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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對立)과 반목(反目) , 이젠 좀...
대립(對立)과 반목(反目) , 이젠 좀...
  • 미디어제주
  • 승인 2012.10.26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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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이도2동 최원철

제주시 이도2동 최원철
국어사전에서 대립(對立)과 반목(反目)을 찾아보면 “의견이나 처지 또는 속성 등이 서로 맞서거나 반대됨”으로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미워하거나 대립함”으로 각각 해석되어 있다.

대립과 반목의 길고 긴 역사성을 유추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 인류의 발달사와 맥을 같이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자본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간의 사회경제체제 차이에서 오는 대립과 반목이 있을 수 있겠고,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대립과 반목도 있을 수 있겠다.

또 부자와 가난한 자의 빈부 격차에서 오는 대립과 반목, 동쪽과 서쪽의 지역주의에 의한 대립과 반목, 남쪽과 북쪽의 노선 대립으로 인한 대립과 반목, 청군과 백군의 패거리 나눔에 대한 대립과 반목, 여당과 야당의 대립과 반목, 너희와 우리, 나와 너........ 손꼽아 보니 셀 수 없이 많이 나뉠 수 있겠다.

대립과 반목이라는 단어는 분명 틀린 단어인데...(그렇다고 사자 성어도 아님) 우린 대립하면 반목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고 자연스럽게 붙여 쓰고 있다.

내 스스로도 대립과 반목을 자연스럽게 붙여 쓰면서도 사회 발전과 국가 발전에 “필요악(必要惡)”이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을 비롯한 세계의 역사가 이 두 단어의 상호 투쟁 속에서 지금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발전해왔다고 생각되고, 그리고 앞으로도 그 희생을 기반으로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라 확신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지난 날의 대립과 반목의 역사를 뒤돌아 보며 한 가지 간과(看過)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생사(生死)를 놓고 피(血) 튀기는 싸움을 하면서도 때론 한쪽이 못이기는 체하고, 때론 양쪽 모두가 서로 한발 양보(이해)하면서 지혜롭게 공존하며 오늘의 발전을 이룩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를 지난 대소(大小)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음에도, 오늘을 사는 우리는 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의 날을 세우고 반목의 감정을 더하여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싸우고 있는 것일까?

한마디로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치킨 게임(Chicken game)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래서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는 커녕 각자가 바라는 이상사회를 만들 수 없다.

각자 바라는 “사람 사는 올바른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모두 한 발짝 물러서서 뒤를 돌아보는 통합과 양보의 지혜가 필요할 때다. 사회적 비용이 너무 많이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비용은 고스란히 우리가 지불하는 비용이 아닌가?

우리 서로 이쯤해서 이성(理性)이 대립을 지배하게 하고 미소(微笑)가 반목을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

얼마 전 '텅빈 충만'을 노래하며 우리에게 귀한 말씀을 주시고 성불하신 법정스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지금의 형국을 바라보시며 어떤 법문(法門)을 주셨을까 오늘따라 궁금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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