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過猶不及)과 미침
과유불급(過猶不及)과 미침
  • 홍기확
  • 승인 2014.12.18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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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59>

 메뚜기도 한 철이다. 개구리가 겨울잠을 자러 갈 시간이었다. 개구리는 올 한해 친하게 지냈던 메뚜기에게 상냥하게 말한다.
 “올해 너와 함께 있어서 즐거웠어. 올 봄에 너무 시끄럽게 울어댄 것 미안하고 내년에 만나자. 겨울잠 자고 올게. 넌 정말 좋은 친구야!”
 메뚜기는 말한다.
 “메뚜기는 한 철인데? 친절하게 내년을 기약하는 건 좋지만, 난 내년이 없어. 듣기 좀 거북하다.”

 개구리는 자신의 잘못을 이내 깨닫는다. 메뚜기에게 사과를 하고는 겨울잠을 자기 위해 자리를 모색한다. 몇 달 동안 쉴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밤이 되었다. 지친 개구리는 잠시 숨을 돌릴 겸 달빛 아래에 웅크려 앉았다. 그러다 달빛 아래에서 바쁘게 춤을 추는 하루살이를 만났다. 하루살이는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음에도 춤을 추는 걸 멈추지 않았다.
 개구리는 안타까움에 툭하고 말을 던졌다.
 “하루살이야. 피곤할 텐데 내일 다시 춤을 추는 게 어떠니?”
 하루살이는 숨을 헉헉대며 개구리에게 짧게 대답했다.
 “뭐라고? 내일? 그게 뭔데?”

 다른 이의 인생에 대한 쓸데없는 참견과 과잉친절은 동급이다.

 어느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어난 일이다.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이런! 대뜸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말한다.
 “고객님, 주문하시겠어요?”
 참으로 거북하다. 내 돈 내고 밥 먹으로 왔는데 이렇게 마음이 불편할 수 있다니! 남자든 여자든 무릎을 꿇는다. 무릎을 꿇은 채로 주문을 받으니 직원과 눈높이가 맞아서 아주 기분이 더럽고 속상하다. 우선 한번은 참는다.
 피클이 떨어졌다. 수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불러 아님 참아? 세상은 내게 말했지. 남에게 무릎 꿇는 것은 비굴한거다. 드라마는 내게 말했지. 남이 무릎 꿇으면 무조건 부탁을 들어주고 용서하라. 고민 끝에 나는 부탁을 하지도 받지도 않는 상쾌한 선택을 한다. 피클을 추가 주문하고 직원이 오자 잽싸게 말했다.
 “무릎 닳아요. 제발 서서 말씀해 주세요.”
 직원은 피식 웃는다.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 불편하냐? 사실은 나도 불편해, 짜식아.
 우리나라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무릎을 꿇고 주문받는 회사는 두 군데가 있었다. T사와 B사. T사는 1992년 한국에 들어왔으나 2009년 국내 대기업에 인수되었고, 미국 본사는 2014년 사모펀드에 매각되었다. 또한 B사는 1995년 한국에 들어왔으나, 2008년 미국 본사가 부도났고 근근이 운영되던 한국지점들은 2010년 국내 기업에 인수되었다.

 과잉친절의 역설이다.

 세상이 빨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네트워크화되며 소위 인맥관리를 해 나간다. 남의 기분을 맞추어준다. 이 곳에 가면 이 곳의 사람들과 동화되고, 저 곳에 가면 저 곳의 사람들에 맞추어간다. 빠르게 닮아 간다. 자신을 잃는다. 거미줄처럼 얽힌 느슨하고 어설픈 인맥의 네트워크가 없이는 자신을 설명하지 못한다. 마음은 불편해도 겉모습은 웃고 있다. 감정노동자는 모든 현대인이다. 표준적인 친절과 간섭이 몸에 배었다. 표준어를 쓰고 표준적인 행동을 하며, 표준적인 인간이 되어간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현대사회에서 표준은 결코 낮아지지 않는다. 꾸준히 높아져만 간다!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같아지기 위해 삶의 4분의 3을 빼앗기고 있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과 동화되기 위해 삶의 4분의 3이나 약탈당한다는 것이다.

 과잉친절이다.
 말을 극도로 친절하게 해도, 남의 입장을 아무리 이해해도 나는 남이 아니다. 남이 될 수 없다.
 고객의 입장에서 행동을 극도로 친절하게 해도, 받아들이는 고객은 다 나름의 생각이 있다. 고객도 고객 나름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지나친 것이나 미치지 못하는 것이나 둘 다 똑같다.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볼 수 없다.
 우리가 남들의 인생에 지나치게 자신의 생각을 더하고(참견[參見]) 있지는 않은지, 거짓이 보일 만큼 과도하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볼 일이다.
 
 화톳불. 인간관계는 화톳불이다.
 불이 약하다고 땔감을 쓸데없이 많이 넣으면, 활활 타올라 열기를 견디기 힘들다. 오히려 화톳불에서 더욱 더 물러나게 되어 화톳불과 멀어진다.
 불이 따뜻하다고 해서 고마우면 되었지 불을 뜨거운 마음으로 안아준다면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한다. 안김을 당한 화톳불도 편한 마음은 아닐 것이다.
 
 지나친 것이나 미치지 못하는 것이나 둘 다 똑같다. 어설픈 건 싫다. 나는 미치고 싶다. 하지만 표준적으로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나만의 방법으로 미칠 것이다.
 단지 매력 있게 미칠 것이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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