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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도면도 없이 어떻게 복원을 하나, 이건 죄악이야”
“설계도면도 없이 어떻게 복원을 하나, 이건 죄악이야”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02.1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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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주택을 살려낸 김석윤·고영림씨가 전하는 도시재생 이야기

탐라문화광장 조성 사업이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사실 광장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도 없이 진행된 게 탐라문화광장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여기에 핵심적 역할을 할 건물이 있다. 바로 고씨주택이다. 이 주택은 사라질 위기에서 목숨을 건진 건물이다. 이 건물에 유독 애착을 가진 두 분을 만났다.

“원형을 벗어났어. 너무 달라졌어.”

두 분의 외침은 같았다. 예전 건물은 온데 간데 없고 전혀 다른 모습의 건물이 만들어졌다. 사람으로 비유한다면 고씨주택은 얼굴을 아예 뜯어고친 성형미인이 됐다. ‘원형이 아니다’고 외친 이들은 김건축의 김석윤 대표와 사단법인 제주국제교류협회 고영림 회장이다.

탐라문화광장 조성 사업으로 철거 위기에 있던 고씨주택을 살려낸 주인공인 건축가 김석윤씨(왼쪽)와 고영림씨가 복원된 고씨주택의 문제점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김형훈

고씨주택이 세상에 드러난 건 <미디어제주>의 단독 보도였다. 지난 2014년 6월 고씨주택의 중요성을 보도했고, 철거 위기였던 고씨주택은 다행히도 살아나게 됐다. 당시 기자가 글을 쓰기는 했으나 글감을 준 건 김석윤 대표와 고영림 회장이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기사를 쓸 이유도 없었고, 고씨주택이 지금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고씨주택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됐다. 그래서 김석윤 대표나 고영림 회장은 아쉬움을 탄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지적하는 건 한 둘이 아니다. 엉망으로 만들어진 비늘판벽, 지붕선, 마당 등 지적을 하게 되면 끝이 없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요약을 한다면 ‘엉터리’다.

문제는 고씨주택 복원 사업을 진행하면서 설계도면도 없이 마구잡이로 했다는 사실이다. 두 분은 현장에서 고씨주택 복원 사업을 하는 이를 만났고, 그로부터 그 사실을 직접 들었다. 업자도 제주도가 아닌, 뭍에서 내려와서 복원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설계도면도 없이 건축행위가 가능할까. 제주도내에 있는 건물을 제주가 아닌, 뭍에서 내려와서 한다면 제대로 된 복원이 될까. 복원된 고씨주택이 엉망이 된 사연은 여기에 있었다.

“설계도 없이 일을 했다니, 설계없이 현실로 만들어지지 않지. 이건 죄악이야. 예의가 없는 거야.”

김석윤 대표는 드로잉을 하고, 그걸 바탕으로 땅 위에 작품을 얹는 건축가다. 건축가 입장에서 바라본 고씨주택은 그래서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설계도면도 없이 작업을 했다는 게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영림 회장은 고씨주택에 대한 기억이 많다. 원도심 탐험을 진행할 때 고씨주택을 포함시켜 중요성을 알린 인물이기도 하다. 살려야 한다며 행정을 향해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해왔다. 그러기에 누구보다 애착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는 예전엔 우물이 있었는데 그것도 없애버렸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살려낸 가치의 상실을 보는 그 느낌을 누가 알려나.

두 분은 고씨주택을 바라보며 복원이 아닌, 새로 만든 건에 대한 한탄을 쏟아냈다. 예전 고씨주택을 흉내만 낸 것이란다. 울담도 그렇다. 울담은 제주의 집을 보호하는 울타리로 사람의 키높이는 되는데, 고씨주택은 예전 돌담을 다 치워버리고, 아주 낮게 담을 둘렀다. 여러 기능을 한 울타리는 사라지고, 단순한 경계 개념의 돌담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고씨주택은 예전 주택을 흉내만 낸 엉터리 복원이다. 돌담도 사람 키높이가 아니다. 지붕선도 엉망이고, 지적을 하게 되면 끝이 없다. ©김형훈

“여기 돌담은 시간의 흔적도 없어. 기본에 충실하지 못해. 옛 것의 가치가 귀하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야 그게 재생인데, 무조건 빨리 마무리만 하려다보니 이렇게 된 거야.”

도시재생을 바라보는 행정의 시각이 문제라고 두 분은 지적했다. 고씨주택은 도시재생의 상징적 건물인데, 복원을 하면서 엉망을 만들어버렸다. 두 분의 지적을 더 들어본다.

“철학의 문제야. 바탕에 깔린 심성의 문제야. 돈에 맞춰 빨리하려는 토목공사야. 실적만 올리려는 행정의 태도라니까.”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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