영갑 10주기 추모기사를 준비할 때죠. 3박 4일을 제주에 머물땝니다. 새벽에 둔지봉을 둘러보고 내려왔어요. 그런데 다랑쉬오름 앞에 고속버스가 있는 겁니다. 단체 관광객들이 계단을 오르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용눈이오름도 그래요. 주변에 레일이 깔려 있죠. 마치 유원지가 된 것 같아요. 오름에 담긴 깊은 이야기는 모르고 동네 야산처럼 느끼는 게 안타까웠죠.”

# <제주, 오름, 기행> 2탄도 준비중

책을 내기로 했다. 마을 이장도 만나고, 향토사학자도 만났다. 만난 이들은 일일이 셀 수 없다. 때문에 <제주, 오름, 기행>은 단순한 글이 아니다. 제주인도 잘 모르는 역사 이야기도 그 책에 담겼다.

오름을 마치 집처럼 여겼다. 아침에도 오르고, 저녁에도 오르고 계절별로 오름에 올랐다. 새벽에 나서며 도시락을 들고 가기도 했다. 오름에서 잠을 잔 기억도 그에게 있다. 그에겐 오름은 친구였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제주, 오름, 기행> 2탄을 준비중이다. 그의 발길과 숨길이 담긴 더 많은 오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예정이다. 마침 출판사 대표도 제주도 출신이란다.

“눈물을 머금고 뺀 이야기도 있어요. 4·3 이야기도 하려다 만 것도 많아요.”

'제주, 오름, 기행' 2탄을 준비중이다. 제주의 또다른 이야기가 담길 예정이다. 미디어제주
'제주, 오름, 기행' 2탄을 준비중이다. 제주의 또다른 이야기가 담길 예정이다. ⓒ미디어제주

다음 책엔 어떤 오름이 담길까. 그와 오름의 인연을 맺게 해 준 김영갑은 어떤 생각일까. 5월이면 그의 13주년 기일이다.

오름에 대해 알게 해준 김영갑과의 깊은 인연은 책에서 보듯 그를 제주인보다 더 많은 제주 이야기를 하게 만들었다. 제주는 과연 무슨 멋이 있길래 그럴까.

“이국적이잖아요. 자연도 그렇지만 언어도, 음식도 이국적이죠. 해외에 온 느낌도 있죠. 여행 목적지로는 최곱니다. 동남아시아보다 비싸다는 이들도 있지만 동남아시아보다는 더 좋죠.”

제주에 발길을 내딛는 이들은 제주를 사랑하기에 그런 이들도 있지만 개발 이면의 ‘돈’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도 숱하다. 할퀴어서 상처가 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젠 너무 많은 사람이 제주에 온다.

“사람이 많이 온다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요. 머리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와서 얼마나 오래 있고, 돈을 많이 쓰느냐가 중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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