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벼움
현대인들은 외롭다.
인맥을 쌓기 위해 사람을 만난다. 군중속의 고독을 느낀다. 허허(虛虛)롭다. 가벼운 만남은 직선이지만, 그저 돌직구다. 포수의 미트에 꽂힐 때 소리는 요란하지만 타자의 배트는 헛돈다. 너무 빠르고 가볍다. 사실 인간관계라는 게 가족, 친지, 친한 친구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가볍다.
#2. 소오강호(笑傲江湖)
세상을 거만하게, 우습게 본다.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고 여기는 사람을 나는 업신여기고 없이 여긴다. 가벼운 만남을 통해 만난 가벼운 사람들과 가벼운 얘기를 한다. 시간소모다. 사람의 양보다 사람의 질로 승부하는 것이 좋다. 세상에 죄진 것이 없다면 꿀릴 것이 없고, 가벼운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시간소모할 일이 없다. 그저 세상을 편하게 산다.
#3. 날파리
집안에 어딘가에 음식물이 떨어지면 가끔 날파리가 기승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곤충을 싫어하는 집사람을 위해 한 시간에 걸쳐 소탕작전을 펼친다. 신문과 전기충격기를 동원해서 살육한다. 한 시간이 아깝지 않다. 배려다. 나와 친한 사람들을 위해 한 시간정도는 날파리를 잡아줄 용의가 있다. 너와 나 누군가 잡아야 한다면 내가 잡겠다.
#4. 냉정과 열정
장님이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동전통 앞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장님’
거지에게는 아무것도 베풀지 말라고 주장하던 한 사람이 동전통 앞의 문구를 바꾸어 주었다.
‘봄이 왔건만, 저는 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습니다.’
거지의 매출이 급상승했다.
글귀를 바꾸어준 사람은 독일의 철학자, 음악가, 시인이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니체였다.
관용을 베풀지는 않겠지만 세상과 사람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싶다.
#5. 집사람이 둘이다
조선시대처럼 축첩(蓄妾)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와 아내가 요즘 유난히 내 표정을 살피며 번갈아 말한다.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안 좋네.”
“화 났어? 표정이 안 좋네.”
피곤해서다. 어깨가 무겁다. 일이 많아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파고들자면 잠시 허허로움에 빠졌기 때문이다. 요즘 집에 늦게 들어가는 경우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아이가 커가는 모습과 아내의 수다를 둘 다 놓쳤기 때문이다.
집사람이 둘이라는 것은 잔소리를 방어하기 위한 강력한 갑옷과 방패, 심리적인 안정이라는 아이템을 구비해야한다는 얘기다.
#6. 주관이 있다는 것은 나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
주관(主管)이 있다는 것은 나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흐름에 편승하지 않으며, 속도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과 육신을 잃고 허허로움에 빠진다.
허허.
나를 설명해본다. 허허로움이 조금은 극복된다. 가슴이 뜨거운 것에 데었다가 차갑게 식는다. 주관의 힘이다. 설명의 힘이다. 나를 바라보고 바로 본다.
#7. 지구의 따뜻함, 호의와 만난다.
역시 지구는 살만한 곳이다. 내가 지구를 잘 선택했지. 이렇게 좋은 곳인 줄 우주에서 이미 알고 있었다. 가정이라는 지구에서, 내 표정과 나를 살피는 가족이라는 호의와 만난다. 가정은 발전소이자 충전소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