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림을 보다가 막 흥분이 되고 꼭 그 그림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서귀포시 하효동에 지난 10일 문을 연 ‘버금’ 갤러리 관장 고재선씨(51)가 갤러리를 마련하게 된 계기는 간단하지만 절실했다.
그림의 매력에 푹 빠져 지내다 보니 작품을 하나 둘씩 모으게 됐고, 8년 전부터 모아진 그림을 걸어두고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조성해 놓은 휴식 공간을 이번에 아담한 갤러리로 오픈하게 된 것이다.
“일부러 환한 그림들을 골랐어요. 우울한 시대잖아요. 이 공간을 찾는 분들에게 기쁨과 힐링의 시간을 드리고 싶어서요”
개관하면서 전시된 작품들에 대한 고재선 관장의 설명이다.
뚱뚱하고 못 생긴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문선미의 ‘눈물’ 시리즈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현대 여성의 비애가 느껴지지만 그 슬픔이 다이아몬드, 혹은 씨앗으로 보상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일본 작가 마유카 야마모토의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자신의 딸을 주인공으로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표현했지만, 그 겉모습 속에 감춰진 유년기의 상처와 원초적인 두려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마유카의 작품 중에는 아이의 이마에 붉은 글씨로 ‘PEACE’가 씌어진 그림도 있다.
화사한 꽃과 나무, 그리고 새와 나비들을 그려낸 강주영의 작품들과 쇼핑백을 형상화해 그 안에 현대 도시인들의 삶을 담아낸 독일 작가 티츠의 작품들도 넘치는 에너지와 활력으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갤러리 이름을 ‘버금’으로 한 것도 의미가 깊다.
“‘버금’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뜻이 좋잖아요. 겸손의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고, 최고를 지향하면서 한 단계 더 올라서기 위해 늘 노력한다는 뜻도 있지요”
그는 갤러리 명칭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또 “지역 내 숨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드리고 싶다”는 소망을 전하기도 했다.
서귀포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편안하게 찾아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얘기를 차분하게 이어가면서 고 관장은 “앞으로 3~4년 후에는 또 다른 문화공간을 마련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살짝 귀띔하기도 했다.
<홍석준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