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자란다
두 번 자란다
  • 홍기확
  • 승인 2013.01.20 17:49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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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10>

실내놀이터에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다른 아이와 부딪혔는데 네 팔이 빠진 것 갔다고 말이다. 아빠는 다급하게 가보았다. 너는 팔을 붙잡고 울고 있더구나.

첫 번째 찾은 병원은 주말이라 정형외과 의사가 없었고, 두 번째 병원은 이런 수술을 할 의사가 없다고 하더구나.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네 조그만 팔꿈치 뼈가 세 조각이 나 있었다.

엄마는 울고 있었다. 원래 여자란 건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거나, 아니면 가장 약하다. 응급실에서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응급처치로 붕대를 감아주겠다며 네 옷을 벗기라고 했지.

고통과 공포에 울부짖는 너를 아빠는 잔인하게 의사와 함께 옷을 벗겼다. 그랬더니 뼈가 튀어나와 부은 네 팔이 아빠 눈에 나타났다. 엄마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너도 언젠가는 자식을 낳게 될 거고 아빠가 될 거다. 그때를 위해 지금부터 아빠가 하는 이야기를 잊지 말길 바란다.

퉁퉁 부은 네 팔을 보고 아빠 역시 울 뻔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울어도 아빠는 울면 안 된다. 적어도 지구라는 별에서, 그 중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아버지는 보통 이 때 이렇다. 물론 자식에게 못되게 구는 아빠들도 신문에 나오지만, 신문기사의 나쁜 아버지들은 드물다. 그래서 신문에 나오는 거다. 대부분의 아빠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너도 살다보면 알 거다.

아빠가 울음을 참는 방법을 알려주마. 다른 아빠들에게 울음을 참는 방법을 물어본 적이 없지만, 아마 네가 이 방법으로 나중에도 참을 수 있다면 특허 출원을 고려해 보는 것도 좋겠다.

우선 눈물이 막 나오려고 할 때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다. 그러면 살짝 눈물이 밑으로 내려오게 된다. 그 찰나에 침을 삼키면 눈물인지 침인지 모르겠지만 목구멍으로 무언가가 꿀꺽하고 넘어가게 된다.

세상 사람들이 다 당황하고 슬퍼해도 너만은 냉정하고 울지 말아야 한다. 너까지 울면 불안해하던 사람들이 더 불안하게 된다. 아빠가 너에게 해주고 싶은 첫 번째 얘기다. 울지 말 것.

붕대를 대충 감고 나자 아빠는 멀리 있는 대학병원으로 운전을 해 갔다. 세 번째 병원이었지. 그곳에서만 어린 아이의 뼛조각을 붙이는 수술을 할 수 있다더구나. 운전하는 동안 아빠는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온갖 좋은 말들을 해 주었다. 물론 그 대화는 10분도 채 이어지지 않았다. 위로를 하려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는 침묵이 나을 때도 있단다.

병원에 도착하자 다시 응급실로 너를 안고 뛰었다. 다행히 빠르게 의사가 너의 상태를 체크했고, 간호사는 혈액을 검사하기 위해 왔다. 가느다란 네 팔의 혈관을 찾기 위해 찰싹찰싹 때려대는 데 아빠는 그 때마다 심장이 바늘로 쿡쿡 찔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간호사 참 야속한 사람이더라. 결국 네 혈관을 찾고서는 바늘을 찌르려 했다.

아빠는 차마 볼 수 없었다. 다시금 허공을 바라보곤 침을 삼켰다.

의사가 수술 전에 네 팔의 뼛조각의 상태를 체크한다며 계속 엑스레이를 찍어댔다. 그 때마다 나는 아픔에 마구 움직이는 네 팔과 다리를 잡고 있어야 했지. 엄마는 나가있으라고 했다. 엄마는 점점 약해져 갔다.

드디어 임시로 뼈를 맞추려고 의사 두 명이 왔다. 이번에도 아빠는 엄마에게 밖에 있으라고 했다. 두 명은 네 팔을 늘리고 줄이고 하며 뼛조각들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네 조그만 뼛조각들이 가각가각 소리를 내며 요동을 쳤다. 응급실에는 너의 울부짖음으로 인해 다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빠는 계속 허공을 바라보며 침을 삼켜댔다.

뼈를 맞추고 너는 이제는 덜 아픈지 배가 고프다고 했다. 아빠는 근처에서 만두와 찐빵을 사왔다. 만두를 먹고 나서는 농담도 할 여유가 있는 너를 보며 이제야 아빠가 너무나 지친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네가 농담을 할 때 웃어주고, 아빠도 농담을 던졌다. 엄마는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다.

다른 가족들이 이런 상황에서 모두 지쳤을 때 너만은 웃어야 한다. 농담도 하면서 슬픈 분위기도 조금은 바꾸어야 한다. 너에게 해주고 싶은 두 번째 얘기다. 어떤 상황에도 웃을 것.

아빠도 안도감과 함께 급속도로 피곤해져 버렸다. 입원 수속까지 마치고는 엄마를 남기고 집으로 향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 엄마들은 주력군이고, 아빠들은 지원군이 되어야 한다. 아빠는 너와 엄마가 병원에서 생활하기에 불편이 없도록 집에서 짐도 가져와야 하고 이것저것을 준비해야 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솔오름에 들렀다. 혼자 남겨진 아빠가 두려웠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두려웠다. 텅빈 집에 가기도 싫었다. 솔오름에 오르는 도중 어둠이 너무 무서웠다. 사람이 없어서 두려웠고, 나쁜 사람들이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날까봐 두려웠다. 사람이 없어 두렵고, 사람이 있을까봐 두렵다니. 정신이 나갔나보다. 그토록 좋아하던 주변의 억새들조차 무서웠다.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는 항상 이렇다.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리고 극복해 낸다. 어둠이 무섭다면 오히려 어둠에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것이다. 너에게 해주고 싶은 세 번째 얘기다. 피하지 말고 맞서기. 그리고 극복하기.

솔오름 정상에 도착했다. 이미 아빠는 전보다 강해져 있었다. 여전히 두려움에 가슴은 두근거리지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남쪽 하늘은 별들이 가득했다. 올라오는 도중 계속 어두워서 눈이 적응돼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계속 바라보니 볼 수 있는 별들이 점점 늘어갔다. 그리고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반달이 떠 있었다. 그 밝음으로 인해 주변의 별들이 보이지 않았다. 남쪽은 반짝반짝. 서쪽은 반달이 휘엉청.

슬픔은 언제든 오고, 가슴이 아픈 일들도 꽤나 많다. 그때는 화려한 남쪽의 별들보다는 서쪽의 밝은 달을 생각해보렴. 달빛으로 가려진 서쪽의 별들을 슬픔이고 아픔이라고 생각해보자. 밝은 달은 그 슬픔들을, 아픔들을 분명 존재하지만 가려준다. 가려주고 있는 것이다.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마지막 얘기다. 달이 돼라.

아빠는 다 자랐다고 생각했다. 이만큼이면 다 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를 키우면서 또 다시 자란다. 두 번 자란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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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_ㅠ 2013-01-21 09:26:43
추천이 없어서 댓글로 대신. 월요일 아침부터 울컥했습니다.

2013-01-21 09:54:01
매번 댓글을 못달지만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홍기확님의 글은 한 편의 수필이나 일기장을 보는 잔잔한 감동이 있죠.
저도 남자아이 키우느라 몇번 이런 일이 있어서 100% 공감합니다.
항상 이성적으로 대처하려 노력하지만, 사고 전화를 받을 때가 가장 가슴 떨리는 것 같아요.
저도 운전하고 가는 동안 내내 기도하며 갔었던 기억이 나네요.

명품조연 2013-01-21 10:00:46
감사합니다. 아침부터...^^

일기장 2013-01-21 11:01:23
다른 사람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제 글을 읽으면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다구요.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다만 표현하는 방법이 제각각일 뿐이죠.
저도 말로는 표현을 잘 못하는 편이라 이 글을 쓰고 나서 ,
제 블로그에 올리곤 집사람에게 읽어보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어설프게나마 글 쓰는 재주라도 있어서 다행입니다.

ㅠ_ㅠ X 2 2013-01-21 11:06:57
비공개 글로 블로그에만 올리려다가 너무 슬플게 써내려가서
쓰다가 지웠습니다. 최대한 감정을 절제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