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교실의 맨 앞을 차지하던 아이. 그 아이가 훌쩍 커서 이젠 50을 넘겼네요. 누구냐고요?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죠. 그런데 교실 앞자리만 제 것이었으면 좋게요? 새 학기만 되면 반에서 매기는 번호 역시 제게는 앞쪽 순번이었죠.
제가 학교를 다니던 육지에서는 키 순서대로 번호를 부여했어요. 키가 가장 작은 아이가 1번, 그 다음으로 작으면 2번, 그런 순서였어요. 당시 한반 학생이 60명을 넘겼고, 지금 글을 쓰는 이는 5~6번 정도를 했어요.
키 순서대로 번호를 정하는 건 추억으로 남기는 했으나 시계를 되돌려 당시를 떠올리면 모욕에 가까웠다는 생각도 들어요. 선생님이 “키 순서대로 서라”고 외쳐요. 그러면 애들은 나름대로 죽 늘어선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늘어선 애들 앞으로 다가와서는 ‘누구 키가 작은가’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선생님은 좀 작다 싶은 애가 뒤에 있으면 앞으로 당겨놓아요. 그렇게 해서 새 학기의 반 번호는 정해진답니다.
그런 면에서 제주도는 육지보다는 선진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주도는 육지와 달리 ‘가나다’ 순으로 번호를 정하잖아요. 가나다 순서로 성이 가장 앞에 나오는 ‘강’씨인 경우 매번 1번을 달아야 하는 운명이 주어지기는 하지만요.
어릴 때 키가 작은 건 유전적인 요소보다는 제대로 먹지 못한 점이 많았던 듯해요. 유독 병치레가 잦은 때문에 1년이면 대여섯 번은 아파서 학교를 가지 못했죠. 먹는 것도 부실해서 키 클 여유조차 없었어요. 그 때 아프지 않고, 잘 먹었더라면 지금처럼 작은 키는 아니었을텐데요.
<키가 작아도 괜찮아>의 주인공인 선다우는 어릴 적 저보다 훨씬 작은 모양이네요. 다우는 작아도 너무 작아서 초등학교를 1년 유예해서 입학하게 됐어요. 그래서 한 살터울인 여동생과 같은 학년이 됐지 뭐예요. 그럼에도 반에서 가장 작은 아이로 이름을 올리게 됐어요. 그런 선다우를 보는 같은 반 아이들은 놀려댑니다. 뭐라고 하냐구요? 선다우를 향해 ‘꼬맹이’라고 외쳐요. 선다우는 키가 작다고 놀림을 당하는 자신을 ‘불량품’으로 생각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한 공장 제품이라고 모두 같나? 불량품도 있어. 난 불량품이야.”
같은 부모의 배에서 나왔는데 여동생은 크고, 자신은 ‘꼬맹이’로 불릴 정도로 작으니 스스로를 불량품이라고 비하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느 날 다우네 반에 한 친구가 전학을 옵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박새이. 놀랍게도 새로 온 친구인 새이는 꼬맹이 다우보다 더 작답니다. 새이는 다우를 몰아내고 반에서 가장 키 작은 아이로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새이는 다우와 다른 점이 하나 있어요. 다우는 자신의 작은 키에 대해 매일같이 불만을 터뜨리고 ‘불량품’ 운운하지만, 새이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오히려 친구가 놀리면 되받아치면서 당당하게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사실 동화이니 새이와 같은 애가 있겠죠. 세상에 어느 누가, 특히 우리나라에서 작은 키로 당당하게 “난 괜찮아”라고 외칠까요. 더욱이 세상은 ‘키 작은’ 것에 ‘루저’라고 붙이기도 하잖아요. 한때 TV 프로그램에서 어떤 여성이 키 작은 남성을 향해 패배자라는 의미의 ‘루저’를 쓰면서 키 작은 사람들의 가슴에 못을 박은 일도 있었잖아요.
우리 애들도 그다지 크지 않아요. 그렇다고 막 작은 건 아니랍니다. 요즘은 어린애들의 성숙도가 유별난 면이 있긴 하죠. 큰 애 미르의 같은 반 친구들을 보면 입이 짝 벌어지기도 해요. 예전 미르는 동화속 다우처럼 ‘꼬맹이’로 불리기도 했으나 어느새 쑥쑥 크고 있네요. 둘째 찬이도 날마다 길이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아직은 아기랍니다. 중학생 아이인데도 아빠가 “이젠 아기가 아니네”라고 하면 완전 삐쳐요.
우리 애들은 다우처럼, 새이처럼 작았으나 이젠 쑥쑥 커갑니다. 그렇다고 엄청 길이가 길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아빠를 닮아서겠죠.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애들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이니까요. 적어도 키 때문에 ‘루저’라는 말은 듣지 않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