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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성격과 제주 풀뿌리 자치
[기고]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성격과 제주 풀뿌리 자치
  • 미디어제주
  • 승인 2014.12.0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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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그리스협회 유재원 회장(한국외대 그리스어과 교수)

내일(9일) 오후 7시 30분 제주벤처마루 빌딩 10층 세미나실에서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성격과 제주 풀뿌리 자치’라는 제목의 특강이 마련됐다. 이날 특강은 주관은 제주대 리걸클리닉센터와 제주씨올 네트워크, 한국그리스학 연구소 등이 마련했다. 초청 강사는 한국그리스협회 회장이면서 한국외대 그리스어과의 유재원 교수가 나선다. 유재원 교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문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달변과 해박한 지식의 명강의로 유명하다. 제주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원론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미디어제주>는 내일 강연을 앞두고 유재원 교수의 강의를 지면을 빌어 기고 형태로 요약해 싣는다.

  유재원 한국그리스협회 회장.

# 폴리스의 자연 환경과 그 영향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는 뒤쪽은 높고 거친 산으로 꽉 막혀 있고 앞쪽은 바다로 연결된 곳에 세워졌다. 각 폴리스는 정치와 종교, 문화, 경제의 중심인 도심지와 농부들이 땀 흘려 농사를 짓는 작지만 기름진 경작지, 목동들의 양과 산양을 치는 고지대의 목초지, 배와 건축 자재로 쓸 목재를 얻을 수 있는 숲이 우거진 산기슭, 황량한 산꼭대기, 바깥 세계와 소통하고 교역을 하기 위한 바다로 나아가는 통로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런 고립된 자연 환경은 각 폴리스가 독자적인 고유의 문화와 정치를 가꾸기에 이상적인 조건을 제공했다. 또 도심지와 농촌, 산과 바다로 이루어져 있는 폴리스의 구성은 어느 정도 자족적이고 균형 잡힌 공동 생활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그리스의 자연 환경은 그리 풍요롭지 못했다. 농토는 작은 데에다 강우량도 많지 않고 비탈이 심해 완전한 식량의 자급자족이 불가능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문제를 검소하고 부지런한 삶의 태도와 교역으로 해결했다. 고대 그리스 폴리스들 자체가 상당히 서로 다른 자연 환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폴리스 사이의 교역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활성화되어 있었다. 특히 다양한 고도에 위치한 폴리스들은 제각기 특산품을 가지고 있어 교역을 촉진했다.

식량 확보는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이었기에 그리스인들은 목숨을 걸고 먼 거리까지 바닷길을 개척하는 모험을 마다하지 않았다. 또 인구 과잉 문제를 해결하고 교역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일찍부터 해외 식민지를 개척했다. 이런 과정에서 그리스인들은 선진 문화권을 여행하며 앞선 지식을 보고 현명해져서 귀환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해양 문명을 일궈 낼 수 있었다.

# 폴리스 문명의 특성

그리스인들은 다양한 체제의 폴리스들에서 각기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누리며 살았고, 또 항해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한 까닭에 문화 상대주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이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이집트 문명이 가지고 있는 체념적 정체 상태와도 다르고, 중국이나 인도의 농촌 문명이 갖고 있는 완고성과 폐쇄성과도 다르며, 현대 도시인들의 근시안적 편견과도 다르다. 그리스 폴리스 문명의 특성은 한마디로 다양성에 대한 존중하고, 인간 중심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 폴리스의 의미

그리스인들에게 폴리스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1) 우선 폴리스는 정치-경제-사회-종교 체제를 의미했다. 같은 그리스의 폴리스라고는 하지만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정치-사회 체제는 거의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특성을 띠고 있었다.

2) 폴리스에 사는 시민들의 집합체: 폴리스 앞에서 말하다. 폴리스에 호소하다. 폴리스가 원하지 않는다.

3) 폴리스적 삶의 방식과 그 가치관을 공유한 생활 공동체

이런 의미에서 폴리스의 일은 모든 시민들의 관심사였고 또 당연히 관심사여야 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기 일에만 신경을 쓰고 폴리스 일에는 무관심한 시민을 ἰδιότης, 즉 idiot(천치)라고 물렀다. 따라서 각 시민들은 폴리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잘 알고 있었고, 폴리스의 모든 일들은 폴리스 전체의 공공선을 위한 것이어야 했다. 부자들은 폴리스를 위하여 전함을 만들고 유지하는 일, 연극 연습과 제작, 공연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일, 축제 비용을 대는 일, 종교 재의를 주관하는 일 따위의 공공 봉사를 아무런 불평이나 부담을 느끼지 않고 수행해 나갔다.

또 그리스인들은 도시의 수호신도 시민의 한 구성원으로 보았기에 폴의스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제비 뽑기와 같은 방법으로 신의 의사를 물었다.

# 폴리스의 시설물

폴리스에는 다음과 같은 시설들이 필수적이었다.

1) 아크로폴리스: 종교 중심지

A. 원래는 요새라는 뜻으로 외적의 침입에 대해 마지막으로 저항하던 농성의 장소

B. 그 후 왕의 거주지, 즉 궁전이 있는 곳으로 바뀌었고,

C. 민주주의가 시작되던 초기에는 민회가 열리는 공간이었다가,

D. 후대로 오면서 아크로폴리스는 오직 종교적인 행사만을 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2) 아고라: 시장과 공공 세속 사회 생활의 중심지

3) 극장: 온 시민의 정서와 사상을 통일시키고 공유하게 하는 행사인 연극이 행해지던 장소

4) 김나시온: 시민들의 지덕체 교육을 위한 장소

A. 벗는 곳이란 의미: 운동할 때 벌거벗은 데에서 유래된 낱말

B. 운동뿐 아니라 아동들의 알파벳 교육, 음악 교육, 정치나 철학과 같은 주제들에 대한 시민들의 토론의 장소였다.

C. 기타: 국회 의사당, 행정 청사, 오데이온(음악당)

# 제주의 폴리스적 특성과 해양 문화적 특성

1) 제주의 각 마을은 상당히 고립되어 있고, 자주적이며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다.

2) 식량을 자급자족하지는 못했었지만 풍부한 해산물과 한라산의 자원을 이용하여 어느 정도의 자족적 경제 체제를 이루고 있었다.

3) 뭍사람에 대한 선망과 경계심을 함께 가지고 있다.

4) 바다를 끼고 살기 때문에 일찍부터 중국이나 일본과 직접 교류를 하여 다양한 문화를 가꾸어 왔다.

5) 육지와 사뭇 다른 이런 특성들 때문에 제주도 문화는 육지의 문화와 상당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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