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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백년대계인가? 치적 쌓기인가?
교육의 백년대계인가? 치적 쌓기인가?
  • 미디어제주
  • 승인 2016.07.0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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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강영봉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교육정책자문위원
강영봉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교육정책자문위원

그 어느 때보다도 변화와 개혁 또는 혁신이라는 담론이 교육현장에 회자됐던 때도 없었을 것이다.

2014년 6.4지방선거 이후 교육현장에 폭풍우 몰아치듯 교육혁신이라는 혹독한 한파가 온지 2년이 되었다.

그간 배움의 전당인 학교는 혼돈과 불안을 겪으면서도 드러내지 못해 속앓이만 하고 있다. 반환점인 이 시점에 혁신에 재물이 된 정책과 새로운 혁신정책이 어느 것이 교육백년대계의 길인지 냉엄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지탱하고 지속발전하려면 정도의 교육, 즉 우리의 교육이념인 홍익인간을 실현하는 백년대계의 교육이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교육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가는 오년대계, 지방은 사년 또는 길어야 십이년대계(교육감 연임 3회)”에 그치곤 한다. 정권(교육감)이 바뀌면 정책과 제도가 시도 때도 없이 바뀌어 학생, 학부모, 교원 모두가 교육의 노예로 이리저리 휘들리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백년대계라는 견지에서 진행된다면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정치·이념적 아니면 개인적 교육가치나 철학에 의해 순간적이고 즉흥적으로 바뀌는 것이 다반사다. 게다가 무조건 타자의 것이라면 배척하고, 좋은 것도 자기와 비교대상이 될까 깡그리 지워버리는 게 문제다. 또한 그들의 만든 제도에 문제가 생기면 또 다른 제도를 급조에 급조한다. 이런 과정에서 학생들은 정책의 실험 도구로 전락하고 교원들은 실험을 시행하느라 그들의 가야할 본연의 길을 찾지 못하는 비극적 현실의 연출되고 있다.

옛 성현의 말을 빌리자면 ‘1년의 계책으로는 곡식을 심는 것 만한 게 없고, 10년 계책으로는 나무 심시만한 게 없으며, 평생을 위한 계책에는 사람을 심는 이 만한 게 없다’ 바꾸어 말하면 교육이 잘못되면 백년이 허사로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이라는 것이다. 교육에 새바람을 불어 넣는다는 미명아래 교육의 근본 가치를 훼손하고, 자기 생각이 최고이며 마냥 옳은 것으로 착각하고 정도의 교육이라 대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교육에 관심을 갖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교육을 혁신 개혁한다며 그 관심의 도가 자기주의와 정치·이념에 편향되고 있음을 모르고 아집의 교육개혁과 혁신을 한다면 이보다 무서운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반환점에서 오류를 피하기 위해 숨 고루기가 필요하다.

지금의 교육은 백년대계의 교육은 고사하고 십년대계에도 못 미치는 사년대계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예에서 보듯이 어느 해는 실력으로, 어느 해는 추첨으로, 어느 해는 무시험으로 정책에 따라 입학을 결정했다.

그리고 국가고사, 입학고사, 예비고사, 수능고사 등 모두가 당대는 이 이상의 제도가 있을까 했는데 모두 혼란과 불신을 가중시킨 실패한 정책들이다. 이 모두가 치적 쌓기 정책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과 제도의 잦은 변경은 그야말로 학생, 학부모, 교원들만 멍들었던 것이다. 요즘 혁신하는 교육정책도 이와 다룰 바가 없다는 것을 한 번쯤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지난 반세기 동안 교육정책과 제도를 관심 있게 봐왔지만 요즘처럼 교육이 정치·이념에 휘들리고 조변석개로 바뀌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미래사회의 발전을 위해 개혁과 혁신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개혁과 혁신만이 능사가 아닌 시시비비 끝에 모두가 공감하는 개혁과 혁신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백년대계를 위한 교육유토피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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