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지슬’이란 제목의 영화가 개봉되었다. 지슬은 제주어로 감자란 뜻이다. 영화를 보지 않으면 지슬에 담겨진 의미를 알 수 없다. 영화를 보고 나면 지슬에 담겨진 의미가 새겨진다.
서울에서 교육받을 일이 있어 2주 간 부모님 집에서 머물렀다. 집이라야 변한 건 없다. 부모님이 있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화초들도 그대로다. 없는 것은 나와 누나뿐인데, 그 빈 공간은 꾸역꾸역 의미 없는 물건들로 채워졌으니 손해인지 이득인지 모르겠다.
교육을 마치고 저녁 즈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커다란 솥단지에는 고구마가 푹푹 삶아지고 있다. 식구는 3명이고 나는 고구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고구마를 좋아하고, 아버지는 고구마를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36년을 같이 살았는데 고구마의 호오(好惡)에 대해 아버지의 성향을 모르는 것은 왜일까?
하지만 당최 고구마의 양이 너무 많다. 나는 묻는다.
“엄마, 고구마 이렇게 많이 삶아서 뭐하게? 먹을 사람도 없잖아.”
어머니는 말투만으로 넉넉함과 이유를 함께 느낄 수 있게 대답한다.
“남대문 시장에 야채 파는 할머니들이 계시는데 그 할머니들 가져다주려고 삶는 거야. 네 아빠는 만날 이렇게 그 할머니들 주려고 이것저것 챙겨준다. 돌아가신 네 할머니 생각나서 그러는 지도 모르고 말이야.”
그랬었구나. 아버지는 새벽에 나갈 때마다 비닐봉지에 할머니들의 주전부리를 챙겼던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주전부리를 준비하는 데 적극 동참하고 응원해주었던 것이다. 36년을 같이 살았는데 왜 아버지와 어머니의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과를 몰랐을까?
문득 두 번째 직장에서의 사건이 생각난다.
신규공직자로서 내 업무는 노점상 단속과 불법광고물 정비였다. 혈기 왕성한 이십대 중반. 시장 앞의 할머니들 노점상은 세금을 내고 영업하는 시장 상인들에게는 눈의 가시였다. 결국 상인들은 집단 민원을 제기하였다. 나는 읍사무소 직원 10여명을 데리고 투사라도 된 양 시장 앞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야채며 과일이며 모두를 관용차 트럭에 쏟아 부었다. 할머니들은 필사적으로 물건을 빼앗기지 않으려 하고 차에 있는 무와 당근, 사과를 다시금 가져오려 했다. 나는 할머니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직원들에게 차를 둘러싸 바리케이트를 치게 했다. 그리고는 몇 남지 않은 노점의 물건들도 차에 던져댔다.
그 때 사건이 발생했다. 20kg 정도 되는 고춧가루 봉지를 들어 차에 던지려고 할 때 내가 그것을 놓쳐버린 것이었다. 몸에는 고춧가루가 뿌려졌다. 노점 바닥에는 고춧가루가 낭자했다. 할머니는 절규하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고춧가루를 빗자루로 쓸어 담았다. 할머니는 그 와중에도 쓸어서 담으면 조금도 못 쓴다며 제발 그냥 놔두고 가라고 했다. 나는 다시 팔 수 없게 만들기 위해 더욱 세차게 고춧가루를 쓸어 먼지까지 덮어댔다.
할머니의 외침이 들렸다. 몸에 둔탁한 것이 부딪혔다. 아니 할머니가 던진 무언가에 맞은 모양이다. 고구마. 고구마였다. 밤고구마. 쓴 웃음이 나온다. 이거 삶아 먹으면 맛있었겠는 걸?
노점은 쉽게 정비되었다.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상당히 오랜 기간 악몽에 시달렸다. 노점상은 불법이다. 세금을 내지 않는 악당이다. 계속 되뇌었다. 하지만 악몽은 계속되었다. 사표를 냈지만 수리되지는 않았다. 마침 정기인사가 있을 겨울이었다. 나는 다른 부서로 발령 났다.
아버지가 사소함을 챙겨주는 할머니들과 내가 갈아엎은 노점상의 할머니들. 이름과 성은 다르지만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또한 할머니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아버지나 나나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고구마가 다 삶아졌는지 나에게 말한다.
“이래 뵈도 이거 밤고구마야. 한 번 먹어봐.”
밤고구마였구나. 어머니는 내가 싫어하는 음식도 꼭 먹어보라고 권한다. 수십 년간 변함이 없다. 고구마를 좋아하진 않지만 이번에는 하나를 덥석 집어 먹는다.
“엄마, 이거 완전 진짜 밤고구마네.”
“거봐! 엄마가 못생겨도 밤고구마라고 했잖아!”
밤고구마를 두고 철학자들은 단어를 해석할 것이고, 과학자들은 성분을 분석할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구황작물로서의 기능을 떠올릴 것이며, 역사학자들은 밤고구마가 세계 역사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서술할 것이다.
나는 그렇다. 밤고구마에 의미를 부여한다.
밤고구마를 집은 내 손을 보며, 아버지가 내일 새벽 건내줄 할머니들의 손을 생각할 것이다.
뜨거운 밤고구마를 후후 불며, 차가운 시장 할머니들의 손이 뜨거운 밤고구마와 아버지의 마음으로 녹는 걸 상상할 것이다.
밤고구마의 껍질을 힘겹게 벗기며, 밤고구마에 스며 있는 내가 노점상 할머니들에게 한 미안함과 속살을 고통스럽게 바라볼 것이다.
밤고구마를 먹으며, 어머니의 지치지 않는 음식 권유를 못 들을 순간도 언젠가는 오리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밤고구마를 다 먹고 난 후 손을 씻으며, 다음에 먹을 때는 베푸는 삶이 아닌 손해 보는 듯한 삶을 살아야지. 차갑기 보다는 가끔은 뜨겁게 살아야지. 힘들더라도 내 잘못을 스스로 벗기어 바라봐야지. 이 모든 게 제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깨끗이 씻고 훌훌 털어 다시금 시작해야지.
이렇게 의미를 부여한다.
적어도 나에게 밤고구마는 이런 의미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