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통증으로 힘든데, ‘신경차단술’은 무서워요
만성통증으로 힘든데, ‘신경차단술’은 무서워요
  • 미디어제주
  • 승인 2018.01.1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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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진의 통증클리닉]<9> 신경차단에 대한 몇 가지 오해와 사실들

여느 날처럼 진료를 보던 중, 외래로 전화가 걸려왔다. 시술 중이어서 바로 받지 못하고, 담당 간호사분이 전화를 받아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환자분이 칼럼을 보고 통증 치료를 받으러 오고 싶은데, ‘신경차단’이라는 말이 무서워 내원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신경차단이면 통증을 못 느끼도록 신경을 끊어버리거나 없애버리는 것 아닌가요?”라며 환자분은 치료를 받기 전부터 걱정스러워하고 있었다.

칼럼 연재를 시작해 조금씩 글을 쓰게 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 중 하나가 ‘신경차단이 뭐에요?’라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같은 의사들에게도 문의가 들어오는 내용이라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필자가 어렸을 때 암 환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말기 암이었던 환자가 암으로 인한 통증이 너무 심해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마취통증의학과에 의뢰했던 것 같다. 의료진은 신경을 파괴하는 시술을 제안했고, 이에 따라 발병할 수도 있는 합병증을 듣고 환자와 보호자가 고민하던 장면이 인상 깊게 남아있다. 오래되어 기억이 흐릿하기도 하고 관련 지식이 전혀 없을 때였던지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통증 전문의나 의료계 종사자가 아닌 분들은 이 ‘신경파괴술’을 신경차단과 같은 것으로 오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오해는 통증을 느끼는 부위를 잘라 내거나 그 부위의 신경을 없애 버리면 통증도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실제로 한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가 진료 도중 진지하게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칼로 자르고 싶어요.”라고 말한 적도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심한 손가락 통증에 시달리던 환자가 마디마디를 절단하여 내원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안타깝지만 통증이 더 심해져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게 된다.

과거에는 치료 차원에서 통증 조절 목적으로 신경을 절제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통증 관문조절설’이 제시된 이후 신경 파괴나 절제는 여생이 3개월도 남지 않은 말기 암 환자가 어떠한 치료에도 통증이 조절되지 않는 경우 등 정말 어쩔 수 없는 때에만 매우 드물게 시행하고, 만성 통증 환자에게는 시행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1965년 이후 제시된 ‘통증 관문조절설(gate control theory)’은 무엇일까? 척수에는 통증을 조절하는 신경세포가 있고, 이를 따라 통증을 담당하는 가는 신경과 만지는 느낌인 촉각을 담당하는 굵은 신경이 모두 연결을 이루게 된다. 이때 통증을 조절하는 신경세포가 일종의 중간 관문 역할을 한다. 통각 신경에 의해 문이 열리고, 촉각 신경에 의해 문이 닫혀 뇌까지의 통증 정보 전달을 조절하는 것이다. 따라서 촉각 신경이 문을 닫아버리면 아무리 통각 신경이 신호를 보내도 뇌로 전달되지 않는다. 반대로 생각하면 통각 신경을 자르거나 통증 부위를 절단해 통증 정보를 없앤다고 해도, 촉각 신경이 문을 계속 열고 있으면 통증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경을 절단하면 잘린 신경을 재생하기 위해 신경전달 물질이 활발하게 분비돼 만지기만 해도 통증이 발생하는 신경감작이 일어나게 되는 역효과가 발생한다. 이 외에도 말초 신경을 절단하면 교감신경들이 자라나면서 통각 신경을 더 자극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모두 통증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질 수 있다.

신경차단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말초, 뇌, 척수 신경절, 뇌척수 신경, 교감 신경절 등에 국소 마취제나 신경파괴제 등을 주입하여 신경 내 자극 전도를 차단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통증클리닉에서는 국소 마취제를 주입한다.

차단술이라고 해서 신경을 자르거나 막는 것이 아니라, 잠시 쉬게 해준다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신경차단술로 신경 주위의 염증과 부종을 가라앉히면 주위의 근육과 혈관 속 피의 흐름이 좋아지고 신경이 회복되면 통증에서 해방될 수 있다. 물론 아픈 곳에 바로 맞는 것이 아니고 통증 유발점과 통증을 느끼는 곳이 다르므로 이를 통증 전문의가 보고 해당 부위에 주사를 맞아야 한다. 또한 통증이 주사 한 번에 없어졌다고 치료를 끝내서는 안 된다. 감기에 걸렸을 때 열이 잠시 떨어진다고 감기약을 바로 중단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서혜진의 통증 클리닉

서혜진 칼럼니스트

대구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통증 고위자 과정 수료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인턴 수련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레지던트 수련
미래아이 산부인과 마취통증의학과 과장
제주대학교 통증 전임의
現 한국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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