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풍경은 늘 그립다. 누구나 시를 써보고 싶고, 그런 환경에 푹 빠져 보는 생각을 가지곤 한다. 그렇듯 어릴적 모든 이들의 꿈은 문학소년이었다. 그러다가 그 단계를 뛰어넘으면 시인이 된다.
그런데 ‘문학소년’의 이름을 달자마자 시인이 된 꼬마들이 있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니다. 무려 71명의 어린이들이다.
71명의 주인공들은 ‘예촌’으로 불리는 남원읍 신례리 어린이들이다. 신례초등학교(교장 안재근)에 다니는 어린이 71명이 「저, 여기 있어요」라는 이름의 시집을 펴냈다. 글·그림 모두 71명 어린이들의 작품이다.
점심시간에 똥을 쌌다.
첫 번째 똥은 길고
두 번째 똥은 짧다.
교실에 와 보니
점심시간 끝났다.
다음에 똥 쌀 때는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
(김민국 어린이 작품 ‘긴 똥, 짧은 똥’)
‘똥’에서처럼 「저, 여기 있어요」는 어린이들의 마음이 그대로 읽힌다. 그런 마음이 「저, 여기 있어요」에 담긴 동시 하나하나에 녹아 있다.
신례초등학교는 방과후 활동으로 시낭송과 창작 활동을 해오고 있다. 올 들어서는 시간을 더욱 늘렸다. 여기엔 신례초 ‘터줏대감’이면서 어린이시 창작교실 강사인 김정희 시인의 도움이 컸다. 김정희 시인은 신례초에 머문 햇수만도 5년이다. 평균 3년이면 학교를 옮겨야 하는 교사들보다 예촌 어린이들의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례초 어린이들은 딱딱한 독서논술을 탈피, 자유롭게 놀면서 시상(詩想)을 떠올린다. 방과후 활동은 글만 쓰는 게 아니라 바깥에서 놀았던 이야기, 집에서 있었던 이야기, 여름철 바람과 햇볕의 느낌 등을 나눈다. 그 속에서 시상이 떠오르고, 글쓰기로 이어진다. 시상을 떠올리다가 감정에 북받쳐 울기도 한다. 실제로 그 느낌을 쓴 글들이 있다.
우리 집 개가
새끼를 낳았어.
그런데
8마리 중에
7마리 죽어서
한 마리 남았어.
새끼가 젖을 먹고 있는데
우리 집 개가
나한테 와서 자빠졌어.
개가 불쌍했어.
(양진호 어린이 작품 ‘우리 집 개’)
진호는 ‘우리 집 개’를 쓰면서 눈물을 쏟았다. 그렇듯 「저, 여기 있어요」는 순수한 어린이 감정 그대로이다.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김정희 시인은 그런 어린이들을 바라보며 “어린이들에게서 순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신례초는 작은학교 답지 않게 시집이 가득하다. 신례초 도서관은 600권에 달하는 동시집이 책꽂이를 차지하고 있다. 시를 읽혀주고, 어린이들은 책꽂이에 꽂힌 시를 읽는 습관이 자연스레 몸에 배였다.
감성을 자극하는 이런 시창작 활동의 덕분이었는지 작은 학교인 신례초의 모습도 변하고 있다. 57명까지 떨어졌던 학생수가 71명의 어린이로 늘어난 것.
신례초 어린이들의 시창작에 더욱 불을 붙인 건 이 학교의 안재근 교장이다. 안재근 교장은 매년 문집으로 나오던 학생들의 작품을 좀 더 업그레이드시키기로 했다. 바로 ‘시집 발간’이라는 승부수였다.
안재근 교장은 “제주형 자율학교 운영으로 학교가 많이 달라졌다. 이 시집은 자율학교 특화프로그램인 독서논술 프로그램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이 시집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 고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 가득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신례초등학교는 24일 첫 시집 발간을 기념하는 행사도 가졌다. 이날 진행된 ‘출판 기념 콘서트’는 시를 직접 쓴 어린이와 학부모들, 이웃에서 온 어른들도 함께였다. 물론 71명의 어린이 시인을 향한 축하의 인사였다.
「저, 여기 있어요」에 담긴 어린이들의 시는 모두 90편. 책을 낸 어린이들의 느낌은 어떨까. 오지은 어린이(6학년)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쓴 걸 본다고 생각하니 뿌듯해요. 시는 과목으로도 배우고, 방과후 활동으로도 배워요. 기쁜 일이나 슬픈 일,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시를 써요. 1주일에 3편은 될 거예요.”
시에 푹 젖어들어 일상이 시창작 활동이나 다름없는 신례초 어린이들은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머지않아 이 곳 예촌 마을에서 어린이 시인이 아닌 어른 시인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을 듯하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