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은 동사(動詞)다
균형은 동사(動詞)다
  • 홍기확
  • 승인 2013.12.2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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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38>

이번 해에는 무던히도 균형 잡는 연습을 한 것 같다. 일과 가정의 균형, 다시 말하면 밥벌이와 그 밥을 먹는 곳과의 고른 저울질을 하는 연습이다. 지금까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일과 가정의 균형은 동사다.’

참 많이도 노력했다. 균형을 잡으려고 비틀거리고 흔들리고 휘청거렸다. 그래도 동아줄 위에 선 곡예사처럼 나무작대기 하나로 평행선을 유지하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 하지만 결국 깨달았다. 균형은 멈춰있는 명사(名詞)가 아니라, 깔짝깔짝 균형을 잡으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 역동적인 동사(動詞)라는 걸 말이다.

균형은 동사다. 그렇다면 균형을 잃었다 해도 비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그저 또 다른 균형을 찾는 과정에 불과할 뿐이다. 다만 균형을 찾는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음미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까지 말하지 않았던가?

아이가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사회라는 세계를 경험할 것이고, 조직이란 것을 배울 것이며, 정치라는 기술을 익힐 것이고, 승패와 우열에 대해 깨달을 것이다.

내 입장으로 보면 지금까지 안정적이었던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라는 거대 세계에 아이를 입장시켜야 한다. 사회가 주는 충격을 받은 아이를 단련시켜 주어야 하고, 조직에 낯설음을 느끼는 아이를 보듬어 주어야 하며, 정치라는 괴물의 장단점을 말해 주어야 하고, 승패와 우열이 어떤 의미인지 바르게 전달해 주어야 한다.

아이가 학교를 오전에 다녀오면 오후에는 학원을 돌려야 한다. 맞벌이에게는 가혹한 일이다. 게다가 방학 때는 어쩌고? 가정이 흔들리면 일이 안될 것이고, 일이 안되면 내 삶이 근본적으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나뿐만 아니다. 아내도 밥벌이를 한다. 방울이 하나가 흔들려도 시끄러운데 이건 쌍방울이니 내년 한해는 살짝 힘들 것이라 예상된다.

분명 기존의 평화롭던 비율, 일과 가정의 균형은 깨진다. 게다가 격렬하게 깨질 것이다.

그래서 두렵다. 균형이 깨질 때마다 대부분 힘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빨리 잊는 능력을 타고 났지만, 균형의 깨짐은 가끔 전의 기억을 잊기도 전에 다시 찾아온다. 상처가 아물지 않은 곳에 다시금 입은 상처는 오래가기도 하거니와 흉터가 생길수도 있다.

하지만 균형은 계획이 아니다. 그간 입은 상처와 남아있는 흉터를 통해 음미하는 고통이다. 이런 기쁘지 않은 고통이 있어야 균형이 깨지더라도 전보다 더 빠르게 균형을 되찾을 수 있다. 그래서 균형은 역동적인 동사지만, 기필코 멈춤이 있는 명사로 국어사전에 분류되는 것이다.

말이 없던 아버지가 내가 어렸을 적, 밥상머리에서 조잘대는 내 얘기를 차분히 얘기를 듣다가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다.

건설적인 생각을 해라.’

창조적 파괴라고 하던가? 아버지는 균형의 파괴를 수도 없이 경험하고 어린 나에게 비밀의 일부만 말한 듯싶다. 균형을 부수고 다시금 건설하라는 생략되지 않은 통 문장을 말이다. 그리고 부수고 나서는 무언가 배우라는 진정 말하고 싶은 결론을 말이다.

그 때 아버지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했음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이거 참, 얼굴 모를 누군가에게 길을 가다 발길질을 당한 신선한 기분이다.

균형이 동사임을 깨달았건만 마음은 여전히 두렵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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