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라고 하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솔직히 말하면 일제강점기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족했으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했다. 오죽 했으면 일제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아 지금까지도 ‘일제청산’이라는 말이 나올까.
우리 곁에 있는 현재의 일본은 어떤가. 위안부를 부정하는 건 물론, 일제강점기는 침략이 아니라고 떠들어대는 등 갖가지 작태를 서슴지 않는 그들이다.
그런데 최근 제주시 탑동을 지나면서 뒤통수를 맞은 게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라졌던 용어가 등장한 것이다. 바로 ‘칠성통’이다. 탑동 인근에 복층주차빌딩을 지으며 그 건물 이름을 ‘칠성통 공영주차장’으로 달았다.
왜 ‘칠성통’이라는 가로명을 붙였을까. 궁금해서 제주시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 제주시 담당자는 “옛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기자는 더 궁금해서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통이라는 건 일본식 명칭 아닌가요?” 이에 대해 담당자는 “국립국어원의 자문을 거쳤다. 우리말에 접미사로 ‘통’을 쓰는 게 있다”고 말했다.
기자는 국어는 솔직히 잘 모른다. 전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는 좀 안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국립국어원은 역사를 취급하는 곳인지 묻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다.
왜 제주시가 국립국어원에 자문을 했는지 알고 싶지 않다. 제주시가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국립국어원에 자문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주시 담당자의 말처럼 우리말에도 ‘통’이라는 게 있다. 우리말에 쓰이는 ‘통’은 ‘거리’라는 뜻의 접미사이다. 국립국어원 <표준어대사전>에 이같은 통의 의미가 담겨 있는 건 맞다.
그러나 잘못 알고 있는 건 ‘통(通)’은 일본이 어느 지역을 가를 때 쓰던 이름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통’이라는 글자를 쓰긴 했지만 지역을 가르거나, 가로를 구분할 때 ‘통’을 쓰진 않았다.
조선시대 지방행정체계는 부(部)-방(坊)-계(契)-동(洞)이었고, 큰 골목은 ‘골’이라고 불렀다. 이런 지방행정체계는 일제강점기 때 손질이 가해진다. ‘통(通)’과 ‘정(町)’이 도입된다. 그때부터 칠성통과 동문통 등이 불리기 시작했다. ‘통(通)’과 ‘정(町)’이 사라진 건 1946년 10월부터이다.
<동아일보> 1946년 10월 4일자의 기사를 보면 “서울시에서는 종래의 일본색 정명을 일소하고 10월 1일부터 순수한 우리 조선식으로 개정하였는데 이번 개정된 골자는 종래의 정(町) 정목(丁目) 통(通)을 각각 동(洞) 가(街) 로(路)로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고 돼 있다.
이 기사를 보면 통(通)이 일본식 지역명칭인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후 ‘통(通)’은 전국적으로 사라졌다. 현재 사람들의 입에는 ‘통(通)’이 오르내릴지 모르겠으나 행정에서 일제식 용어인 ‘통(通)’을 자신있게 쓰는 곳은 전국 어디에도 없다. ‘통(通)’이 일제 잔재라는 사실은 지금 일본의 도로를 들여다보면 쉽게 알게 된다.
역사는 제대로 알고 말을 해야 한다. 왜 일제가 조선의 행정체제를 없애고 자신들의 행정구역 명칭을 들여왔을까. 그건 바로 착취의 수단이었다.
제주시 관계자가 ‘옛 추억’을 끄집어낸 것은 더욱 할 말을 잃게 한다. ‘옛 추억’은 다름아닌 일제로 되돌아가자는 의미밖엔 안된다. 비록 우리 세대가 일제 지역 명칭인 ‘통’을 쓰긴 했으나 제대로 모르고 쓴 것뿐이다. ‘통’은 옛 추억이 결코 아니다.
제대로 쓴다면 ‘통’이 아니라 ‘로’가 아니던가. 왜 사라진 일제식 용어를 되살리려 하는지 알 수 없다. 10여일이면 3월 1일인데, 정말 속상하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일본을 무턱대고 비판하기보다 우리 자신부터 먼저 가다듬는게 우선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