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매번 얼굴을 바꾸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루 벌이를 위해 힘겨운 인생살이를 하는 이들의 일그러진 얼굴? 아닙니다. 내년을 준비하기 위해 얼굴에 칼을 들이미는 사람? 아닙니다.
매번 얼굴을 바꾸는 이들은 사람은 아닙니다.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는 이들이죠. 쉽게 말하면 그냥 ‘바닥’입니다. 한자어를 억지로 가져다 붙이면 ‘보도(步道)’가 될테죠.
여러분들도 잘 알 겁니다. 연말에 바닥을 걷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요. 왜 그리 뜯어대는 일이 많은지 모르겠어요. 멀쩡하던 바닥도 연말이면 새 얼굴을 합니다. 아니, 억지로 얼굴을 뜯깁니다. 성형을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뜯깁니다. 바닥은 그 얼굴을 그대로 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숱합니다.
왜 그런지는 다 아시잖아요. 연말까지 돈은 다 써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예산을 다 쓰지 못해 불용액 처리가 됩니다. 그러면 내년 예산이 깎이게 되겠죠. 그런 저런 이유로 애꿎은 바닥만 교체됩니다.
얼마 전엔 어떤 분이 제 휴대폰에 사진을 남겨줬어요. 알록달록한 바닥이더군요. 제주시 원도심 일대에 진행중인 바닥 공사였습니다. 사실 뜯지 않아도 될 거리인데, 알록달록 색상이 입혀진 바닥으로 둔갑을 했더군요.
바닥 공사는 수억원의 돈을 들여서 진행되는 곳도 있어요. 연말에 불용액 처리될 예산을 쓰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요. 차없는 거리를 만든다면서 죄다 뜯어냅니다.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하드웨어가 바뀌면 소프트웨어도 자동으로 바뀔 걸로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토목 공화국’이라는 핀잔만 듣게 되는 겁니다. 도심의 공간을 어떻게 바꾸고, 바닥을 걸으며 지나갈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남겨줘야 좋을까라는 생각보다는 그냥 바닥만 걷어내면 사람들이 찾고, 문화를 바꿔줄 걸로 착각을 하고 있죠.
자연스런 제주석으로 잘 깔린 바닥도 수난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삼성혈 내부엔 제주의 자연석이 바닥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쉬엄쉬엄 걸을 수 있어 좋습니다. 그런데 그 바닥이 뜯겨나갔습니다. 값비싼 돌일텐데, 그 자연석을 어디론가 치워버리고 흔히 보는 값비싼 바닥재를 까는 진풍견이 연출된 겁니다.
삼성혈의 제주 자연석이 뜯긴 사연을 이랬습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이동 편리성 때문이라고요. 그렇다면 자연석을 좀 다듬으면 될 일입니다. 그걸 굳이 다 뜯어낼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올 한해도 남은 건 달력 한 장입니다. 뜯길 바닥은 다 뜯겼고, 내년엔 어떤 바닥이 다시 바닥을 드러내고 성형수술을 할지 궁금합니다. 알 수 없네요.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