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혀 죽거나 옥살이해야 독립유공자로 인정되는 현실”
“잡혀 죽거나 옥살이해야 독립유공자로 인정되는 현실”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5.08.1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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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광복 70주년 ①제주의병항쟁 주도 인물 중 고작 4명 서훈
제주시 사라봉 공원 내 모충사에 세워져 있는 제주의병항쟁 기념탑.

제주시 사라봉 기슭의 모충사에는 제주의병항쟁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한말 일제의 침탈이 본격 시작되던 시기인 1909년 제주 지역에서 일어난 기유제주의병항쟁을 기리는 탑이다.

1909년은 을사늑약 이후 외교권 상실, 고종의 강제 퇴위, 군대 해산 등 시기에 맞춰 전국적으로 봇물처럼 들고 일어섰다가 해산되는 시기였다.

비록 의병활동이 잦아들던 시기에 뒤늦게 나선 감이 있지만, 호남 지역에서 항일의병투쟁에 앞장섰던 최익현과 기정진 등으로 이어진 위정척사 사상을 적극 받아들여 투쟁에 나선 것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제주의병에 가담했던 이들 중에는 유림과 평민, 하인 계층까지 포함돼 있었다는 점을 들어 신분을 초월한 탈계급적 민족해방원동의 성격이 더해졌다는 의미가 부여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해방 이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주의병항쟁에 참여했던 15명 가운데 독립유공자로 서훈된 이들은 고작 4명 뿐이다.

당시 의병항쟁을 주도했던 고승천과 김석윤, 그리고 김만석과 당시 두모리장이었던 김재형이 그 4명이다.

이들 중 의병장인 고승천과 김만석은 순국했고, 김석윤은 체포된 후 기소돼 10년 유배형을 받았다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김재형도 체포돼 내란죄로 3년 유배형이 선고됐다. 4명 모두 순국 또는 옥살이를 했다는 게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한 10여명은 대부분 타 지방으로 도주했거나 주민 가담을 독려했단 이유로 입건됐다가 방면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1909년 제주의병항쟁 관련 일제 기밀서류. /제주항일기념관 전시

결국 목숨을 내걸고 의병항쟁에 나섰음에도 붙잡혀 순국했거나 옥살이를 한 경우가 아니면 광복 후 70년이 지나도록 독립유공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특히 이중심의 경우 고승천과 함께 의병항쟁을 주도했던 인물이었음에도 아직까지 서훈을 받지 못한 상태다.

이에 대해 제주항일기념관의 김황재 학예연구사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참전유공자로 대우를 받고 있는 데 비해 의병항쟁에 참여했던 이들을 도주했다는 이유 때문에 서훈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불합리한 면이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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