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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 최남단 마라도에서 푸른 꿈을 키웠어요”
“국토 최남단 마라도에서 푸른 꿈을 키웠어요”
  • 조보영 기자
  • 승인 2016.02.06 07: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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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서 열린 김영주 군 졸업식
남은 재학생·신입생 0명…1958년 개교 이래 첫 휴교 결정
국토최남단에 위치한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는 2016년 김영주 군의 졸업식을 끝으로 1958년 개교 이래 첫 휴교에 들어간다.

일몰과 일출을 함께 볼 수 있는 섬, 끝과 시작이 함께 존재하는 국토 최남단 마라도에서 아주 특별한 졸업식이 열렸다.

5일 오전에 열린 제68회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 졸업식에는 단 한 명의 졸업생과 단 한 명의 교사, 단 한 명의 졸업생 어머니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많은 인파들로 모처럼 교실이 꽉 찼다.

좌용택 서귀포시교육장을 비롯해 강학윤 마라분교장, 김현기 마라파출소장, 송재현 노인회장, 김종신 마라리장, 김희주 마라리 청년회장과 마을 주민들도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그 감동의 순간을 함께 했다.

마라도내 유일한 학교이자 국토 최남단에 위치한 마라분교는 김영주 군의 졸업식을 끝으로 1958년 개교 이래 첫 휴교에 들어간다. 김영주 군은 5학년과 6학년 두 해 동안 마라분교의 유일한 재학생이었다.

이날 각계각층의 많은 인사들과 마라도 주민들이 영주 군의 졸업식을 축하하기 위해 자리를 가득 매웠다.

강학윤 가파초 마라분교 교장은 “졸업을 맞이하는 영주는 친구도 없고 선후배도 없이 홀로 2년 동안 외롭게 학교 생활을 했다. 그렇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국토 최남단 학교를 잘 지키고 떠난다는 뿌듯한 마음이 있으리라고 여겨진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영주가 졸업을 하고 나면 당장 마라분교에 재학생과 신입생이 한 명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휴교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1,2년 후에는 입학 예정 어린이가 있으니 학교 운동장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학습 보조강사로 활동하며 영주 군의 졸업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어머니 김은영(46)씨는 “지금까지 이 학교를 다녀가셨던 선생님들 한분 한분이 정성으로 가르쳐주신 덕분에 영주가 6년의 시간을 외롭지 않게 보내고 졸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지나온 시간이 녹록치만은 않았다. 1학년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영주 군은 두 명의 누나와 함께 학교를 다녔다. 2학년이 되어 누나 한 명이 전학을 갔고 4학년을 마친 후에는 나머지 한 명의 누나마저 졸업을 맞게 됐다. 5학년이 시작된 후 한동안 영주 군은 방황의 시기를 겪기도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어머니는 더 애가 탔다. 결혼 후 2001년, 해녀인 시어머니가 계신 마라도에 터를 잡고 영주를 낳았다. 그사이 자장면 집도 열었고 영주의 동생도 낳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영주 교육에 매달릴 여건도 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아들 영주가 스스로 이겨보겠다고 했다. 여느 아이들처럼 핸드폰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동네 삼촌들과 축구를 하면서 외로움을 이겨냈다. 6학년이 되자 게임 시간도 줄어들었고 예전처럼 장난기 가득한 밝은 미소의 영주로 돌아왔다.

영주 군과 그의 어머니 김은영 씨가 졸업식에 참석한 내빈들에게 감사의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김종신 마을 이장은 격려사를 통해 “60년대에 영주처럼 마라초를 졸업했다. 옛날에 졸업식하면 눈물바다였는데 그 사이 시대가 많이 변한 것 같다. 정문에 들어서니 옛날 생각이 나서 눈물이 핑 돌았다. 제가 울면 다 울까봐 참았다”고 감회를 밝혔다.

김종신 이장은 “영주 군이 2년 동안 혼자 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도 없이 같이 놀아주거나 같이 울어주는 애도 없이 고생을 많이 했을거다. 영주 군은 정신력이 아주 강하다. 다른 학교에 가도 모범생이 되고 공부도 잘 하리라 믿는다. 영주야 사랑한다”고 애정을 듬뿍 담긴 축하말을 남겼다.

물론 영주 군이 홀로 학교를 지킨 것은 아니었다. 1:1 수업을 진행하며 한 해 동안 영주 군의 전교과를 책임진 오동헌 교사는 누구보다 든든한 영주 군의 친구이자 보호자였다. 그래서인지 영주 군은 단 하루의 결석도 없이 100% 출석률을 자랑하며 선생님과 둘이서 텅 빈 교실을 지켜냈다.

오동헌 교사는 “영주는 학업 면에서도 전교과가 우수한 편이며 특히 수학과 과학에 관심이 많다”면서 “첫 만남 때에는 쭈볏쭈볏 눈치만 보고 잘 다가오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농담도 하고 몸장난도 먼저 걸어오는 등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고 말했다.

오 교사는 “혼자 있는 영주를 위해서 친구처럼 편안한 교사가 되려고 노력했다. 학력도 떨어지면 안된다는 생각에 더 세세하게 관심을 갖고 지도한 편이다. 막상 졸업을 맞게 되니 못해준 것만 생각나고 더 잘해줄걸 하는 아쉬움이 크다”면서 제자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내다.

재학생이 1명 뿐이었던 교실 벽면에는 졸업생 김영주 군만의 특별한 게시판이 걸려있다.

쑥스러운 얼굴로 내빈 앞에 선 영주 군은 “벌써 마라분교에서의 6년이 지났습니다. 6학년이 되어서 만난 오동현 선생님. 항상 짜증내고 투덜거리며 삐딱했던 저를 잘 보살펴 주시고, 같이 운동도 해주시고, 공부도 잘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6년 동안 배 멀미하면서도 저를 가르쳐주러 오신 원어민선생님, 피아노‧검도 방과 후 선생님도 감사합니다. 이 모든 고마우신 분들을 가슴깊이 새기면서 어디를 가서도 자랑스런 제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족 모두 사랑합니다”는 말로 졸업 소감을 대신했다.

영주 군은 마라도의 가장 큰 자랑거리로 ‘푸른 바다’를 꼽았다. 그리고 오는 3월이 되면 이 아름다운 마라도의 바다를 건너 제주시 중학교로 입학이 예정돼 있다. 그곳에서 더큰 세상으로 날아오를 그의 푸른 꿈을 응원한다.

마라도에서 바라본 제주도. 영주 군은 가장 좋아하는 마라도의 푸른 바다를 건너 올해 3월 제주시 중학교로 입학이 예정돼있다.

<조보영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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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네요 2016-02-06 12:10:22
참 흐믓함도 있지만 아쉬움이 더 많이 남네요~~
학교를 살리 방안이 필요합니다.
주거지 지원등을 통한 학교 활성화나 해양관광분야 전문 학교로의 탈바꿈이라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