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6 12:01 (금)
슬픔을 간직한 섬 사이판(Saipan)
슬픔을 간직한 섬 사이판(Saipan)
  • 조미영
  • 승인 2015.03.02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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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는 여행자 조미영] <14>

3·1절이 지나고 있다. 96년 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저항 하던 역사를 기억하고자 곳곳에서 기념행사들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오늘은 그저 휴일일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잊혀 질 때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념일을 정해 그날의 기억을 되새기곤 한다. 뼈아픈 과거를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가끔은 과거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사이판 섬은 북마리아나 제도 자치연방의 주도(主都)로 자치연방 내 16개의 섬 중에 가장 규모가 크다. 산호로 둘러싸인 에메랄드 빛 해변으로 인해 휴양 관광지로 손꼽힌다. 그래서 한때 우리나라 신혼부부들의 허니문 여행지로도 인기가 많았었다. 하지만 이 섬은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곳이 아니다. 그 내부를 조금만 둘러봐도 곳곳에 생채기가 남아있는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사이판이 세상에 등장한 것은 1521년 에스파냐인에 의해서다. 그 후 수세기동안 에스파냐의 통치를 받다가 근세기 독일, 일본, 미국의 점령 하에 놓이며 세계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통치하에서 각종 군수품의 조달창고 역할을 하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통치하에서는 태평양 전선의 공군 기지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희생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더욱이 사탕수수농장에 강제 노역을 위해 끌려와 있던 우리 동포들의 삶은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럽다.

하지만 사탕수수농장을 운영하며 군수품을 조달하던 남양흥발의 경영자 마츠에하루지는 슈가킹(Sugar King)이라는 별칭을 갖고 버젓이 도시 안에 동상까지 세워져 있다.

이런 무거움 때문인지 도착 첫날부터 잠을 설치더니 둘째 날에는 난생 처음 겪는 엄청난 가위 눌림에 힘든 밤을 보냈다. 더욱이 몸살기운까지 겹치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런 개운치 않은 컨디션이었지만 일정을 멈출 수는 없었다. 꾸역꾸역 조사를 따라 나섰다.

우리 팀이 다닌 곳은 일반 관광지가 아닌 전쟁유적이다. 숲 풀을 헤치며 정비가 안 된 흔적을 찾거나 인적이 뜸한 유적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때론 음습함과 오싹함에 머리가 쭛빗 거린다. 곳곳에 전쟁의 상흔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앙상히 뼈대만 남긴 건물 혹은 총탄의 흔적까지 바로 엊그제의 일처럼 선연하다. 멈춰 버린 총구의 오래된 녹물이 시간을 일깨워주기 전까지 전쟁터에 서있는 착각을 하게 한다. 몸도 마음도 참 무거워진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씻어내는 것은 눈이 시리도록 파란 바다이다. 섬 어디에서건 조금만 나가면 이 같은 바다를 볼 수 있다. 멀리 산호장벽을 두른 탓에 잔잔한 물결만이 해안으로 밀려온다. 짙은 노을과 함께 아이들의 물놀이 장면이 평화롭다. 그들에게 과거는 어떻게 설명되고 있을까? 인터뷰를 위해 만난 차모르인 어르신만이 그저 막연하게 기억할 뿐이다.

그러나 반대로 과거를 끈질기게 붙잡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사이판 섬 곳곳에는 일본인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비가 수도 없이 많이 세워져 있다. 더욱이 만세절벽에 이르면 절정에 달한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과 대치하며 마지막 항거를 하던 일본인들이 전투에서 패배한 후 항복하는 대신 절벽에서 만세를 부르며 뛰어내린 곳이다. 그래서 그들을 위무하기 위한 위령비가 다양하게 세워져 있다. 그리고 해마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 애도의 뜻을 전한다. 일본 천황부부도 이곳을 찾아 애도하였다 한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단체로 버스를 타고 온 이들이 위령비를 찾아 가이드의 설명을 듣곤 하였다. 아쉽게도 그들은 전쟁을 반성하기보다는 패배의 아픔에 슬퍼할 뿐이다. 세계 정복의 야욕이 정당화되지 않을까 적잖이 우려스러울 지경이다. 잉크 빛 시퍼런 바다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야 했던 그들의 희생을 밟고 또 다른 탐욕이 꿈틀거리는 듯하다.

더욱이 이들 중에는 우리나라의 노무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탕수수밭에 강제노역을 위해 끌려왔다가 결국 전쟁의 총알받이로 사라져간 이들이다. 그들을 위한 희생비가 민간단체에 의해 세워지긴 하였으나 이를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더욱이 사이판을 찾는 관광객 중에 이를 찾아가는 이는 더더욱 없다.

한쪽에서는 끈질긴 역사 왜곡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우리의 자세는 너무도 안이한 느낌이다. 무슨 날만 되면 행사장에서 일회성 이벤트를 남발할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과거사 정립으로 우리의 역사를 올바로 기록해야 한다. 과거는 미래를 반추하는 거울이다. 과거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우리 안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진 우리 역사의 편린들도 제대로 추슬러지길 바란다.

 

<프로필>
전 과천마당극제 기획·홍보
전 한미합동공연 ‘바리공주와 생명수’ 협력 연출
전 마을 만들기 전문위원
현 제주특별자치도승마협회 이사
현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이사
프리랜서 문화기획 및 여행 작가
저서 <인도차이나-낯선 눈으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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